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만 켜면 나오던 연예인이 공황장애로 휴식(치료) 시간을 갖는다는 소식은 새삼스럽지 않다. 꼭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공황장애 혹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장애는 우리가 매일매일 맞닥뜨리는 친숙한 감정, 바로 불안과 공포에서 비롯된다. 소위 말해 그들은 불안과 공포를 '강하게' 느낀다.
반대로 똑같은 일을 당했는데도 공황장애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여전히 TV만 켜면 등장해 위트 있는 말을 내뱉고,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유지하며 사람들로 가득한 금요일 밤 거리를 걷는다. 목표 달성 과정에서 발생한 위험이나 장애도 끝내 해소하고 극복해 전진한다. 소위 말해 그들은 불안과 공포를 상대적으로 '덜' 느낀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람이 자라난 환경 때문일까, 아니면 그 사람이 '선천적으로' 불안과 공포를 더 강하게 느끼기 때문일까? 만약 선천적이라면 공포와 불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한진희 KAIST 교수(생명과학과)와 박형주 한국뇌연구원(KBRI) 선임연구원의 공동 연구팀이 지난달 16일 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이 의문을 해소하는 답을 내놓았다.
“생쥐 실험으로 포식자의 냄새에 대한 본능적 공포 반응을 결정하는 전두엽-편도체 뇌신경회로를 발견했다. 공포에 대한 선천적 반응이 뇌 속에 어떤 식으로 코딩됐는지를 보여주며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불안 및 공포 뇌질환 치료 기술에 활용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진희 교수팀은 공포 반응을 조절하는 신경회로의 이면에 주목했다. 공황장애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에게서 공포 반응을 조절하는 두뇌 회로가 고장 난 것처럼, 기능 이상을 보이는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교수팀은 뇌 신경회로가 올바르게 작용하는 원리를 이해해야만, 위 장애에 따른 질환들(불면증, 과호흡 등)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주목한 건 전측대상회 피질(ACC, anterior cingulate cortex)이라는 전두엽 기능이었다. 신체적인 고통에 반응하고 통증 정보를 처리하는 뇌 영역으로 알려진 전측대상회 피질은 복잡한 두뇌 부위 가운데 가장 고도의 연산 기능을 수행하는 전전두엽 피질(PFC, prefrontal cortex)의 일부분이다.
한 교수팀은 생쥐 전측대상회 피질 영역의 신경세포인 뉴런을 억제하자, 포식자인 여우의 냄새에 대한 공포 반응이 커지고 반대로 자극했을 때는 공포 반응이 적어지는 걸 확인했다. 또한 다양한 신경망 추적 기법을 활용해, 전측대상회 피질-배외측 편도체핵 하위 연결망이 전측대상회 피질과 동일한 선천적 공포 조절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 하부 회로를 억제시키자 여우 냄새에 대한 공포 반응이 커졌고, 같은 회로를 자극시키자 공포 반응이 적어졌다. 전측대상회 피질, 그리고 전측대상회 피질-배외측 편도체핵 하위 연결망이 선천적 공포 반응을 조절하는 핵심인 것이다. 한 교수팀은 생쥐의 포식자 범위를 코요테, 들쥐까지 확대해 선천적 공포 반응 조절 기능을 보다 명확히 규명했다. 다음은 한진희 교수와의 일문일답.
▲공포가 왜 중요한가?
“포식자나 위험 상황에 적절하게 공포 반응하는 게 생존에 이롭기 때문이다. 통증을 느껴야 몸을 적절한 때 치료할 수 있는 것처럼, 포식자나 위험 상황에 적절하게 공포 반응해야 포식자와 그런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적절한 공포 반응은 무엇인가?
“실험에서 생쥐를 자극한 여우 냄새는 매우 미약한 자극이다. 그런데도 어떤 생쥐는 ‘freezing(동결, 포식자를 만나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 몸이 굳는 현상)’을 심하게 했다. 그렇게 될 경우, 오히려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여우 냄새는 여우라는 포식자가 나타났다는 증거가 아니다. 포식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생쥐는 경계를 취해 포식자에 대비해야 한다. 공포 반응이 지나치게 강할 경우, 생존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인간에게 포식자는 누구(무엇)인가?
“포식자는 본능적, 선천적 공포를 말하기 위한 방편이다. 어떤 사람은 뾰족한 것에 공포를 느끼거나(선단공포증), 높은 곳에 올랐을 때 공포를 느낀다(고소공포증). 이런 공포는 선천적인 공포라고 말할 수 있다. 태어난 뒤 배우지 않아도, 경험하지 않아도 공포를 느끼게 하는 대상을 포식자라 비유한 것이다. 하지만 한 인간과 그의 포식자 간의 관계는 매우 복잡해, 지속적인 연구를 필요로 한다.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건, 동물은 포식자와의 관계가 훨씬 간명하기 때문이다.”
▲연구결과를 보니, 공포 반응 원리에서 전측대상회 피질(ACC)이 매우 중요한 부위다.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근거 없이 말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여러 상상을 해보면(가설을 세워보면), 사람이 힘든 일을 극복하거나 해결하려 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 이 전측대상회 피질(ACC)이다. 그런데 힘든 일을 극복하거나 해결하려 할 때 함께 말하는 것이 용기, 의지 등이다. 전측대상회 피질이 이 용기, 의지와도 관련돼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
▲연구결과가 사회과학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큰 것 같다. 다음 연구주제가 궁금하다.
“사회관계로 확장해 연구할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다음 연구주제를 말하라면, 노코멘트다(웃음).”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