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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낙원 혹은 지옥으로 만드는 존재, 인간
섬을 낙원 혹은 지옥으로 만드는 존재, 인간
  • 윤상민
  • 승인 2018.09.03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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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수년 전에 오키나와에 다녀온 이후 인근의 작은 섬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 중에서도 이시가키 섬은 푸른 산호초와 맹그로브 숲, 물소가 끄는 마차가 있다는 이유로 꼭 가고 싶은 곳 우선순위에 올랐다. 섬에 대한 몹쓸(?) 관심은 더해져서 오키나와 본섬 거의 끝자락에 있는 요나구니 섬에 시선이 갔다. 일본이 도쿄에서 2,000km 넘게 떨어진 곳에 자기 영토가 있다는 것 말고 더 놀라운 것은 이 섬 인근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태어난 고장을 한 번도 떠나보지 못했고 어쩌면 바다 구경도 못했을 조선인이 망망대해의 외딴섬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유디트 살란스키의 『머나먼 섬들의 지도』는 이런 호기심을 고스란히 담아낸 지도책이자 섬들에 관한 기록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지구본을 돌리며 가졌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세계지도에 표시된 나라들과 섬들에 대한 지리학적, 인문학적 관심을 ‘머나먼 섬들’을 통해 투영시켰다.

이 지도책에는 북극해에서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 남극해에 이르는 바다에 산재한 50개의 섬들이 표시돼 있다. 무인도부터 수천 명이 사는 유인도, ‘살만한 곳’과 ‘살기 어려운 곳’까지 섬들이 들려주는 사연은 제각각이다.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 중에 혹시 야자수가 서있고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낭만적인 섬을 꿈꾼 사람이 있다면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0개의 섬들’이라는 무시무시한 부제 앞에서 그 기대를 접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만큼 50개의 섬들이 담고 있는 사연들은 적막하고 쓸쓸하다 못해 살벌하기까지 하다. 각각의 사연을 담고 있는 섬은 무인도 그리고 거주자나 주민이 체류하는 유인도로 나눠진다. 각각의 섬에는 육지로부터의 거리와 면적, 소유 국가가 표시돼 있다. 섬의 이름은 대개 발견자의 이름을 딴 것이고 작은 지형 하나까지도 이름이 있다. 쥘 베른 소설의 섬에서와 마찬가지로 섬의 정복자들은 명명하기를 통해 ‘공간의 소유화’를 완성하려 한다.

50개의 섬들 중 은둔자의 섬으로 불리는 북극해의 ‘엔솜헤덴’에는 기상 관측소에 근무자들 몇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1942년 독일 해군의 잠수함이 이 외딴섬을 포격해 근무자들을 죽이고 사라졌다. 대서양의 ‘어센션’ 섬에는 주민들이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1천여 명의 거주자들로 북적인다. 이 섬에는 해저 케이블이 가설돼 있고 미사일 추적소가 있으며 위성 접시들이 산재해 있다. 인도양의 ‘암스테르담’ 섬은 연구를 위한 거주자만 25명이 있는데 섬의 체류 조건은 긴 격리 상태에서 이성 없이 살 수 있는 남자이다. 이처럼 거주자만 사는 섬의 경우 대개 군사적, 과학적 목적에서 남성 체류자들이 격리돼 살아가는 것으로 짐작된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유인도라고 해서 섬의 생존 여건이 녹녹한 것은 아니다. 태평양의 ‘노퍽’ 섬은 주민 2천128명이 살고 있는 비교적 큰 섬이다. 이 섬은 범죄자들의 유배지로 이용됐다. 교도소장이 여왕의 생일을 맞아 죄수들을 풀어주고 마음껏 먹고 마시고 놀게 했는데 저녁이 되자 양떼들처럼 스스로 감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이 섬 자체가 이미 거대한 감옥이었다. 태평양의 ‘티코피아’ 섬의 역사와 생존을 위한 규칙은 일견 수긍이 가면서도 가혹하기만 하다. 4.7제곱미터의 작은 섬에 주민 1천200명이 살다보니 인구 증가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섬의 식량은 1천200명이 간신히 먹을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농사를 망치면 몇몇 사람은 죽어야 하고 장남만이 가족을 꾸릴 수 있다.

서구에서는 대항해 시대를 거치며 바다를 통한 세계 일주부터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바다 저 편과 외딴 섬에 대한 관심을 이어왔다. 무인도 이야기를 쓴 『파리 대왕』의 월리엄 골딩과 『포』의 존 맥스웰 쿠체가 노벨 문학상을 탔으니 서구인들의 이국의 섬에 대한 관심은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들이 소설을 통해 혹은 실제 항해를 통해 묘사하거나 기록한 섬들의 공통점은 섬이 인간의 가치나 효용성에 따라 나눠지고 재단된다는 사실이다. 무인도이건 유인도이건, 살만한 곳이건 살기 어려운 곳이건 섬은 태곳적부터 오랜 기간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있었다. 저자의 말대로 섬을 낙원으로 만들거나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인간이다. 대서양의 ‘브라바’ 섬이 ‘길들일 수 없는’이라는 뜻을 지니고, 북극해의 ‘비에른’ 섬이 곰 섬으로 불릴 이유는 전혀 없다. 자연의 소유화와 인간의 유용성에 따라 섬이 재단된 결과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마지막으로 태평양의 ‘바나바’ 섬에서 일본군이 2차 세계대전 때 주민 143명을 학살했다는 기록이 눈에 띈다. 그들은 패망일이 5일이나 지나 절해의 고도에서 왜 살육을 저질렀던 것일까?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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