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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대한 예찬
늙어감에 대한 예찬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 승인 2018.09.1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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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있는 어머니 마리아를 등에 업고 있다. 아니, 죽은 예수가 앞에 서있고, 넋이 나간 듯 탈진한 어머니가 아들을 등 뒤에서 부둥켜안은 채, 서로 의지하고 기대선 형국이다. 둘 다 피골이 상접하다. 몸체에 뼈와 거죽만 남아있다. 모자는 피차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위로하며, 일체를 이루는 모양새다. 

얼굴 윤곽도 불분명하다. 그리스도의 양 눈은 없는 듯하다. 할 말을 온몸의 피와 함께 다 쏟아냈는데도 듣는 귀들이 없기에 다문 것일까. 희미한 코 아래 입이 아예 없다. 마리아도 초점 없는 두 눈 아래 콧날은 있지만, 입은 뭉뚱그려져 있다. 그들 몸에는 온통 상흔이 가득하다. 몸체는 망치와 정과 끌로 더 이상 파낼 것이 없는 상태까지 깎여져있다. 작가의 야심찬 초기 계획을 증명하듯, 동떨어진 곳에 예수의 커다란 근육질 팔이 남겨져있다. 

미켈란젤로가 80대에 10년간을 매달리다가, 끝내 미완성으로 남긴 '론다니니 피에타'다. 다재다능한 르네상스 맨, 미켈란젤로는 피에타라는 주제에 능수능란했다. 23세에 피렌체에서 천재로 불리며 등장한 계기도 현재 바티칸에 소장된 피에타 상이었다. 한국영화 <피에타>의 포스터에서도 패러디된 이 조각에서 그는 10대 소녀 같은 동안의 성모가 고난에서 해방된 평온한 모습의 죽은 예수를 무릎 위에 안은 아름답고 우아한 장면을 재현했다. 70대 중반에도 해부학에 정통한 지식과 재능을 드러내며, 십자가에서 내려진 근육질의 그리스도와 애도하는 마리아, 함께 선 니고데모의 얼굴에 넣은 참회하는 자기 자화상까지 아우른 ‘피렌체 피에타'로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더 연륜이 쌓인 80대에 그는 피에타 상과 10년을 씨름하다가 포기했다. 20대 때 처음으로 밀라노의 스포르체스코 성에서 ‘론다니니 피에타’를 만났을 때, 나는 그 며칠 전에 봤던 '바티칸 피에타'와 달리 먹먹한 통증을 느꼈다. 그 눈물을 동반한 통증을 다시 느낀 것은 수년 후 C.S.루이스의 실화를 영화화한 「섀도우랜드」를 보면서였다. 왕복 1시간 이상을 달려서 미국의 한 극장에서 관람하고 다음날 지인들을 동원해서 다시 갔던, 내가 이틀 연속 극장에서 반복 관람한 유일한 영화이기도 하다.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에서 가르쳤고 『나니아 연대기』 작가로도 잘 알려진 루이스는 신이 왜 인간에게 고난을 허락하는지에 대한 오랜 질문에 조각의 비유로 답하고는 했다. 돌덩어리가 조각가의 망치와 끌과 정으로 깎아지는 고통을 통해서만 아름다운 형상으로 창조되듯이, 인간도 역경 없이는 성숙해지거나 타인과 세상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인격체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난에 대해 명쾌하게 논한 인기 연사였던 루이스는 생계를 위해 영주권이 필요한 지인, 조이 데이빗먼을 돕기 위해 명목상의 결혼을 해준다. 그리고 그녀가 골수암에 걸린 후에야 책임감으로 병간호를 하다가 진정한 사랑에 빠지면서 고난에 대한 자기 신념이 한낱 허언이었음을 깨닫는다. 신에게 인간의 고통에 대해 항의와 절규를 거듭하고, 결국 아내를 잃지만 역설적으로 진정한 사랑과 역경을 통해서 깊이 성장한다. 20대에 세상과 재능에 대해 과신했던 미켈란젤로는 70대에 충분히 성숙한 것 같았지만, 80대가 되서야 비로소 인간, 하물며 신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자신했던 자신의 무지와 오만함을 직면하지 않았을까. 그 연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10년 세월에도 인간을 향한 신의 사랑과 고난을 도무지 인간의 능력으로는 표현 불가능함을 절감하지 않았을까. 

미켈란젤로와 C.S 루이스가 늙어간 것을 감사하고, 내가 늙어가는 것을 다시금 감사한다. 외양만 늙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전공으로 삼다 보니 가슴보다는 머리가 앞장서서 잘난 체를 하는 탓에 미술을 감성으로 느끼기가 힘들어진다. '론다니니 피에타'가 40여년 동안 나를 공공장소에서 울린 두 점뿐인 미술품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까봐 고심한다.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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