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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6호 새로나온 책
제936호 새로나온 책
  • 교수신문
  • 승인 2018.09.1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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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말말

정치의 지구화

이전 세기에 민족 정체성이 형성된 것은 인류가 지역 부족 범위를 훨씬 넘어가는 문제와 기회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오직 국가 차원의 협력만이 해결을 기대할 수 있었다. 21세기에 이르러 국가들은 과거 부족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 개별 국가는 지금 시대의 가장 중요한 도전을 해결하기에 올바른 틀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지구적 정체성이 필요하다. 국가 단위의 제도는 전례 없는 일련의 지구적 곤경을 다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전 지구 차원의 생태계와 경제와 과학이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민족 단위의 정치에 고착돼 있다. 이런 부조화 때문에 정치 체제가 우리의 주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효과적인 정치를 위해 우리는 생태계와 경제와 과학의 행진을 탈지구화하거나 우리의 정치를 지구화해야 한다. 생태계와 과학의 행진을 탈지구화하기는 불가능하고, 경제의 탈지구화는 십중팔구 비용이 많이 들 것이기 때문에, 유일한 현실적 해법은 정치를 지구화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계 정부’를 수립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의심스럽고 비현실적인 비전이다. 그보다는 한 나라나 심지어 도시 단위의 정치가 작동하는 과정에서도 전 지구 차원의 문제와 이익에 좀 더 무게가 실려야 한다는 뜻이다. 민족주의 감정은 별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는 세계를 하나로 묶는 데 인류의 보편적, 종교적 전통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수백 년 전 기독교와 이슬람 같은 종교는 이미 지역보다 지구 차원에서 생각했고, 늘 개별 국가의 정치적 투쟁 차원을 넘어 생명의 큰 질문에 첨예한 관심을 보여 왔다. 하지만 전통적인 종교가 지금도 적실할까? 아직도 세계를 형성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면 근대 국가와 경제, 기술의 강력한 힘에 의해 여기저기 내던져진 과거의 타성적인 잔재에 불과할까?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역사학과),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전병근 옮김, 김영사, 2018.9) 중에서

 

새로 나온 책

■ 나는 뇌가 아니다 |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 전대호 옮김 | 열린책들 | 456쪽

‘나는 대체 누구인가, 또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오랫동안 정신 철학의 전통 속에서 다뤄져 온 문제였다. 하지만 오늘날 이 자기인식의 물음은 자연과학의 분과 학문인 신경과학에게 점차 자리를 넘겨주고 있고, 그 결과 ‘우리는 우리 뇌다’라는 언술이 직접적으로든 암시로든 우리 시대를 물들이고 있다. 이 책은 인간의 본질을 캐묻는 ‘정신 철학’의 여정으로 우리 시대에 만연한 신경중심주의(우리를 뇌 또는 중추신경계와 동일시하는 주장)에 맞서 인간의 본질과 자유를 규명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우리의 인간상에 대해서 함축하는 바를 대중에게 최대한 많이 알릴 의무가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칸트, 다윈, 프로이트, 신경과학을 넘나들며 정신 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전문 용어를 자제하고 미드, SF 영화, 불상, 뱀, 고양이 등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대상들을 동원하여 다양한 비유와 독창적인 생각 실험, 위트를 버무려 독자들의 이해를 높이고 있다.


■ 명리학의 이해Ⅰ,Ⅱ: 팔자명리학의 형성과 발전의 역사 | 루즈지 지음 | 김연재 옮김 | 사회평론 | 624, 536쪽

이 책은 명리학에 관한 최초의 역사서로서, 명리학이 형성·발전해온 사회·문화적 배경, 그 이론의 연결고리 및 사유방식을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저자는 術數의 분야에 머물러 있는 명리학을 학문의 전당으로 올려놓고자 시도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추구하는 목표는 세 가지로 첫째는 현대의 관념과 용어를 사용하여 전통명리학이 발전해 온 역사를 탐구하고 서술하는 것이며, 둘째는 전통적 명리학이 발전해 온 역사와 그 문화의 원인을 탐색하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명리학에 담긴 전통적 지혜의 특징을 전면적으로 논의하는 것이다. 저자는 철학, 역사, 사회, 경제 등의 종합적인 측면에서 명리학의 이론적 사유를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합리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특히 삶의 불확실성의 논법을 들여다보며, 또한 그 속에 운명을 묘사하고 예측하는 각종의 이론적 형태를 역사적으로 구축하면서 철학적 신념의 중요성을 과감하게 노출시키고 있다.


■ 북한의 화폐와 시장: 수령, 돈, 시장 | 민영기 지음 | 한울엠플러스 | 288쪽

현재 북한 사회는 시장과 권력이 기묘하게 결합한 혼종체제로서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물질적, 문화적 토대를 재구성하고 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물적 토대를 상실한 '수령공동체'와 권력이 된 '화폐'는 적대적 공존의 관계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 책은 북한 변화의 숨은 동인으로 화폐를 주목한다. 북한에서 화폐란 무엇인가? 족쇄가 풀린 화폐가 북한 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저자는 1974년 화폐개혁을 시작으로 북한 사회에서 수령공동체가 완성되고 해체되는 과정에 화폐의 위상과 역할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역사적으로 추적하며, 이미 시장화가 깊숙이 진행된 북한에서 화폐가 수행하고 있는 기능들을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 심도 있게 고찰한다. 그리하여 그 이면에 은폐되어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 모든 사회적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화폐야말로 현재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고 지배하는 ‘최고존엄’임을 입증하고 있다.


■ 어윤중과 그의 시대: 근대 재정개혁의 설계자 | 김태웅 지음 | 아카넷 | 352쪽

이 책은 한국 근대개혁기 재정 문제를 비롯해 국내외 정치와 경제사회 현안을 해결하려다가 아관파천 때 비명횡사한 어윤중(1848~1896)의 삶과 역사적 의미를 사료에 입각하여 서술한 역사평설이다. 주류 학계에서는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의 갑신정변은 자주적인 근대개혁운동으로 높이 평가되는 반면, 어윤중 등 온건 개화파의 활동과 노선은 친청주의란 비판 속에서 그들에 대한 인식과 그들이 근대개혁기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여전히 낮게 평가된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학계의 주류가 사대-독립, 보수-개화라는 이항대립 구도에 입각하여 근대민족운동을 파악하려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윤중은 우리나라 근대개혁기 ‘재정개혁의 설계자’로서 일본과 청나라를 드나들며 국제정세를 익히고 갑오개혁의 중심에서 조세개혁과 경제 근대화를 추진했던 인물이다. 저자는 정세의 새로운 변화와 국내외 현재적 여건을 냉철하게 인식하는 가운데 조선의 경제 근대화를 설계한 시무개혁관료로서 어윤중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 인류학을 넘어서: 사회와 타자 | 버나드 맥그레인 지음 | 안경주 옮김 | 이학사 | 251쪽

인류학은 외부인을 지배하기 위한 기획인가? 저자는 서구 유럽이 외부의 타자를 이해하고 규정해온 방식을 규명함으로써 인류학이라는 학문의 토대와 기원, 즉 “인류학의 고고학”을 추적한다. 그리하여 서구 중심적인 인류학의 비판적 검토를 통해 지금까지 인류학이 서구의 자기 정체성과 전통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기능을 해왔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이를 위해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넘어서 다양한 시대의 문헌들에 생생하게 녹아 있는 유럽인의 눈에 비친 타자성을 직접적이고도 핵심적으로 우리에게 전달해주며, 또한 단순히 시대별로 타자를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에 주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인식의 변화를 이끈 토대를 분명히 규명한다. 서구 인류학 내부로부터 시작된 역사적이고 비판적인 자기 이해로서의 이 책은 서구 중심 인류학에서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촉구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서구 중심주의적 타자성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이분법과 타자성에 대해서도 반성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 혐오와 매혹 사이: 왜 현대미술은 불편함에 끌리는가 | 이문정 지음 | 도서출판 동녘 | 336쪽

“미술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을 추구해야 할까?” “미술이 언제나 아름다움과 행복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폭력 아닐까?” 우리 실제 현실에는 아름다운 비너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마음을 끄는 것이 꼭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이상향을 보여주는 것이 미술가의 의무는 아니다. 모든 미술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주장은 미술에 불필요한 족쇄를 씌우는 것과 같다. 어떤 작품이 훌륭한 예술로서 의미를 갖는지 평가하는 기준은 하나가 아니다.” 이 책은 동물 시체, 폭력, 죽음, 질병, 피, 배설물, 곰팡이, 섹스, 괴물, 투병 과정 등 우리가 혐오스럽게 느껴 낙인찍고 밀어냈던 불편하지만 묘하게 우리의 마음을 끄는 현대미술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저자의 말처럼 이러한 예술작품과 행위를 보고 혐오스럽고 불쾌함을 느낀다면 우리는 ‘미’와 ‘추’를 구분하는 진부함에 길들여져 온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우리 삶에 숨겨진 어떤 진실을 찾으려는 예술가들의 절실한 도전을 마주하면서 ‘혐오와 매혹’ 사이를 느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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