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22:55 (화)
교수장관의 득과 실
교수장관의 득과 실
  • 이필렬 논설위원
  • 승인 2003.06.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정론

새 정부가 중심을 못잡고 흔들리는 것 같다. 유능한 교수들이 10명도 넘게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장관으로 참여했는데,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갈팡질팡 하는 것은 왜일까. 교수 출신이 많이 도와주는데도 정부가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이 같은 교수로서 안타깝기는 하지만, 조금 냉정하게 평가하면 너무 많은 교수들이 국정에 참여했다는 것이 오히려 부정적인 기능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교수들이 정부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어느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교수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에 참여한 교수들의 문제는 그들 대다수가 정치 훈련을 거치지 못했다는 데 서 오는 것 같다.

정치훈련이란 의원으로 활동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정당에서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정당의 각종 정책입안에 지식인으로서 관여하거나, 정치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정책을 놓고 그들과 꾸준히 의견을 교환하는 것도 정치훈련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정치상황은 교수들에게 이러한 활동을 허락하지 않는다. 제대로 기능하는 정당이 없고, 정책을 놓고 전문지식을 가진 교수들과 토론하고 싶어하는 정치인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수들이 이론에 치우친 지식을 넘어서 정책과 관련한 실무능력이나 조정능력을 겸하기는 어렵다. 이런 교수들이 정부에 참여했을 때 나타날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렇다고 국회의원들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국정감사에서 이치에도 닿지 않는 질문이 쏟아지는 걸 보면, 의원들 중에도 자기 전문영역에 능통한 정치인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들에게는 자기 전문영역을 갖는 것보다 재선이 가장 큰 관심사이고, 이를 위해서는 지역구를 관리하거나 정치자금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관료출신인데, 문민정부 이후 지금까지 크게 비난받지 않고 꽤 오랫동안 장관이나 수석비서를 지낸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 이유는 이들이 정책실무에 능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부처를 장악하고 현상유지를 하는 데는 능할지 모르지만, 개혁의 시각이나 장기적인 시각은 부족하다. 결국 전문영역에 능통한 정치인 또는 교수가 정부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할 터인데,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길러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노 대통령이 강조하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작업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현 시점에서 교수로서 정부에 관여할 때는 실패할 각오를 해야 하고, 시스템 확립이 우선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필렬 논설위원 한국방송통신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