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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7호 새로 나온 책
제937호 새로 나온 책
  • 교수신문
  • 승인 2018.09.1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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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말말

자유가 협소한 사회

한국 사회에서는 자유를 협소하고 소극적으로 이해해온 전통이 강한데다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짧아서 자유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얼마 전부터 다양한 복지 정책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자유의 사회적 측면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했지만, 이 경우에도 복지를 주로 온정주의(paternalism)적인 차원에서 다룰 뿐 복지 문제와 자유가 서로 구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인식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사회정의 실현에 필요한 사회·경제 개혁마저도 개인적 자유에 대한 ‘불가피한 제한’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회정의는 사회 전체 차원에서 시민들이 누리는 자유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에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자유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은 사회정의를 자유의 외연적 의미를 확장시키는 문제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1997년 말 한국사회를 엄습한 외환·금융 위기와 이후의 경기 침체는 민감한 사람들에게 사회정의의 실현이 자유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소극적 자유 역시 다른 자유들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자유의 형식이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는 다른 자유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하지만 소극적 의미의 자유가 보다 적극적인 의미의 자유들과 공존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기보다는 뒤르켕이 말한 ‘아노미’와 짐멜의 ‘의미 상실,’ 그리고 아렌트가 경고했던 ‘자유로부터의 자살적인 도피 현상’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가 지금보다 한 단계 성숙한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특권적인 소수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평등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자유로운 질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유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그 실현 조건에 대해 보다 더 진지한 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

김비환 성균관대 교수(정치외교과), 『개인적 자유에서 사회적 자유로: 어떤 자유,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8.9) 중에서

새로 나온 책

■ 인간 장소 지명 | 주성재 지음 | 한울엠플러스 | 272쪽

이 책의 주제는 인간은 장소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지명을 붙인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주변의 유무형의 사물에 이름을 붙이려는 속성이 있다. 이름을 붙임으로써 대상과 자신의 관계를 규정하고 상호작용한다. 땅 이름인 지명은 그 땅과 상호작용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태어난다. 인간이 장소와 상호작용하는 방식과 친밀도는 지명에 영향을 미치고 반대로 지명이 인간의 의식에 각인되면서 장소에 대한 인간의 정서와 이해관계가 형성된다. 지명학은 한 지명과 그 지명이 가리키는 장소, 상징, 가치 등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갈등과 조정, 지명의 영향력의 변천 등을 추적하는 학문으로 명명학(onomastics)적 요소와 지리학적 요소가 결합한 분과이다. 지명은 평범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 삶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삶의 활력소가 될 충분한 가치를 갖는다. 이 책은 이름을 붙이는 인간의 의식적인 행위, 그리고 부여된 이름의 역사를 추적하여 우리 주변에서 무수히 만나는 지명, 땅이름, 동네 이름의 이해를 돕는다. 

 

■ 인도불교의 역사 | 다케무라 마키오 지음 | 도웅스님·권서용 옮김 | 산지니 | 288쪽

불교는 최초 출현 이후 어떻게 전개되어 여러 주변국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은 걸까? 이 책은 인도불교의 출현, 분파로 전개된 이후 밀교와 쇠퇴, 그리고 주변국으로 전파된 과정까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석존의 생애부터 입멸 후 부파불교의 전개, 대승불교의 출현, 공의 논리, 유식의 체계 등 인도불교의 사상적 전개를 추적하면서, 특히 초기불교와 인도불교를 이루는 다섯 개의 축, 즉 설일체유부, 경량부, 대승불교, 대승중관불교와 대승유식불교를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아시아 불교의 근원인 인도불교 사상의 발전과 전개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뿐 아니라, 특히 한국에 유입된 대승불교의 출현과 함께 『반야경』, 『화엄경』, 『법화경』, 『무량수경』 등의 대승불교 경전이 가지는 특징들을 알기 쉽게 풀이해 준다. 이 책에서 필자는 석존의 깨달음을 실존적으로 음미하여 불교사 전체를 그 ‘깨달음’의 전개로 파악하며, 이것을 축으로 하여 간명한 불교사를 구성하고자 했다.

 

■ 동아시아의 ‘근대’ 체감 | 이기훈·저우쥔위·권보드래 외 6명 지음 | 박경석 엮음 | 한울엠플러스 | 312쪽

이 책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인문한국사업단이 수행한 ‘21세기 실학으로서의 사회인문학’이라는 의제의 성과물이다. 이 연구는 한국이라는 일국의 범주가 아니라 동아시아를 하나의 단위로 설정해 한국사가 가지는 일국적 폐쇄성을 극복하고 보편성을 강화하기 위한 비교사적 연구다. 현재의 우리와 100년 전의 사람들은 모두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살았었다. 전통과 일상을 무너뜨린, 빨라진 시간과 확대된 공간 신형의 변화를 당대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20세기 동아시아의 역사는 정치사나 경제사만으로는 묘사할 수 없다. 사회생활의 역사를 이해해야 다양한 대중운동이나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그려낼 수 있다. 이 책은 사회생활에 초점을 맞춰, 근대 전환기 동아시아 각 지역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공통의 시대적 체감에 주목함으로써 20세기 역사의 동력을 찾아내고자 한다. 20세기 초 사람들의 근대 체감을 고찰해 오늘의 생각을 재정립한다면, 21세기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자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레비나스와 정치적인 것: 타자 윤리의 정치철학적 함의 | 김도형 지음 | 그린비 | 208쪽

‘타자의 철학자’로 불리는 레비나스, 그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그의 ‘윤리’ 속에서 길어낸 ‘정치적인 것’의 의미와 가능성은 무엇인가? 레비나스의 사유 속에는 한편으론 국가, 법, 제도, 중립성 등으로 드러나는 정치와 그 정치적 실천이, 다른 한편으론 책임, 환대, 대신함으로 대변되는 혁명적 정치의 근원이 동시에 놓여 있다. 레비나스 정치가 가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책은 레비나스의 ‘정치’ 사유를 주제적으로 탐구하려는 시도로서 ‘윤리’를 통해 정치의 공간과 개념을 새롭게 경계 짓고 또 넘어설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레비나스 정치철학의 독특성은 타자에 대한 책임 속에서 종래의 정치적인 것을 재발견하려 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자 윤리를 정교화하고 그것을 일상과 정치에 섬세하게 적용하여 정치의 공간을 새롭게 경계 짓는 일로서 레비나스의 철학이, 그리고 이 책이 그러한 작업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유물론: 니체, 마르크스,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의 신체적 유물론 | 테리 이글턴 지음 | 전대호 옮김 | 갈마바람 | 224쪽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저자 테리 이글턴의 대답은 ‘신체적 유물론’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체적 유물론은 ‘인간학적 유물론’으로 인간과 관련해서 가장 확실하게 손에 잡히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이며, 그 확실히 손에 잡히는 것은 인간의 동물성, 실천적 활동, 신체 구조다. 이글턴에게 인간은 무언가로 고정되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존재로서 분열적, 개방적, 창조적, 자기초월적인 몸이다. 그리고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그런 인간들이 여전히 착취적인 세계에서 산다는 점이다. 따라서 신체적 유물론의 의미는 인간의 몸이라는 복잡 미묘한 진실을 보지 못하는 관념론이나 신유물론과의 대비를 통해 뚜렷하게 드러난다. 요컨대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인간의 몸이다. 물질(대표적으로 몸)은 우리의 기반인 동시에 굴레다. 인간의 몸을 철학적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글턴은 이 책에서 니체,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 마르크스의 사유를 오가며 인간의 동물성이 나타내는 다양한 양태를 탐구한다. 

 

■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 | 윤난지 지음 | 한길사 | 648쪽

“미술은 미술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언어”다. 한국 현대미술 또한 한국 현대미술이 무엇인지 그 정체(identity)를 말하는 언어다. 저자는 한국이라는 공간적 맥락과 근현대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과 주변을 아울러 현대미술이 어떻게 한국적 특성을 투영해내고 개발해냈는지 그 ‘한국적 정체’를 밝힌다. 정체란 끊임없이 변화하며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 그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과정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경계’다. 외부와 내부의 경계, 내부와 내부의 경계. 이 ‘제3의 공간’에서 발견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이상화해 형상화한 우리 모습이 아닌 우리도 알지 못하는 또는 우리가 밀쳐낸 타자의 모습이다. 결국 한국 현대미술이라는 경계 안에 다양한 양식이 교차하고 충돌하며 그 경계 자체를 허무는 과정 자체가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그 정체를 정의하지 않는다. 정체는 매우 다양하고 유동적이라는 사실만을 드러낼 뿐이고 그렇기에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 한 손에 잡히는 생명윤리: 난자 매매부터 유전자 특허까지 | 도나 디켄슨 지음 | 강명신 옮김 | 동녘 | 264쪽

‘좋은 과학과 좋은 윤리학은 상충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증명하려면 생명윤리가 필요하다. 이 책은 생명공학이 4차 산업혁명의 주요 분야로 각광받으며 자본주의의 영향이 날로 커져가는 가운데,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다양한 생명윤리의 주요 이슈들, 즉 난자 판매, 유전자 중심주의, 인체조직 특허와 독점, 연구와 실험 윤리 등의 쟁점을 과학, 철학, 법, 정치를 넘나들며 짚어주는 생명윤리 교양서다. 의료윤리학자인 저자에게 문제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공학에 스며든 자본주의이다. 저자는 생명공학의 상업화를 집중적으로 문제 삼으며, ‘정의’의 관점에서 상업화가 누구에게 더 혜택을 주고, 누구를 더 해롭게 하는지 면밀히 따진다. 또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여러 생명윤리 사안도 분석하고 있다. 과학이 새로운 ‘종교’로 떠오른 상황에서 생명윤리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생명공학기술을 둘러싼 첨예한 윤리 논쟁을 대중적인 언어로 탁월하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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