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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공포에 예민한 '선천적' 이유
당신이 공포에 예민한 '선천적' 이유
  • 양도웅
  • 승인 2018.08.2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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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을 찾아서_⑥한진희 KAIST 교수(생명과학과)

TV만 켜면 나오던 연예인이 공황장애로 휴식(치료) 시간을 갖는다는 소식은 새삼스럽지 않다. 꼭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공황장애 혹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장애는 우리가 매일매일 맞닥뜨리는 친숙한 감정, 바로 불안과 공포에서 비롯된다. 소위 말해 그들은 불안과 공포를 '강하게' 느낀다.

반대로 똑같은 일을 당했는데도 공황장애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여전히 TV만 켜면 등장해 위트 있는 말을 내뱉고,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유지하며 사람들로 가득한 금요일 밤 거리를 걷는다. 목표 달성 과정에서 발생한 위험이나 장애도 끝내 해소하고 극복해 전진한다. 소위 말해 그들은 불안과 공포를 상대적으로 '덜' 느낀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람이 자라난 환경 때문일까, 아니면 그 사람이 '선천적으로' 불안과 공포를 더 강하게 느끼기 때문일까? 만약 선천적이라면 공포와 불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한진희 KAIST 교수(생명과학과)와 박형주 한국뇌연구원(KBRI) 선임연구원의 공동 연구팀이 지난달 16일 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이 의문을 해소하는 답을 내놓았다.

“생쥐 실험으로 포식자의 냄새에 대한 본능적 공포 반응을 결정하는 전두엽-편도체 뇌신경회로를 발견했다. 공포에 대한 선천적 반응이 뇌 속에 어떤 식으로 코딩됐는지를 보여주며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불안 및 공포 뇌질환 치료 기술에 활용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진희 교수팀은 공포 반응을 조절하는 신경회로의 이면에 주목했다. 공황장애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에게서 공포 반응을 조절하는 두뇌 회로가 고장 난 것처럼, 기능 이상을 보이는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교수팀은 뇌 신경회로가 올바르게 작용하는 원리를 이해해야만, 위 장애에 따른 질환들(불면증, 과호흡 등)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주목한 건 전측대상회 피질(ACC, anterior cingulate cortex)이라는 전두엽 기능이었다. 신체적인 고통에 반응하고 통증 정보를 처리하는 뇌 영역으로 알려진 전측대상회 피질은 복잡한 두뇌 부위 가운데 가장 고도의 연산 기능을 수행하는 전전두엽 피질(PFC, prefrontal cortex)의 일부분이다. 

한 교수팀은 생쥐 전측대상회 피질 영역의 신경세포인 뉴런을 억제하자, 포식자인 여우의 냄새에 대한 공포 반응이 커지고 반대로 자극했을 때는 공포 반응이 적어지는 걸 확인했다. 또한 다양한 신경망 추적 기법을 활용해, 전측대상회 피질-배외측 편도체핵 하위 연결망이 전측대상회 피질과 동일한 선천적 공포 조절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 하부 회로를 억제시키자 여우 냄새에 대한 공포 반응이 커졌고, 같은 회로를 자극시키자 공포 반응이 적어졌다. 전측대상회 피질, 그리고 전측대상회 피질-배외측 편도체핵 하위 연결망이 선천적 공포 반응을 조절하는 핵심인 것이다. 한 교수팀은 생쥐의 포식자 범위를 코요테, 들쥐까지 확대해 선천적 공포 반응 조절 기능을 보다 명확히 규명했다. 다음은 한진희 교수와의 일문일답. 

ACC 영역의 활성 조절에 의한 본능적 공포 반응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과정을 그림으로 나타낸 자료.
자료 제공=KAIST 홍보실
ACC-배외측 편도체핵 뇌신경회로 조절에 의해 본능적 공포 반응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과정을
그림으로 나타낸 자료. 자료 제공=KAIST 홍보실

▲공포가 왜 중요한가?
“포식자나 위험 상황에 적절하게 공포 반응하는 게 생존에 이롭기 때문이다. 통증을 느껴야 몸을 적절한 때 치료할 수 있는 것처럼, 포식자나 위험 상황에 적절하게 공포 반응해야 포식자와 그런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적절한 공포 반응은 무엇인가?
“실험에서 생쥐를 자극한 여우 냄새는 매우 미약한 자극이다. 그런데도 어떤 생쥐는 ‘freezing(동결, 포식자를 만나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 몸이 굳는 현상)’을 심하게 했다. 그렇게 될 경우, 오히려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여우 냄새는 여우라는 포식자가 나타났다는 증거가 아니다. 포식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생쥐는 경계를 취해 포식자에 대비해야 한다. 공포 반응이 지나치게 강할 경우, 생존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인간에게 포식자는 누구(무엇)인가?
“포식자는 본능적, 선천적 공포를 말하기 위한 방편이다. 어떤 사람은 뾰족한 것에 공포를 느끼거나(선단공포증), 높은 곳에 올랐을 때 공포를 느낀다(고소공포증). 이런 공포는 선천적인 공포라고 말할 수 있다. 태어난 뒤 배우지 않아도, 경험하지 않아도 공포를 느끼게 하는 대상을 포식자라 비유한 것이다. 하지만 한 인간과 그의 포식자 간의 관계는 매우 복잡해, 지속적인 연구를 필요로 한다.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건, 동물은 포식자와의 관계가 훨씬 간명하기 때문이다.”

▲연구결과를 보니, 공포 반응 원리에서 전측대상회 피질(ACC)이 매우 중요한 부위다.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근거 없이 말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여러 상상을 해보면(가설을 세워보면), 사람이 힘든 일을 극복하거나 해결하려 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 이 전측대상회 피질(ACC)이다. 그런데 힘든 일을 극복하거나 해결하려 할 때 함께 말하는 것이 용기, 의지 등이다. 전측대상회 피질이 이 용기, 의지와도 관련돼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 

▲연구결과가 사회과학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큰 것 같다. 다음 연구주제가 궁금하다. 
“사회관계로 확장해 연구할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다음 연구주제를 말하라면, 노코멘트다(웃음).”

한진희 교수(왼쪽)와 1저자로 참여한 장진호 박사. 사진 제공=KAIST 홍보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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