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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와 창작 사이에서
연구와 창작 사이에서
  • 박태일 경남대
  • 승인 2003.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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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박태일 / 경남대·국문학

우리나라 대학의 한국어문학 전공 편제가 큰 틀을 마련한 때는 1960년대다. 광복기 대학교 증설과 1950년대 정착기를 거친 뒤였다. 오늘날까지 그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학 바깥의 숨가쁜 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도 한국어문학 영역의 자기 정당성은 단단했던 셈이다. 대학 안에서 볼 때, 이 일은 초기 교수 세대의 제도화 얼개가 후속 세대에게 단순 재생산된 일에서 멀지 않다.

그러나 대학 공동체는 학문·창작의 전위와 후위 역할을 아울러 도맡는 곳이다. 몸담고 있는 현대문학 자리에서 볼 때 두드러진 인습은 창작 학습에 대한 한결같은 홀대다. 스승들로부터 대학은 학문하는 곳이라는 말과 눈길을 따갑게 느끼면서 대학 시절 습작기를 보낸 나다. 그런 속에서 여태껏 창작을 그치지 않고 학생들을 만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런 경우에 든다.

이즈음 들어 대학마다 창작 전공에 대한 요구가 많아졌다. 세상이 달라진 셈이다. 그렇다 쳐도 어문학 학습에서 창작의 중심은 아직까지 학생들의 과외·자치 활동 자리에 머물러 있다. 지역 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마음에 둔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은 소극적이나마 사회교육 강좌의 시민 상대 창작 지도를 거듭하면서, 그 자리를 키워나갈 궁리를 내고 있다.  

좀더 시도적인 강좌에 대한 욕구 또한 적지 않았다. 지역 대학에서는 구성원을 제대로 갖추기 어렵다. 교수 개인이 도맡아야 할 강좌의 진폭은 넓을 수밖에 없다. 전공을 중심으로 새 교과를 개발하고, 영역을 넓혀나가는 쪽 일을 기꺼이 떠맡았다. 한 자리를 파드는 일보다 문학의 실천 영역과 관련된 관심 확대가 창작 현장에 있는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걸음걸이였던 셈이다.   

먼저 고개를 돌린 쪽이 지역문학 자리다. 지역문학 연구 강좌를 어렵사리 대학원 과정에 마련하고, 전의(?)를 가다듬었던 첫 학기를 아직까지 나는 기억한다. 그 흔적이 경남·부산지역문학회와 일곱 권의 학회지로 거듭되고 있다. 그러나 그 성과를 학부 과정에 제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함께 공부한 제자들이 쓸모 있는 글들을 잇고 있어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그 뒤 학부에서는 문학 작품을 빌려 우리 현대사를 새로 따져 읽고, 영상커뮤니케이션과 대중문화 언저리를 밟기도 했다. 이제는 예술·문화행정 실무 자리를 닦고 있다. 대학원의 응용문학 쪽까지 자리를 넓혀 강좌의 틀을 짜고 간추려 나오는 데 수월찮은 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관심의 가장자리는 얼추 드러난 셈이다. 이제부터는 펼쳐놓은 일을 다듬고 다져나갈 일이 멀리 남았다.  

창작인으로서, 연구·교육을 함께 할 수 있음을 나는 늘 고맙게 생각한다. 지난 날 어느 퇴임교수가 평생 만족스러운 강의를 두어 번 밖에 하지 못했노라고 되새기는 모습을 지켜본 바 있다.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강의실에 드나들 때마다 늘 고심했음을 밝힌 일이겠다. 내 강좌에 연을 맺었던 학습자들이 뒷날 겉똑똑이 교수에게 아까운 젊음을 허비했다고 여기지 않기만을 감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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