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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노조 설립 합법화⋯ 이제는 교수도 뭉쳐야 산다? 
교원노조 설립 합법화⋯ 이제는 교수도 뭉쳐야 산다? 
  • 문광호 기자
  • 승인 2018.09.17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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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교원노조법 헌법불합치 선고

교수는 노동자인가. 헌법재판소(소장 이진성)의 선고로 교수 사회가 유례없는 질문에 직면했다. 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는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하 교원노조법) 제2조 본문이 대학 교원들의 단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3권 중 단결권을 대학 교원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는 최초의 판결이다. 다만 입법자가 법률을 개선할 때(최장 2020년 3월 31일)까지는 현행 법령이 잠정 적용된다.

교수단체들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일제히 환영 의사를 표명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위원장 홍성학, 이하 교수노조)과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공동의장 김귀옥, 이하 민교협)는 성명서를 내고 “헌재의 결정을 환영하며 교원노조법의 신속한 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이사장 박순준, 이하 사교련)와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상임회장 이형철, 이하 국교련) 역시 교원노조법 헌법불합치 선고에 환영 의사를 전했다.

노동자 vs 지식인, 엇갈리는 교수 정체성

그러나 판결이 곧 ‘교수도 노동자’를 의미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교수노조와 민교협은 이번 판결로 대학 교원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게 됐다고 평한다. 성명서에서 민교협은 “우리는 오랫동안 교수들도 노동자라고 주장해왔다”며 “대학 교원도 노동조합을 만들어 적정한 수준의 근로 환경 속에서 교육자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성학 위원장 역시 “교원들의 열악한 근로 상황이 재판부에 잘 받아들여진 것 같다”며 “앞으로 노동 3권 등 노동자로서 교원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박순준 이사장은 “많은 교수들이 자신이 노동자라는 생각에 의문을 갖고 있다”며 “각 대학에서도 교수노조보다는 교수협의회의 활동이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이사장은 “교수노조가 민주노총, 한국교총 등에 속할 경우 교수들과 무관한 노동 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교수들이 교수노조가 정치적 성격을 띠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는 주장이다.

이에 홍성학 위원장은 강하게 반박했다. 홍 위원장은 “일부 교수들이 자신들을 노동자가 아니라 지식인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노동에 대한 폄하”라며 “사회적 연대와 지지를 얻으려면 오히려 교수 역시 노동자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 압박에 을이 된 교수들

한편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달라진 교수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 1999년 교원노조법이 제정될 때만 해도 대학 교원들은 신분이 보장되고 개별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단결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선고문에서 재판부는 “2002년 이후에 기간뿐만 아니라 여러 근로조건을 계약으로 정해 임용·재임용 하도록 하는 교수 계약 임용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됐고 최근에는 대학 구조조정, 기업의 대학 진출 등으로 단기계약직 교수, 강의 전담교수 등이 등장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교원의 임금, 근무조건, 후생복지 등 교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향상 등을 위한 단결권의 보장이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학에 ‘을’일 수밖에 없는 교원들의 상황을 인정한 셈이다.

국립대 교원 역시 똑같이 단결권을 인정받았다. 이형철 국교련 상임회장은 “현재 교원들의 신분으로는 단결권 없이는 교원들의 지위와 처우를 강하게 요구할 수 없다”며 “개인적으로는 노동3권 혹은 근로3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교련은 공동회장단 회의 후 이번 판결에 따른 대응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교수노조와 사교련도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활동에 박차를 가한다. 교수노조는 우선 교원노조법 개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홍 위원장은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노조 설립 문의가 늘어나 활동에 힘이 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사교련은 교원의 단결권 인정을 계기로 교수협의회의 역할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박순준 이사장은 “임금 등 노동문제뿐 아니라 재단 비리 감시 등을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교수협의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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