비판적 사고의 보다 넓은 지평
비판적 사고의 보다 넓은 지평
  • 손동현 대전대 석좌교수
  • 승인 2018.09.27 14: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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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_ 『창의적 비판적 사고』(케리 월터스 편, 김광수 책임번역, 철학과현실사)

이 책의 책임번역자인 김광수 경희대 석좌교수는 1990년 『논리와 비판적 사고』를 펴냄으로써 한국 철학계에 처음으로 ‘비판적 사고’를 소개하고, 그 후 대학의 사고교육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온 ‘사고교육 전도사’다. 김 교수는 ‘비판적 사고’의 틀을 적용해 모든 철학적 문제들을 재정리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호언했는데, 그 때 그의 이런 주장에 대한 동학의 반응은 대체로 김 교수가 ‘논리주의’에 빠져든 게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오해였고, 김 교수가 의도했던 것은 다만 “비판적 사고의 방법을 현대 분석철학자들의 철학적 탐구 방법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철학논증을 포함한 모든 논증을 분석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체계화하는 것”(『비판적 사고론』 2012)이었다. 과연 그는 이 책에서 20여개에 달하는 여러 가지 철학적 논제들을 그 나름의 ‘비판적 사고’틀에 넣어 보다 선명히 정리함으로써 불필요한 군더더기 논쟁을 잠재우려는 시범을 보인다.

김 교수 스스로 자신의 비판적 사고가 ‘진화’해 왔노라고 반 농담으로 자화자찬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의 사고의 진화는 최근에 뚜렷이 진행된 것 같다. 그가 바로 오늘 서평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 책, 케리 월터스의 『Re-Thinking Reason』을 『창의적 비판적 기소』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본에는 ‘New Perspectives in Critical Thinking’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김 교수가 이 ‘새로운 관점들’에 刮目했다는 것이 그의 진정한 ‘진화’인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이미 24년 전인 1994년에 출간된 것으로 ‘비판적 사고’를 개척해 나간 미국의 학자들은 이미 초기부터 ‘비판적 사고’의 사유지평을 넓혀나가고자 숙고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여러 편의 논문들은 그 핵심적인 발상이 단순히 논리학의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교육학’(Critical Pedagogy)의 이념을 공유하는 것들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철학인 ‘비판이론’(Kritische Theorie)에 그 사상적 근원을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교육

브라질의 프레이리(Paulo Freire) 교수가 신분적 질서와 권위주의를 거부하면서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교육’의 이념을 제창한 데서부터 확산돼온 ‘비판적 교육학’은 다음과 같은 명제들을 견지한다: 지식은 중립적인 것이 아니다; 사회정의나 민주주의의 문제는 그 자체 교육과 유리돼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체험이나 문제도 사회적 맥락 속에 자리 잡고 있으므로 이를 의식해야 하며, 따라서 교육은 일상의 사회-정치적 맥락에 대한 비판을 지향해야 한다; 교육은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일깨워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교육은 의식화 활동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내재적으로 정치적 행위다.

이러한 교육 이념은 ‘비판이론’의 교육학적 버전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호르크하이머가 ‘전통적 이론’과 구별해 ‘비판이론’을 제창했을 때, 그 기본 이념은, 역사성과 사회성은 외면하고 과학적 실증성과 논리적 합리성만을 추구하는 ‘논리 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와 대척점에 서는 것이었다. 전통이론이 사회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머물렀다면, 비판이론은, 마르크스의 생각대로, 사회를 전체적으로 비판하고 변혁시키는 데까지 나아가고자 한다. 이 비판이론에 따르면, 지성의 활동은 ‘도구적 이성’(Instrumentale Vrnunft)에 멈추지 않고 ‘해방적 이성’ (Emanzipierende Vernunft)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가 이런 ‘비판적 교육학’과 제휴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단순한 논리적 사유기법의 숙련을 목표로 하는 것일 수가 없다. 이 수준에 머무르는 ‘비판적 사고’를 이 책의 편자는 ‘제1의 물결’이라고 지칭하며 이를 비판한다. 제1의 물결에 속하는 학자들은 “비판적 사고를 형식적이고 객관적인 논증의 명제적 표현 또는 완고한 계산법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창의성과 상상을 훌륭한 생각에 상반되는 것으로 여기도록”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깨달음, 공감, 본능적 또는 육감적 지식의 보다 창의적인 양상들, 그리고 개연성과 모호성에 대한 이해”를 배제하고자 하지만, 실은, 모든 사고는 “사고작용이 일어나는 맥락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것”이어서, 비판적 사고는 이러한 “비분석적, 상상적, 맥락적 사고방식들”도 진지하게 수용해야 한다.

이 책의 머리말을 쓴 맥라렌(Peter McLaren)은 한걸음 더 나아가 비판적 사고의 영역에서 “명제논리의 이해에 관련되는 의미가 아니라, 언어 자체가 형성하는 의미, 주관성의 형성에 관여하는 의미를 중시하는 탈현대적 제3의 물결”을 전망하기까지 한다. 그는 “사고과정의 절차적 특징이 아니라 그러한 사고에 기인한 사회적 결과”를 강조해, “자아인식과 자아형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회변혁을 위한 투쟁에서 (…) 인간의 의지와 욕망을 개편하기 위한 사고 간의 고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한마디로, 비판적 사고는 정치적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응용논리학으로서의 비판적 사고

이쯤 되면 우리가 그간 알아왔던 응용논리학으로서의 ‘비판적 사고’는 인간과 세계 전체를 성찰하는 철학 그 자체로 격상될 수밖에 없다. 책임번역자 김 교수가 “도구적 이성 대신 사변적 이성으로 인류의 미래를 선도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헤겔이 그의 『정신현상학』에서 철학은 ‘계산적 이성’(raisonnierende Vernunft)을 넘어서는 ‘사변적 이성’(spekulative Vernunft)이 수행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서만 절대정신의 자기발현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고 갈파한 것을 연상시킨다. 

철학적 탐구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적어도 교육과 관련해 비판적 사고가 어떤 방향으로 격상, 확장돼야 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는 것이 이 책에 실린 논문들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논리적 기법은 훌륭한 사고에서 필요한 기능이지만, 상상과 직관 같은 비분석적 기법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비판적 사고 이론과 교육학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고 강화하려는 의도를 공유하고 있다. 

제1부의 논문들은 종래의 주류 비판적 사고 이론을 넘어서는 더 포괄적인 사고 모델을 옹호함으로써 사고 기법과 교육학을 더 풍요롭게 하고자 한다. 논리적 사고가 곧 훌륭한 사고라는 기존의 비판적 사고 모델을 비판하며, 훌륭한 사고는 논리적일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상상하며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창의적인 사고이며 타인의 사고 내용에 공감하는 사고임을 주장한다. 

제2부의 논문들은 사고의 ‘맥락적 성격’을 강조한다. 개인의 사고라도 그저 객관적이고 중립적일 수만은 없는 것이요, 삶의 구체적 형식들로부터, 또 특정한 역사적 맥락으로부터 빚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고의 객관성이라는 것도 그저 맹목적으로 고수될 것이 아니라 그 사고의 맥락에 비추어 재고돼야 한다고 본다. 

제3부의 논문들은 비판적 사고를 통한 학생의 계몽과 해방을 지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논리적 분석만을 일삼는 비판적 사고는 자연히 추상적으로 흐르게 돼 사고과정을 탈맥락화하고 사고하는 사람을 비인격화하기 쉽다. 비판적 사고는 삶의 맥락 속에 들어가, 무비판적인 통념을 깨는 계몽의 역할을 해야 하고, 익숙해져 있는 비이성적인 인습이나 관행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이 책의 편자는 장문의 서문에서 “논리적 규칙을 신념의 정당성 판단을 위한 필요충분한 지침으로 받아들이는” 논리주의를 비판하고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코자 하는 데, 비판의 초점은 ‘객관성 중시’에서 비롯하는 ‘탈주관화’의 위험과 ‘추상성’이 불러오는 ‘탈맥락화’의 위험에 모아진다.  

비판적 사고의 새로운 지평은 그 대상의 다양성, 그 과정의 주관연관성 및 맥락성, 그 목표의 해방적 성격 등을 살려내는 데서 더 넓게 열릴 것이다. 근래 한국에서는 대학마다 기초학업 영역에서 사고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비판적 사고의 이런 폭 넓은 지평이 확보될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기획돼야 할 것이다.     

손동현 대전대·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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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2018-09-28 22:20:19
저는 <창의적 비판적 사고>의 책임 번역 및 감수를 한 김광수입니다. 그런데 이 서평에서 제가 경희대 석좌교수로 소개되어 있어 당황스럽습니다. 사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신대 철학과 교수로 정년을 한 백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