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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과잉과 학습의 빈곤
교육의 과잉과 학습의 빈곤
  • 김영석 편집기획위원/경상대·일반사회교육과
  • 승인 2018.09.10 09:4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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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김영석 편집기획위원/경상대·일반사회교육과

얼마 전 우연히 일선 초중등학교의 연간 교육계획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교과 지도 외에도 인성교육, 통일교육, 경제교육, 독도교육, 다문화교육, 민주시민교육 등 의무적으로 가르쳐야 할 내용이 너무 많은 것이다. 각각의 교육들은 저마다 인성교육진흥법, 아동복지법, 통일교육지원법 등 법령에 근거하고 있어서 ‘강제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것들이다. 교육내용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굳이 법까지 제정해서 강제적으로 가르치게 한 일련의 조치들을 보면서 분노가 치밀었다. 이런 체제라면 사실상 학교나 교사가 자율적으로 뭔가를 해볼 수 있는 여지는 원천적으로 차단된 셈이다. 상당수의 학교들이 형식적인 교육에 그치고 있을 뿐 아니라 굳이 신경 써서 교육프로그램을 가동한다고 하더라도 아이들 눈에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국회의 입법을 통해 강제적으로 시행토록 한 교육의 내용들은 사실 대부분이 수십 년 전부터 학교 교육과정의 중요 부분으로 다루어져 왔던 것들이다. 입법까지 해서 제대로 가르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분들에게는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학교 현장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방식의 어설픈 간섭이 효과는커녕 교육현장에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적은 내용을 깊게 가르치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너도 나도 교육내용을 늘리려는 세력들만 존재하니 학교교육은 수박겉핥기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아이들은 지루함에 몸서리를 친다. 교육은 과잉이지만 실제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별로 없다. 

한국에는 자칭 교육의 전문가도 많을뿐더러 그래서인지 교육에 대한 갖가지 주문이 쏟아져 나온다. 누구나 한국의 교육이 어떻게 잘못 되어있고 따라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한마디씩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교육을 요구하고 요즘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교육을 시행하라고 요구한다. 자칭 전문가들이 말하듯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창의성이 중요하므로 창의성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렇다면 어떻게 창의성을 기를 것인가? 한국의 교육은 왜 창의성을 기르지 못하는가? 입시를 탓하고 교사를 탓할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탓하기 전해 아이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틀대로 만들어가려는 어른들의 헛된 욕심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교실이 재미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선생님들이 재미없게 가르쳐서라기보다는 국가가 재미없는 내용만 잔뜩 가르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중앙집권적 국가 교육과정 체제를 교묘히 이용해 제 뱃속을 채워온 교과이기주의자들은 ‘시대가 이러하니’ 또는 ‘선진국에서는 이런 것을 가르치니’라는 혹설로 갖가지 교육내용들을 교육과정에 포함시켜 왔고, 그러는 가운데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학교 교육과정에 한 자리를 차지한 교과이기주의자들은 그 가운데에서도 재미없고 어려운 내용만을 골라서 시험문제로 만든다. 이해하기 어렵고 재미없어야 학생 입장에서 배우기가 어렵고 또 그래야 입시의 변별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의 고통을 이용해 이른바 명문 대학들이 학교의 명성을 유지하고 입시 학원들이 돈을 번다. 

필자는 이른바 교육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교실 수업을 수개월동안 관찰한 적이 있었다. 그곳 교사들의 현란한 재주를 배워보고자 잔뜩 기대를 가졌지만 실망스럽게도 그들의 수업 방법은 우리의 교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놀라운 것은 자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한참 지나서 깨달은 것이었지만 아이들은 교실에서 배우고 있는 지식들이 자신의 삶과 연계되거나 최소한 호기심이라도 채워주는 것이라는 것에 설득됐기 때문에 교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진 것이다. 교육의 목적이 어른들 생각에 중요한 것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권 실현에 있다는 관점의 차이가 교실에서의 학생의 태도를 바꾼 것이다. 창의성은 그러는 가운데 저절로 발현되는 것이지 우리처럼 억지로 창의적으로 되라고 요구한대서 될 일이 아니다. 현재와 같은 조건이라면 창의성이라는 단어마저 아이들에게는 고통스러움과 지루함의 상징으로 비춰질 뿐이다. 

 

김영석 편집기획위원/경상대·일반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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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30 01:39:48
90공감 : 10
사교육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기보다는, 교과그대로 선행이 들어가는 몇몇 학원이나 과외 때문에 이미 배운걸 지루해하는 몇몇 아이들로 인해서 교실 분위기가 망가지기 때문이라는 점 이미 알고 계실거라 생각됩니다. 그릇된 분위기가 자칫 선행이 안된 다른 아이들에게 재미없음으로 휩쓸려지고, 공부 자체를 본의 아니게 싫어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이 바로 아이들 스스로 재미없음이 아닌, 본의 아니게 스스로의 기회를 박탈당해지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 입니다.

꾸야 2018-09-17 09:28:35
매우 공감합니다.

주종호 2018-09-14 00:02:09
소신있게 아이들 가르치고자 하는 현장 교사로서 위로 받는 듯한 글입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