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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무죄 판결이 정당하다고 볼 수 없는 이유
안희정 무죄 판결이 정당하다고 볼 수 없는 이유
  •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 승인 2018.09.10 14:23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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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폴리스 19. 최성호 경희대 교수 주장에 대한 반론

최성호 교수의 글 「안희정 무죄판결이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는 말 그대로 역설적이다. 그 글은 안희정 무죄판결을 정당화하기보다 그 부당성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글은 자충수였다. 자살골이었다.

최성호 교수의 논증을 보자. 그는 먼저 두 가지의 자유 개념을 구분한다. 하나는 ‘달리 행동할 수 있었음’으로의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근원성’으로서의 자유다. 나아가 최 교수는 이 두 가지 개념을 대조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포승줄에 묶인 채 응급환자를 돌볼 수 없었던/돌보지 않았던 의사 철수의 사례를 도입한다. 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철수는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다. 포승줄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달리 행동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관점에서 볼 때 그의 행위는 자기결정권의 행사이다. 그는 진심으로 스스로가 원해서 포승줄에 묶여있었고 따라서 그는 환자의 사망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 논리를 안희정 사건에 적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성관계 이후 김지은은 달리 행동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김지은은 어쩔 수 없음이라는 피해자다움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힘들다. 따라서 재판부는 이 사건을 김지은 스스로가 진심으로 원해서 결정한 성관계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비판 받는 문제적 자유 개념

이렇듯 최 교수는 논증의 과정에서 매우 분석적이고 객관적인 목소리로, 재판부가 ‘피해자다움’을 매개로 하여 ‘다르게 행위 할 수 있었음’의 자유에서 ‘자기근원성’의 자유로 이동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런데 역설의 코미디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재판부가 의지하고 있는 인간의 ‘자기근원성’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날카롭게 비판 받는 문제적 자유 개념이기 때문이다.

사실 ‘자기근원성’으로서의 자유는 근대국가가 시민에게 권리를 부여하려 했을 때나 통용될 수 있었던 구닥다리 개념이다. 물론 당시에도 이 전통적 자유 개념은 인간의 독립성과 이성을 경험적으로 증명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규범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전제’했던 것이었다. 이 전통적 자유 개념은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투명하게 알고 있으며, 그 상황에서 자신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행동한다는 것을 또한 전제로 한다.

그러나 프로이트 이후의 정신분석학이나 언어철학은 자유로운 주체가 허구라고 비판한다. 인간은 무의식적인 차원에 의해 추동되기도 하며, 주어진 언어의 구조는 개인의 일탈을 힘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판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등을 확신할 수 없다. 정희진이 정확하게 지적했듯, 성폭력뿐 아니라 인간의 어떤 행동도, 특히 위력이 있을 경우, 예스냐 노우냐를 정확하게 발화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한 일간지에 「‘안희정 무죄’의 세 가지 위력」이라는 제목으로 쓴 칼럼에서 “인간은 합리적이고 일관된 존재이며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근대 형법의 전제는 의심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자기근원성’으로서의 자유 개념은 여전히 법에 내재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기결정권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규범적으로 전제되는 것이지, 해당 사건이 자기근원적인 결정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를 법정이 대신 판단해 주기 위해 전제되는 것이 아니다. 피해 여성이 사기꾼으로 의심되는 경우에도, 법은 계산적/도구적 합리성의 개입 여부를 심의해야하지 피해 여성의 진심이 무엇이었는지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 10조에 따라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성추행의 여부를 판단하거나, 형법 제 298조에 따라 업무상 위계 관계에서의 강제추행 여부를 판단할 때에도 핵심은 피해자의 진심이 아니라 피해자가 성적자기결정권을 훼손당할 조건에 있었는가의 여부다.

따라서 최 교수의 말대로 재판부가 정말로 자기근원성으로서의 자유 개념에 기반해 피해자의 욕망이 무엇이었는지를 판단하는데 집중했다면, 그 판결은 논점을 벗어나도 한 참 벗어난 것이다. 최 교수의 글은 오히려 재판부의 과오를 널리 알리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이 쯤 되면 꼭 제기되는 반론이 있다. 그렇다면 권력 관계 내의 성 관계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냐, 또는 상대적으로 적은 권력을 갖는 여성은 무조건 피해자라는 이야기냐 등등. 하지만 누가 그런 주장을 하는지 오히려 내가 묻고 싶다. 적어도 내가 아는 페미니즘은 여성을 수동성이나 무능한 피해자다움에 가두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을 욕망 없음, 남근에 의해 침범당하는 무력한 수동성 등으로 대변되는 ‘피해자다움’의 위치에 두는 것이야 말로 여성의 행위자성을 원천봉쇄하는 일이다. 모든 죄의 근원을 자신에게 돌리면서 수치스러워하는 트라우마의 상태를 극복할 수 없도록 만드는 족쇄이다. 김지은이 피해 상황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했던 이유는 피해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수동적이고 무력한 피해자다움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유의 개념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 특히 권력 관계에서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볼 수 없으며, 내 행위가 어떤 의미로 읽혀질 지도 불분명하다. 그렇다면 구조적 위력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동시에 피해자의 자율성을 손상시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탈-중심적 자율성

나는 여기서 악셀 호네트가 제안한 탈-중심적 자율성의 개념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욕구에 투명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욕구를 두려움 없이 찾아가는 능력이 있다. 인간은 완벽한 내적 통일성을 갖지는 않지만 반성적인 시각에서 자신의 삶을 정합적인 서사로 연관시킬 능력이 있다. 인간은 완벽하게 이성적이지는 않지만 각각의 맥락에서 어떤 관계와 강제들이 이를 불가능하게 하는지를 고려하면서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법은 이러한 자율성을 인정하기 위해 존재하며, 이를 훼손시키는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법은 인간이 자신의 욕구를 충분히 탐닉하고 자신의 삶을 메타적인 시각에서 정합적으로 반성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며, 언제 이를 위한 조건이 박탈되는지를 밝혀야 한다. 즉 피해자가 실제로 자율적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자신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존중받을 수 있는 조건이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피해자의 마음에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처했던 조건이 충분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김지은은 다양한 욕망 사이에서 서성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법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김지은 개인의 마음과 욕망이 아니다. 법은 피해자 개인의 속마음을 판단하는 기제가 아니다. 오히려 법은 그녀가 자신의 욕망을 두려움 없이 접합시킬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었는지, 자신의 서사를 정합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기회를 훼손당하지는 않았는지 등을 검토해야 한다. 그녀가 권력 관계로 인해 오히려 도덕적 죄책감 등에 시달리지는 않았는지를 충분히 살펴야 한다.
 
모든 것이 안희정에 대한 충성으로 수렴되고 있는 선거판에서 그녀는 두려움 없이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를 숙고할 수 있었는가, 캠프의 구성원들은 그녀에게 그럴 권리를 주었는가, 그녀가 자신의 자율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인정했는가? 법정은 그녀가 충분히 좋은 조건에 있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왜 조건을 심판해야할 권력의 사건을 개인의 마음의 문제로 성급히 환원하려 하는가?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철학
프랑크푸르트 괴테대에서 사회철학·여성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표 저서로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 공역서로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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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전 2018-09-11 14:16:16
무죄인 것을 유죄로 만들기 위해 애쓰지 마시길.. 오로지 증거로만. 떳떳하다면 증거보존이 최우선이고 모든 증거 취합하려고 애쓸텐데.. 왜 김지은은 제일 먼저 증거인멸부터 했을까오?

ㅇㅇ 2018-09-11 14:28:23
재판전반 지켜봤습니다. 원론만 보지말고 사건을 쫌 보세요.제발..자기의 아이돌이고,업무외 시간에도 자기 버려질까봐 징징징. 여자 지지자들을 적대시하고, 일부 지지자들을 지사님 옆에 못오게하고, 마지막 성폭행 당했다는 날도, 비서도 아니면서 아무도 초청안했는데도 일부러와서 일을 치루고, 증거가 한둘이냐구요?

정순전 2018-09-11 14:27:15
판례해설이라도 보고 말하는건가요?

ㅎㄴㄴㄱ 2018-09-10 15:59:09
로리는 범죄 쇼타는 취향이라던 분이시네

재판부유죄 2018-09-22 15:50:24
반박하신 원글 자체에도 많은 반박 댓글이 달린 걸 보셨을 겁니다. 이곳 댓글과 수준 차이가 크네요. 앞서 반론해주셔서, 그리고 원글의 괴이한 논리를 탁월하게 비판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