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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전기 羊의 꿈’을 꾸는가
그대, ‘전기 羊의 꿈’을 꾸는가
  • 서정화 서울대·해양시스템공학연구소 연수연구원
  • 승인 2018.09.03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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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박사후과정에 있는 모든 분에게 해당하겠지만, 박사후과정 연수연구원에겐 새로운 자리로 옮기는 것, 좋은 논문을 작성하는 것, 좋은 논문을 많이 쓰는 것이 주요 관심사라 말할 수 있다. 현재까지 무엇 하나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게 나의 문제겠지만 ‘달걀을 낳아본 적은 없지만, 달걀이 상했는지는 알 수 있으니’ 나름의 평론은 가능할 것 같다.

박사후과정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직이나 취직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건 모두 다 알고 있으니, 구태여 이 글에서 논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심지어 나는 지금 몸담은 연구소 외에 다른 곳과 고용계약을 해본 적도 없기 때문에, 그다음으로 중요한 좋은 논문을 많이 쓰는 것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좋은 논문에 대한 견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많이 읽히고 그 내용과 아이디어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주 인용되는 논문이 좋은 논문의 필수 조건이라는 점엔 대다수가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논문이 좋은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시간이 증명해줄 문제이니, 연수연구원 기간에 그 결실을 확인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특히 내가 속한 조선해양공학 분야는 남다른 보수성 때문에, 연구의 가치를 판별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긴 편이다. 따라서 가능성 있는 연구에 집중하기보다, 알을 수억 개씩 낳는 개복치식의 생존 전략으로 논문을 그저 많이 써내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Publish or perish’를 강조하며 자기네 저널을 알리는 스팸메일들이 빈번하게 오는 걸 보면, 이는 비단 내가 속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추세 같기도 하다. 

논문 ‘생산’이 주를 이루는 현재 상황이 바뀌려면, 박사후과정이 안정적인 직장이 돼 장기적인 연구를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연구 결과에 대한 질적 평가가 주된 평가방법이어야 한다. 이런 연구 환경(조건)은 박사후과정생이 학계나 연구 분야에서 구직할 때 추구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박사후과정생도 살아있는 羊의 꿈을 꾸겠지만, 현실에서는 전기 羊(편집자주: 미국 SF소설가 필립 K.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에 등장하는 인조 생물)을 많이 들이는 것이 나중의 진짜 양을 위한 가능성을 높인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이다. 

박사후과정생에게 필요한 것은 논문을 많이 써서 새로운 자리로 옮기는 것, 그리고 좋은 논문을 많이 쓰는 것으로 정리됐다. 논문을 많이 써내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선 박사후과정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과제가 많아지고, 그것의 비중이 커질 필요가 있다. 물론 어떤 구체화된 생산물이 나와야 하는 연구용역에는 박사후과정생이 책임을 맡기 어렵지만, 기초 연구에서는 박사후과정생을 지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일반적인 정규직 연구자에 비해, 박사후과정생은 이직의 가능성을 항상 안고 있으므로 큰 예산을 들여 연구 장비나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단기적으로 국내외의 타 기관의 시스템을 활용하도록 권장하면 된다. 그리고 만약 과제 종료 전에 박사후과정생이 이직했을 경우, 같은 연구 과제를 이직한 곳에서 지속할 수 있도록 한다면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데도,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연구 과제 지원은 엄정한 정량적 평가로 결정돼야 할 것이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각종 학문후속세대 지원 사업들은 박사후과정생들의 요구사항을 잘 반영하고 있어 다른 연구과제들의 모범이 될 만하다. 나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스위스 박사과정생 연수사업’과 ‘리서치펠로우 지원사업’을 수행한 바 있다. 

‘한-스위스 박사과정생 연수사업’ 덕분에 로잔공과대의 수력학 기계 연구실에서 3개월간 유체역학 관련 연구를 수행했다. 해당 연구실은 전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수준의 실험 시설을 갖추고 있어, 평소 관심을 가졌던 상온에서 저압으로 인한 물의 기화 현상을 억제하는 방안을, 직접 실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은 예산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리서치펠로우 지원사업’ 덕분에 손상 선박의 생존성에 관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이 연구 과제를 통해 얻어낸 초기 결과로 미 해군연구처로부터 추가적인 지원을 받게 됐다. ‘리서치펠로우 지원사업’ 규정에는 연구 중 타 기관으로의 전직 시, 특정 조건을 만족할 경우 연구 과제를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앞서 말한 연구 지속성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서정화 서울대·해양시스템공학연구소 연수연구원.
서울대에서 조선해양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선박의 추진성능 분석을 위한 모형시험 기법에 대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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