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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혁명'과 '항쟁'의 갈림길 앞에서
촛불, '혁명'과 '항쟁'의 갈림길 앞에서
  • 최갑수 서울대·서양사학과
  • 승인 2018.09.17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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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동서 문명과 근대’_최갑수 서울대 교수(서양사학과)의 「근대의 정치 혁명들」
지난달 4일, 최갑수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2018 근대 문명에 대한 동서 비교문화적 성찰’의 28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이 강연 시리즈는 네이버문화재단이 주최하며, 매주 토요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진행된다. 사진 제공=네이버문화재단

혁명의 사회과학이 제시한 혁명 발발의 5개 조건은 엘리트의 소외와 이반, 경제 위기, 민중 세력의 존재, 이데올로기, 우호적인 국제 환경이다. 사실 아프리카나 기타 제3세계의 많은 나라는 독립 이후에도 끊임없는 정쟁에 시달렸고, 많은 경우 여러 차례 혁명을 겼었지만 ‘정상 국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위의 5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민중 혁명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우선 5개 조건을 충족시키는 나라는 차고도 넘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선 이 조건들이 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기껏 정쟁이나 내전, 아니면 인종 학살로 끝나기에 십상이다. 왜 프랑스혁명이나 다른 유럽 혁명들을 본보기로 해 얻어낸 정률들은 기대를 빗나가는가? 이는 우리에게 ‘구체제’를 전 지구적 시각에서 볼 것을 요구한다. 

‘구체제’는 혁명의 제1단계에서 혁명가들이 ‘신체제’를 설정하면서 이 과업의 역사적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 만들어낸 신조어다. 그러니까 구체제가 혁명을 만든 것이 아니라 혁명이 구체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혁명 이전의 모든 적폐의 총체를 가리킨다. 그것은 정치적 차원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사화, 경제, 문화, 아니 어두운 과거의 총합이다. 이를 청산하기 위해 결국 혁명이 터진 것이 아닌가! 그리고 혁명은 정치 권력을 장악해 해당 정치 공동체 구성원들의 집단적인 운명을 개척하려는 영웅적인 노력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는 구체제 자체 내에 해당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적어도 집단적인 노력을 함께 기울일 수 있도록 만드는 ‘집단적 정체성’이 이미 형성돼 있음을 전제한다. 부르주아 혁명론에 빗대어 말하면 구체제의 엄존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회가 일정한 수준의 ‘정치적 축적’을 이룩하지 못한다면 혁명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유럽은 근대 혁명을 겪을 즈음, 이미 1천 년에 달하는 정치적 축적을 해왔고, 국가 형성 과정은 절대주의 단계에 도달해 있었다. 지방적 특수주의가 다른 문명에 못지않게 강했지만, 동일한 군주제하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서서히 국민적 정체성이 생겨났고, 구체제의 시기에 이르러 주권자로서 군주를 대신해 인민이나 국민을 상상하는 일이 가능하게 됐다. 우리는 이런 유럽의 정치적 축적의 경로가 매우 특수한 것임에 유의해야 한다. 그것은 거의 모든 전통 문명들이 걸었던 ‘제국적 경로’와 대비된다. 유럽의 ‘영토 국가’를 통한 정치적 축적 방식은 그 자체가 유럽 문명의 본질 중 하나이기도 하거니와 참으로 오랜 역사적 진화 과정의 산물인 것이다. 

바로 이런 축적의 조건과 경험을 갖지 못한 대부분 지역에 유럽 열강은 19세기 말에 제국주의를 부과했다. 그들이 그은 경계선을 바탕으로 구체제가 만들어졌고 그 토대 위에서 혁명들이 분출했지만, 정치적 축적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혁명은 언제나 근대성의 문턱에서 미끄러져 내리기 마련이었다. 제3세계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혁명을 분출시키겠지만, 근대 국가 건설의 불가역적인 문턱을 넘어서는 일은 상당 기간 무망하다 하겠다. 이 점에서 동아시아는 유럽만큼이나 예외적이다. 이 지역 역시 제국적 경로를 걸었음에도 한 반도와 일본은 기본적으로 영토 국가의 조건을 지녔다. 중국은 제국적 경로를 통해 ‘청’의 시대에 역사상 최대 강역을 획득했음에도, 유럽이 주도하는 국가 간 체제의 규정력을 통해 그 제국을 영토 국가로의 전환의 밑천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한반도는 유럽처럼 오랜 기간 단일한 군주제하에서 지역적 공동체를 보듬어 왔고, 국왕을 대체하는 대안적인 주권체를 상상할 수 있게 되면서 폭발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이룩하였다.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구체제는 일련의 민란과 농민혁명을 불렀지만, 국제 환경의 압력을 통해 살아남았다. 구체제의 유지·강화는 끊임없이 혁명운동을 야기했지만, 일제의 강점과 이후의 분단은 그것이 민중 혁명(혁명의 제3단계)으로 진화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남한의 민주화운동은 제헌 헌법이 설정한 포락선을 넘지 못한 채 ‘수동혁명’으로 일관했고, 1960년 4월, 1980년 봄, 1987년 6월 등 끊임없이 근대성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미끄러져 내렸다. 2016~2017년의 ‘촛불혁명’은 과연 우리를 불가역적으로, 정상 국가로 전환하게 하는 근대성의 문턱을 넘게 해줄 것인가? 구체제의 청산 작업이 부진하고 한반도에 평화 체제가 들어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그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고 ‘촛불’은 ‘근대혁명’의 반열에서 ‘항쟁’으로 격하될 것이다. 

최갑수 서울대·서양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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