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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파출소와 번역어
명동파출소와 번역어
  • 주명철 한국교원대
  • 승인 2003.06.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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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주명철 /한국교원대 역사교육

  나는 '큰 부자는 하늘이 내고, 작은 부자는 근면이 만든다'는 좌우명을 걸어 놓고 명동에서 장사를 하던 친구에게 "도대체 언제 노는가?" 라고 물은 적이 있다. 친구는 대뜸 "명동 파출소가 쉬는 날"이라고 대답했다. 할 일은 많은데도 점점 게을러지고, 적당히 한 학기를 보내면서 살아가지나 않는지 반성을 할 때마다 그 대답이 떠오른다. 평범한 머리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나는 벌처럼 부지런히 긁어모아야 논문도 쓰고, 조금 더 떳떳하게 살 수 있다고 나 자신을 추스른다. 

  아마 모든 교수가 전공을 불문하고 나와 같은 반성을 한 번쯤은 해보았으리라고 지레 짐작하면서,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에도 공감해주실 거라고 용기를 내본다. 나는 교원을 양성하는 대학에서 서양사를 가르치고 있다. 내가 전공한 프랑스 혁명전의 사회와 문화를 가르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기 때문에, 내 세부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길은 논문을 쓰거나 전공 서적을 번역하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논문을 쓰기 위해 프랑스에서 사료를 뒤지고 책을 사 가지고 돌아오지만 늘 부족하다. 사료 한줌을 읽고 해독하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나는 외국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때로는 논문 한편을 잘 쓰는 일보다 명저를 번역해 내놓는 일이 더 값진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면서 나 자신의 무능을 스스로 얼버무린다. 물론 번역은 논문보다 좀더 많은 독자를 생각하면서 하는 작업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때로는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그리고 일본에서 쓰는 말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 번역어 가운데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많으니 남보다 더 고민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과 관련해서 '삼부회'라는 말이 있다. 일본에서 한자로 표기한 것을 우리 음으로 읽어놓고 번역했다고 하는 말이다. 차하순 교수는 '전국신분회'라는 번역어를 내놓으셨다. 나는 이 번역어가 원래 뜻(에타 제네로)을 제대로 살렸다고 생각하면서 쓰고 있다. 일본인이 '로만'이라고 읽는 한자를 우리가 '낭만'이라는 번역어로 쓰고 있음을 보면서, 우리 나름대로 번역어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할 이유를 그렇게 해서 배웠다.

  흔히 '공안위원회'라고 하는 말도 나는 '구국위원회'로 쓰기로 한다. 원래 종교적 '구원'(salut)을 뜻하는 말을 세속적으로 차용한 것이므로, 그 뜻을 담아야 옳으며, 당시 외국의 침략을 받아 "조국이 위험에 처했다"고 외칠 때 이 위원회를 만들었기 때문에, 나라를 구하는 사명을 띤 위원회를 만들어야 논리적이라는 생각이다. 원어는 '공안'도 함축하고 있지만, 내 생각에 "구국"에 더 가깝다.

  최근에는 '망탈리테의 역사'를 일본에서 번역한 말을 받아 '심성사'라고 쓰는 사람이 많아서 안타깝다. 우리나라에서 "정신자세가 글러 먹었다"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썼듯이, 프랑스에서도 원래 부정적인 뜻으로 쓰던 낱말을 프랑스 사회사가들이 쓰기 시작한 것이 '망탈리테'였다. 그들은 '집단 정신자세'('망탈리테'의 복수형)라는 뜻으로 썼던 것이다. 나는 언젠가 글을 쓰면서 누구라도 '심성사'가 내 번역어보다 더 나은 이유를 설명해주면 따르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채, '심성사'는 유행이다. 그러던 중 나는 미국에서 나온 책을 보다가 이 말을 '멘탈 어티튜드', '펀드멘탈 어티튜드'로 번역하는 경우를 보고 반가웠다.

  새로운 사료를 발굴하는 일도 역사학을 발전시키지만, 이미 검토한 사료를 다시 읽는 것은 모든 역사가의 필수적인 의무이다. 사실, 어느 학문이 그렇게 하지 않고 발전했으랴! 그러므로 기정사실도 다시 한번 비판하면 달라질 수 있듯이, 번역어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일본이 번역어를 만들던 수준, 아니 일본의 어떤 학자가 개인적으로 만들 때의 수준이 지금 우리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우리 말, 우리 개념을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우리 학문을 세우는 첫걸음을 올바로 내디뎠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양심적으로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명동 파출소가 쉬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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