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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의 독일 대학에 침투한 시장논리 
훔볼트의 독일 대학에 침투한 시장논리 
  • 김상무 한독교육학회 회장/동국대(경주)·교직부
  • 승인 2018.09.0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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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고등교육 ③ 볼로냐 프로세스 

1998년 5월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교육부장관들은 파리 소르본대에서 유럽시민들의 이동성과 노동시장에 필요한 자격획득을 위한 열쇠로 유럽 고등권역 창출을 결의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 기초해 1999년 6월에는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에서 유럽 30개국(2018년 현재는 48개국)이 참가해 유럽 고등교육권역 창출을 위한 볼로냐선언에 서명했다. 이 선언이 제안하고 있는 6가지 핵심적인 목표는 ‘△노동시장에서 자격획득과 유럽 대학시스템의 국제경쟁력을 지원하는 졸업증서 시스템 도입  △학사와 석사 학위제도 도입 △학생들의 이동성 높이기 위한 학업성적 평가시스템의 도입 △학생과 교수의 국제적 이동성 지원 △대학교육의 질 보장을 위한 유럽 공동협력 지원 △대학 교육과정 개발 △대학 간 협력 등 대학영역에서의 유럽적 측면 강화’였다.

이후 2~3년마다 계속되고 있는 볼로냐 프로세스로 불리는 후속회의들에서 정책적 목표들이 확대·구체화되고 각 국의 진행상황이 보고·논의되고 있다. 평생교육, 대학과 학생의 참여, 대학교육의 질 보장을 위한 추가적인 지원, 볼로냐 프로세스 실현과정에서 사회적 측면의 고려, 유럽 고등교육권역의 전 세계적인 매력 제고, 유럽 고등교육권역과 함께 지식기반사회 두 번째 기둥으로서의 유럽 연구권역의 정착 등이 그런 목표들이다. 

지난 2월 독일 州문화교육부장관회의와 연방 교육연구부가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은 볼로냐선언 서명 이후 지난 20여 년간 유럽 고등교육권역 창출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해왔다. 그 중 과거 대학 졸업생들에게 석사학위 수준의 디플롬(Diplom), 마기스터(Magister) 학위를 수여하던 것에서 학사(BA)와 석사(MA)의 단계적 학위제 도입, 대학의 국제화, 대학교육 질 보장을 위한 공동의 기초 마련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가 이루어졌다. 

2017/18학년 기준으로 독일에는 학사 혹은 석사학위로 종료되는 1만7천508개의 교육과정이 존재하는데, 이는 전체 대학 교육과정의 약 91%에 해당한다. 이것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학사와 석사 학위제도가 거의 모든 독일 대학에서 정착됐음을 보여준다. 볼로냐 프로세스에서는 전체 대학생들의 최소 20% 이상이 적어도 3개월 이상 학습이나 실습목적의 외국 거주 경험을 습득하도록 하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고학년 독일 대학생의 30%가 외국 거주경험을 가진 것으로 조사돼 이미 목표를 초과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외국인 학생도 전체 대학생의 12.8%에 달하고 있어서 학생들의 국제적인 이동성 확보에도 큰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3만2천개 이상의 국제 협력프로그램, 거의 1천700개의 국제 교육과정, 그리고 약 600개 공동학위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등 대다수의 독일 대학들이 대학의 국제화를 확대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대학교육 디지털화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온라인 대학으로의 전환, 새로운 온라인 교육과정 개설, 디지털화 지원 구조 확대, 교수자 학문적 경력의 필수적인 요소로서의 디지털 매체활용능력 정착, 대학생들의 디지털역량 강화 등 다양한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다. 

대학교육의 질 보장을 위한 장치로는 외부기관에 의한 인증이 대표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 2005년에는 ‘독일 대학 교육과정 인증 재단’ 설립 법을 제정해 인증이 새로운 법적 기초에 근거해 수행되도록 하고 있다. 각 대학의 교육과정과 대학시스템에 대한 인증은 인증기관에서 실시하고, 인증위원회에서 인증기관에 대한 승인을 담당하고 있다. 전공내용 구성, 강의의 질, 교육프로그램의 이수 가능성, 직업 연관성, 양성평등의 보장, 특별한 상황에 놓인 학생들의 기회균등 보장 등이 인증의 기준이다.

대학은 학문이라는 단어를 가장 깊이 있고 폭넓은 의미에서 탐구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훔볼트의 관점이 지배적이었던 독일의 대학은 볼로냐 프로세스에 따라 시장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곳으로 변화해왔다. 이미 볼로냐선언은 노동시장에 필요한 자격획득과 국제경쟁력 확보가 목표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상대적으로 폐쇄적이었던 독일 대학 개혁의 필요성과 시대상황에 따라 볼로냐 프로세스 같은 변화가 필요했다 할지라도 대학의 근본적인 역할과 사명에 대한 논의가 없는 개혁은 허무할 수밖에 없다. 독일의 보고서는 유럽 고등교육과 연구권역 형성을 위해서는 학문과 연구의 자유, 교육기관의 자율성, 그리고 교수, 학생, 연구자들의 참여 보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제도와 시스템 개혁 중심의 볼로냐 프로세스가 대학의 본질적인 존재이유를 성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상무 한독교육학회 회장/동국대(경주)·교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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