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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을 위하여  
‘중간’을 위하여  
  • 문성욱 소르본대 박사과정·중세프랑스문학
  • 승인 2018.09.0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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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대학은 지금_ 중기프랑스어국제학회 제7회 학술대회 참관기

지난 6월 13일부터 16일까지, 파리의 소르본과 프랑스 학술원에서는 ‘문학사, 언어사: 1965년-2015년의 결산과 전망’을 주제로 중기프랑스어국제학회(Association internationale des Études sur le Moyen Français)의 일곱 번째 학술대회가 열렸다. 먼저 중기프랑스어(moyen français)에 대해 말해자면,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14세기 초중반에서 15세기 말까지 사용된 프랑스어’를 가리킨다. 하지만 언어의 진화 과정을 서로 다른 시기로 나누는 것은 물론 자명한 일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중세 후기와 16세기가 언어학적으로 연속된 하나의 시간대라 여기며 그 전체를 중기프랑스어에 귀속시키기도 하는데, 어느 경우든 언어의 역사는 중세·르네상스, 중세·현대의 일반역사학적 구분을 함께 고려하게 된다. 아래에서 확인하게 되겠지만, 학회에서도 여러 발표자가 연대기적 경계를 넘나들며 이 난제에 대해 성찰했다. 

시기 구분과 관련하여 번역어를 짚어보자. 14세기 초반을 경계로 나뉘는 ‘ancien français’와 ‘moyen français’를 한국 불어불문학계에서는 자주 ‘고대프랑스어’, ‘중세프랑스어’로 옮겨 왔다. 그런데 프랑스어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476)과 함께 고대가 끝나고 라틴어가 분화하며 생겨난 로망어 중 하나로, 「스트라스부르 맹약(Serments de Strasbourg)」(842)에서 처음 문헌적 증거를 남긴 이래 12세기가 돼서야 다양하고 폭넓은 용례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즉 애초부터 중세의 산물이라고 해야 할 프랑스어의 역사적 국면들을 고대·중세로 지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중세프랑스어’는 르네상스 이전의 프랑스어 전체를 지칭할 때(français médiéval)로 제한돼야 하며, ‘ancien français’와 ‘moyen français’의 경우 여기에서는 최근의 제안에 따라 ‘古프랑스어’ 및 ‘중기프랑스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김준한·김지은, 『중세프랑스어학 용어 ancien français와 moyen français의 번역』, <프랑스어문교육> 48호, 2015 참조).  

‘중간’에 대한 시각들

그런데 ‘중기’와 ‘중세’를 혼동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만이 아니다. 「왜 중간인가?(Pourquoi moyen?)」라는 제목의 기조강연에서 미셸 쟁크(Michel Zink)는 형용사 ‘moyen’이 대개 ‘보잘 것 없다’는 부정적 함의를 띤다는 점을 상기하고, 이 일상적 용법이 이성의 고대·르네상스 사이 긴 몽매의 막간에 인문주의자들이 덧씌운 ‘중세(Moyen Âge)’ 개념과 궤를 같이 한다고 지적한다. ‘중기’프랑스어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용어를 확립하고 최초의 심도 깊은 연구를 제시한 페르디낭 브뤼노(Ferdinand Brunot)의 『프랑스어사(Histoire de la langue française)』 1권(1905)에서부터 거기에는 “낡은 언어가 파괴되고 현대의 언어가 형성되는” 이행기의 규칙도 균형도 없이 무질서한 언어라는 단정이 따라붙었다. 중기프랑스어는 ‘중세의 중세’가 된 셈이라, ‘중세프랑스어’도 오역만은 아니라고 하겠다. 

중기프랑스어와 그 문학에 관심을 쏟은 연구자들은 끈질긴 고정관념을 불식시키기 위해, 무질서 속에 숨은 질서를 찾거나 무질서를 역동성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애써왔다. 이번 학회가 기점으로 제시한 1965년, 다니엘 푸아리옹(Daniel Poirion)은 『시인과 군주(Le Poète et le Prince)』에서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부터 샤를 도를레앙(Charles d’Orléans)에 이르는 궁정시 전통의 다양한 결을 복원하면서 중세 후기의 문학적 성취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길을 열었다. 로베르 마르탱(Robert Martin)의 『시간과 相(Le temps et l’aspect)』(1971)은 중기프랑스어의 독자성을 규명하려는 언어학적 노력을 개시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중기프랑스어가 古프랑스어의 단순미를 잊은 현학자의 언어일 뿐이라거나 프랑수아 비용(François Villon)처럼 드문 예외밖에 내세울 유산이 없는 빈곤한 언어라는 기존 평가는 적어도 학계에서는 설자리를 잃었다. 오히려 중기프랑스어에 대한 관심이 중세 프랑스의 문학·언어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나흘에 걸친, 발표자만 마흔여 명에 이르는 학회의 규모는 연구의 활기를 가늠하게 하며, 그 분위기가 ‘결산’보다 ‘전망’에 쏠려 있었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까닭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왕비 이자보 드 바비에르(Isabeau de Bavière)에게 책을 바치는 크리스틴 드 피장(Christine de Pizan) (British Library, Harley MS 4431, f° 3r). 

이행기의 풍요

연구가 활발하다는 것은 할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먼저 텍스트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확보하고 연구자 및 대중의 폭넓은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비평판 편찬 등의 문헌학적 작업을 꼽아야 한다. 지난 수십 년간 가장 활발히 연구됐던 ‘최초의 여성 직업작가’ 크리스틴 드 피장(Christine de Pizan)의 전작 판본이 아직 마련되지 못했다는 데서 남은 과제의 무게를 짐작해 볼 만하다. 시인 외스타슈 데샹(Eustache Deschamps)의 전집처럼 낡은 판본을 갱신해야 할 경우도 적지 않다. 

판본 문제가 중세연구의 시작부터 존재했던 것이라면, 이번 학회뿐 아니라 최근 중세연구 전반의 경향으로 눈에 띄는 것은 편자의 손길을 거쳐 현대화되기 이전의 텍스트를 담고 있는 수고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다. 수고본은 단지 과거의 글을 전해주는 매개체일 뿐 아니라 자체적으로 해석돼야 할 하나의 작품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책자의 내용, 제작 방식, 전파 과정으로부터 연구자들은 텍스트가 동시대 및 가까운 후대에 어떻게 수용되고 이해됐는가를 짐작하고, 장르에 따라 더욱 다채로운 접근을 시도하기도 한다. 가령 연극에 대해서는 문자적 전승과 실제 무대공연 사이의 관계가 질문거리로 된다. 

15세기 중엽부터 수고 문화는 인쇄술과 경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흔한 생각과 달리 구텐베르크의 발명이 즉각적이고 완전한 변혁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초기 인쇄물은 장정, 필체 등에서 쉽게 구별하기 힘들 만큼 수고본의 형태를 답습했다. ‘묵은’ 창작물이 신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일도 빈번했다. 야코부스 데 보라기네(Jacobus de Voragine)의 성인전 모음집 『황금전설(Legenda aurea)』이나 기사도 소설 『호수의 랑슬로(Lancelot du Lac)』 등 숱한 옛 작품이 활자화됐다는 사실로부터 중세 전통의 지속적 영향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중세와 현대 사이 단절과 연속성을 다시 생각해 봄직 하거니와, 1500년 전후 활동한 파리의 인쇄업자 앙투안 베라르(Antoine Vérard)에게 중세연구자들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 혹은 흔히 르네상스의 상징적 걸작으로 꼽히는 제바스티안 브란트(Sebastian Brant)의 작품 『바보배(Das Narrenschiff)』의 프랑스 수용에 학회의 한 부분이 할애된 것은 시사적이다. 

중기프랑스어는 번역의 언어이기도 하다. 샤를 5세(Charles V, 1364-1380 재위)는 번역을 국가적 사업으로 삼았고, 그의 치하에서 니콜 오렘(Nicole Oresme)과 같은 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저작을 프랑스어로 옮겼다. 이론이자 기술로서 이중적 성격을 띤 의학 분야에서는 외과수술 교본처럼 실용적인 텍스트도 번역의 대상이 됐다. 독자의 필요나 당대의 사고 지평에 맞추어 원본을 변형시키는 일이 잦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복잡한 운동의 맥락과 여파를 좇는 것은 지성사, 나아가 문화사와 사회사의 주제가 될 것이다. 다만 언어의 관점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중기프랑스어 특유의 복잡한 통사나 기이한 조어가 많은 부분 라틴어를 모방한 ‘번역투’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번역은 단지 ‘콘텐츠’를 이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말의 질료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옛 언어, 새 연구

중세연구의 모든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경향으로, 낡은 문헌의 탐구가 자주 근래의 기술적 발전에 힘입는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의 갈리카(Gallica)처럼 수고본을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가 없었다면 수고본 연구가 지금만한 활기를 띠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텍스트역사연구소(IRHT)가 운영하는 조나스(Jonas, 중세프랑스어·오크어 문헌 카탈로그)와 같은 데이터베이스의 역할도 크다. 

정보기술로부터 중기프랑스어 연구가 특별한 혜택을 입고 있다면 그것은 『중기프랑스어 사전(Dictionnaire du Moyen Français)』 덕분이다. 2003년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열람할 수 있게 한 이 사전은 물리적 책의 한정된 지면에서라면 생각하기 어려웠을 다양한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아직 명확한 철자법 규범이 부재하는 중기프랑스어의 텍스트를 해독할 때 단어별 이형 목록과 표준형검색기능(lemmatisation)은 큰 도움이 된다. 여러 온라인 사전으로 연결되는 링크 시스템은 어휘의 의미와 역사에 대한 폭넓은 조망을 제공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벌써 종이책 17,000쪽 분량에 이르는 이 사전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기프랑스어 사전』은 주기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수정·보완되고 있는 진행형의 사전이기 때문이다. 

언어학 분야의 기조강연을 맡은 로베르 마르탱은 『중기프랑스어 사전』 프로젝트의 수장으로서 현황을 점검하며 어려움과 한계-예컨대 점점 복잡해지는 프로그래밍으로 인한 데이터의 불안정성-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중세의 경계 너머를 살필 때, 그리하여 아직 충분히 신뢰할 만한 사전이 만들어지지 못한 16세기 르네상스 프랑스어에 대해서도 그만큼 야심찬 기획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을 때, 그것은 자신감을 되찾은 ‘암흑의 시대’가 ‘문예부흥’에 묵은 빚을 청산하는 몸짓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문성욱 소르본대 박사과정·중세프랑스문학
13세기 시인 뤼트뵈프를 통해 중세문학에서 ‘저자’의 출현과 역사적 조건 사이의 관계를 조망하는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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