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서 ‘주위’로 시선 옮기기
내게서 ‘주위’로 시선 옮기기
  • 김소리울 고려대·의과대학 연구교수
  • 승인 2018.09.1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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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미 오바마 정부는 정밀의료 이니셔티브(PMI, Precision Medicine Initiative) 착수를 공표했다. 정밀의료는 환자의 유전·환경·임상 관련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질병의 위험도를 예측하고, 일괄적인 처방이 아닌 환자 개인별 특성을 고려한 개개인 맞춤형 치료를 목표로 한다. 공표 이후, 미국을 비롯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주요국에서는 정밀의료의 흐름에 동조하며 환자의 멀티오믹스(multi-omics) 유전 정보는 물론, 이미 축적된 의료기록정보(EMR) 활용 방안과 시시각각 변하는 개인의 생활습관, 식이요법 등 환경적 요인에 대한 실시간 정보수집 방법 개발, 더 나아가 이러한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기 위한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첨단 시스템을 의료분야에 접목하고자 하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지금도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의 투자가 이 분야에 이루어지고 있다. 

정밀의료 실현을 위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할 준비는, 다양한 질환 발생의 과학적 근거를 입증할 수 있을 정도의 인구기반 마련, 즉 대규모 코호트(cohort) 확보이다. 미국 PMI는 암을 선행적 핵심 타겟으로 설정하고 발생 위험을 예측하고 맞춤형 치료가 가능할 수 있도록 100만명의 정밀의료 코호트 구축을 목표로 삼았다. 자료 수집 비용만으로도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 목표가 실현 가능하리라 생각한 이유는 과거부터 축적해온 일반인구 또는 군인 등으로 구성된 다수의 코호트 자료를 정밀의료 코호트 구축에 활용할 계획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상당수의 코호트 인프라를 가지고 있으니 이를 수정·보완해 비용을 절감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나라 또한 기구축된 다수의 코호트를 활용한 정밀의료 중장기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필자가 전공한 역학(Epidemiology)이라는 학문은 개인에서, 나아가 인구집단의 질병 분포와 그 분포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을 탐구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감염병의 발생 및 전파 원인을 밝히기 위한 연구로부터 시작했으나, 지금은 대규모 인구집단의 빅데이터를 이용해 암, 심혈관질환 등과 같은 만성질환의 위험요인 발굴에 이르기까지 그 분야가 점차 확대됐다. 역학 연구의 꽃은 단연 코호트 연구로, 관심 질환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건강한 인구를 대상으로 코호트를 구축한 후 그들의 생활습관 및 임상 지표, 과거력, 가족력 등 질병의 원인으로 고려될 수 있는 다양한 노 요인의 정보를 수집하고, 대상자 중 질환이 발생하거나 사망하기까지 코호트를 지속적으로 추적해 노출요인과 질환 발생 또는 사망과의 인과 관계를 밝히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한다. 요즘은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보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개인의 유전 정보도 수집도 할 수 있어 환경 요인뿐만 아니라 유전 요인까지 고려된, 그야말로 정밀의료적 관점의 역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필자는 박사 졸업 후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2년여간 근무한 적 있다. 실무나 정책적 경험이 부족한 초년 박사였지만, 이 기간에 국가 정밀의료 기획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잊지 못할 기회를 얻게 됐다. 의료계뿐만 아니라 공학, 생물학, 의료정보학, 법학 등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전공의 전문가들과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진정한 전문가란 내 전공 분야의 지식을 깊게 다지는 것만큼이나 다른 분야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넓고 깊은 아량과 혜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한, 정밀의료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현재 흐름에 부합한 역학이란 학문의 역할과 역학자의 분명한 역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학위과정 중에는 박사 졸업만 하면 많은 부분이 일단락되리라 생각하며 졸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인고하며 나아간다. 그 바람처럼 졸업하는 순간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모든 준비를 마치게 되면 좋겠지만, 지도교수님이 이끌어주셨던 온실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홀로서기를 하는 과정을 누구나 겪게 되는 것 같다. 이 과정은 대부분 불안정하고, 학위과정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더 큰 책임감에 또 다른 크기의 힘들고 막막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 나의 전공, 나의 연구에 집중하는 것을 멈추고 주위로 잠시 시선을 옮겨보는 숨 고르기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이런 시간을 통해 또 다른 흐름에 관심도 가져보고 그 안에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 나는 어떻게 그 흐름과 함께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훗날 융합연구에 더 적합한 깊이 있는 전문가의 모습이 돼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김소리울 고려대·의과대학 연구교수.
연세대 의과대학에서 역학을 전공하고 대장암의 유전-환경 상호작용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네트워크 의학을 활용한 만성폐쇄성폐질환의 유전-발현형질-환경 상호작용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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