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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마디만 같아도 등재 거부”...학회들, 연구윤리 강화에 앞장선다
“5마디만 같아도 등재 거부”...학회들, 연구윤리 강화에 앞장선다
  • 문광호 기자
  • 승인 2018.08.20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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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통과학회·한국진공학회 ‘연구윤리 가이드라인 사업’ 선정
한국유통과학회와 한국진공학회는 교육부 연구윤리 가이드라인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사진 출처=한국유통과학회, 한국진공학회 홈페이지
한국유통과학회와 한국진공학회는 교육부 연구윤리 가이드라인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사진 출처=한국유통과학회, 한국진공학회 홈페이지

가짜 학회 WASET(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 논란으로 학계의 윤리의식이 의심받고 있는 가운데 연구윤리 정립의 첨병 역할로 학회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8일 교육부(부총리 겸 장관 김상곤)와 한국연구재단(이사장 노정혜)은 ‘학회별 연구윤리 가이드라인 지원사업’ 대상으로 한국유통과학회(회장 이정완)와 한국진공학회(회장 김은규)를 최종 선정했다. 논문투고기준 등을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학회가 연구윤리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립하는 데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윤소영 교육부 학술진흥과장은 “연구윤리 지침이 많지만 대부분은 연구부정행위의 사후 판정에 관한 내용”이라며 “연구윤리를 보다 사전에 검증하기 위해 이번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표절 판별 가능한 명확한 기준 필요

한국유통과학회는 사업 선정 이전부터 높은 수준의 표절률 규정을 적용해왔다. 한국유통과학회 연구부정행위 관리지침 제2조에 따르면 “확장유사도검사(카피킬러) 5어절 이상, 1문장 이상 일치하는 것을 기준으로 표절률이 5%를 상회하는 논문”은 연구부정행위에 해당된다. 일반적으로 다른 학회들이 적용하는 표절률 기준은 10% 정도다. 황희중 한국유통과학회 편집위원장(방송통신대·무역학과)은 “기존 연구부정행위 규정이 추상적이었기 때문에 세부 규정을 만들었다”며 활용가능한 규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유통과학회는 2015년 총 11건의 윤리규정 위반 사례를 적발해 게재 불가를 통보하기도 했다.

한국진공학회 역시 별도로 논문윤리 규정을 두고 엄격하게 표절에 대응한다. 논문윤리와 관련된 제도와 부당행위 조사를 위한 연구윤리위원회도 활동 중이다. 허영우 한국진공학회 연구윤리위원장(경북대·전자재료공학과)은 “교수들이 연구윤리에 대해 무지하다고 볼 수 없다”며 “시스템이 잘 갖춰지면 연구부정행위도 줄어들 것”이라고 역설했다. 

특수관계자 공저자 기재도 사전에 차단

표절 못지않게 심각한 연구부정행위 중 하나는 부당 저자 표시다. 올해 초 교육부가 4년제 대학 전임교원 7만5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총 138건의 논문에 미성년 자녀가 공저자로 등록됐다. 이번 사업이 추진된 목적 중 하나도 법령상 금지돼 있지 않았던 미성년자의 논문 작성 참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한국유통과학회 등 연구윤리에 민감한 학회들은 부당 저자 표시에 단호히 대처해왔다. 애초에 가족이 공저한 논문을 연구부정행위로 간주하고 게재를 허용하지 않는다. 유일한 예외는 가족이 논문 주제와 관련된 석사 이상 학위를 보유한 경우다. 

그러나 법이나 규정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자녀 공저자 논란이 불거지자 교차로 상대방의 자녀를 저자 표시하거나 친인척을 저자로 포함시키는 등 규정을 우회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황 편집위원장은 “무작정 법으로 제한을 두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며 “학회의 자정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과학계에서도 학계의 자정 노력을 강조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김명자) 등 3개 과학단체들은 지난 17일 공동으로 연구윤리 재정립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를 통해 단체들은 “일부 연구자의 연구비 부적절 집행, 미성년 자녀의 부당한 공저자 포함 등 연구윤리를 훼손하는 일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며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의 구현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스스로 연구윤리의 진일보된 규범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사업 확장, 추가 학회 모집할 예정

한편, 일부 학회들은 연구윤리 가이드라인 사업이 중요도에 비해 지원규모가 작은 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1차 공모에 참여한 학회는 1곳뿐이었다. 이번 공모에 참여했던 한 학회의 관계자는 “사업을 진행하면 학회는 사실상 적자”라며 “연구윤리 강화에 앞장선다는 명예가 아니면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올해 연구윤리 가이드라인 사업의 학회당 지원금액은 2천만원 수준이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 역시 올해 예산이 부족했다는 데 동의했다. 윤소영 학술진흥과장은 “올해 예산이 많지 않아서 분야별 학회들을 많이 선정하지 못했다”며 “인문이나 교육학 등 다른 분과 학회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내년에도 학회들을 추가 선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한석 한국연구재단 청렴연구윤리팀장도 “내년에는 예산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며 “학회에서 자율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수립한다면 WASET, 표절 등 연구 윤리 문제들도 자정작용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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