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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쥐와 뱀의 한여름 피신처
들쥐와 뱀의 한여름 피신처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8.09.03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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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06. 환삼덩굴

환삼덩굴은 버려진 들판의 묵정밭이나 논, 밭가에 흔하게 자라는 삼과의 한해살이덩굴성풀이다. 검질기고 그악스런 식물 아니랄까봐, 원래부터 한국·일본·중국·대만·러시아 등의 온대지방이나 열대 베트남 지방 등지에서 자생했으나 미국, 캐나다 등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쇠붙이를 쓸거나 깎는 줄칼처럼 쓰는 연장을‘환’이라고 하는데 따가운 잔가시가 달린 환삼덩굴의 줄기가 환을 닮았고, 또 잎이 삼(麻)처럼 생겼다해 환삼덩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줄기는 매우 질긴 것이 네모지고, 엄청 길게 벋어 2~4m에 이르고, 아래(뿌리 쪽)를 향한 거친 가시가 잔뜩 나 있다. 줄기나 잎자루에 가득 난 칼날 같은 잔가시들은 손 장갑에 쩍쩍 달라붙고, 손바닥을 아프게 찌를 뿐더러 자칫 방심했다가는 손등, 종아리를 긁히기 일쑤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제 나름의 목적과 이유가 있다” 하지 않는가. 덩굴줄기에 난 가시는 다목적이다. 첫째는 다른 초식하는 벌레곤충을 얼씬도 못하게 막고, 둘째는 줄기를 다른 물건이나 푸나무에 걸쳐 미끄러지지 않고 감아 올라가기 위함이다. 줄기를 손으로 가볍게 쥐고 줄기 끝에서 뿌리방향으로 잡아당기면 스르르 부드럽게 미끄러져 내려가지만 반대로 끌어올리면 척척 걸려 꼼짝 않는다.

잎은 꺼칠꺼칠한 것이 마주나고, 길이는 2~3m에 이르며, 밝은 녹색으로 가장사리가 5-7갈래로 깊게 갈라져 손바닥을 닮았다. 갈래 잎(裂片)은 난형이고, 가장자리에 규칙적인 톱니가 있으며, 양면에 거친 털이 빽빽하게 난다.

환삼덩굴. 사진 출처=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 정보 

환삼덩굴(Humulus japonicus)은 자웅이주(암수 딴그루)라 꽃은 7~10월에 암수 딴 포기에 핀다. 수꽃은 황록색이고, 수술이 5개씩이며, 암꽃은 짧은 총상 꽃차례(總狀花序)로 긴 꽃대에 여러 개의 꽃이 어긋나게 붙는다. 열매는 둥그스름하고, 길이와 폭이 각각 4~5mm, 황갈색이며, 9~11월에 익고, 딱딱한 씨앗이 하나 들었다.

그리고 환삼덩굴(Asian hop)의 수놈식물체는 암식물체에 비해 우뚝 솟으니, 따라서 환삼덩굴이 빽빽한 곳에는 암꽃 위로 수꽃이 솟아올라서 마치 뭔가를 찾아 두리번거리듯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환삼덩굴이 고개를 치켜들고 죽기 살기로 내쳐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이 바닷가의 지진해일(tsunami)을 연상케 한다.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하고, 알칼리성식물이라 특히 연탄재를 버린 쓰레기더미자리에 가장 잘 자란다. 다시 말하면 한 때 연탄재는 밭에 뿌렸으니 연탄재가 산성화된 흙을 알칼리성으로 바꿔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암튼 주변에 환삼덩굴이 많이 보인다면 그곳 주변 환경이 쓰레기터처럼 지저분하고 불결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식물을 칭칭 휘감아서 말라죽게 하고, 펑퍼짐한 매트모양으로 사방을 두껍게 덮어 밑에 든 식물을 꼼짝달싹 못하게 엉켜 깔아뭉갤뿐더러 악착 같이 빛을 차단해 말라 죽게 하니 나날이 서식처를 거침없이 넓혀간다. 외래종인 가시박이나 토종 칡넝쿨이 작은 나무들을 타고 올라가 역시 잎으로 빛을 가려 죽이듯이 말이지. 어쨌거나 어린 환삼덩굴을 미리미리 잡아주지 않으면 무성하게 자라 가시풀밭이 되고 만다.

덩굴식물 중에서는 잔가시가 유별나게 발달해서 맨손은 물론이고 장갑을 끼어도 처리하기가 매우 어렵다. 어느 핸가는 호박들조차도 감히 가까이 다가서지(犯接) 못하는 것을 봤다. 그래서 호박넝쿨이 올라갈 자리에 난 어린 것들을 뽑아주는 것도 큰일이다. 환삼덩굴이 무성하게 우거진 풀밭은 들쥐나 뱀들에게 한여름의 피난처이고, 잎벌레와 네발나비의 먹이식물로 어미나비가 환삼덩굴의 잎에 알을 낳는다. 하여튼 이 곤충을 제하고는 천적동물이 없을 정도이다.

사실 겉으로 보면 마냥 평화로워 보이지만 식물들끼리도 물, 양분, 햇빛을 서로 많이 차지하기 위해 동물 못지않게 피 터지게 서로 아귀다툼을 한다. 배게 뿌려진 얼갈이배추나 다른 밭곡식들을 봐도 상대를 밀치거나 잎을 옆 식물에 턱 걸쳐 그림자를 지워 녹여버린다.

그런데 넝쿨이 물체를 돌돌 감고 올라가는 방향에 따라 왼감기(左券, sinistral)와 오른감기(右券, dextral)로 나눈다. 다시 말하여 위에서 보아 반시계 방향으로 타래처럼 감고 올라가는 것을 왼감기라 하며, 환삼덩굴·콩·칡 등이 있고, 또 위에서 보아 시계방향으로 감고 오르는 것을 오른감기라 하여 으름덩굴·등나무 등이 있다.

환삼덩굴은 꽃가루 병(花粉病)을 일으키기 때문에 유해식물로 취급하고, 줄기가 피부에 닿으면 가렵고 따갑다. 그러나 이만저만 껄끄럽고 꺼림칙한 환삼덩굴이지만 특별히 독이 없는 식물이라 돼지나 토끼들도 잘 먹고, 여린 잎은 데쳐서 무침이나 쌈으로 먹으며, 쌉쌀하면서 달짝지근하다한다.

그리고 여태 저 풀이 약 되는 줄 몰랐네. 열매와 식물 전체(全草)를 약용하는데 환삼덩굴을 한방에서는 ‘율초’ 또는‘한삼’이라고 부르고, 여름철 잎이 무성할 때 베어서 말린다. 말린 잎은 가루로 내어 복용하는데 풀 냄새가 약간 풍기고, 맛은 달고 쓰다. 고혈압의 여러 증상·수면장애·두통·시력장애·이명·손발 저림·언어장애 등에도 좋다. 또 모기나 뱀에 물렸을 때에도 짓찧어 환부에 바른다고 한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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