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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 풍경: 극단 물리의 '西安火車'
예술계 풍경: 극단 물리의 '西安火車'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3.06.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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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떠나간 것은 잡히지 않는다

'광해유감', '레이디 멕베스'로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한태숙의 극단 <물리>가 이번에는 '서안화차'로 막을 올렸다. 극작가 겸 연출가로 나선 그녀의 이번 작품은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오는 7월 6일까지 이어진다. 자전적 이야기를 극을 통해 소박하게 풀어 낼만큼  인생을 돌아볼 여유를 지니게 된 한태숙은 연륜있는 연출가로 다시금 우리 앞에 나타났다.  

중국 시안행 기차 여행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 상곤과 함께 점차 그의 과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그가 던진 질문과 함께. 한편 그의 기억은 수 천년간 은막에 감춰져왔던 진시황릉의 이야기와 중첩되어 흘러간다. 고대 서사와 개인사가 혼융되어 입체적인 스토리가 전개되는 방식이다.

진시황을 설명하는 상곤의 나레이션이 오히려 우리를 그의 상처속의 기억으로, 무의식의 심연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한편 '동성애'라는 주제는 극의 또 다른 핵심이다. 하지만 동성애를 소재로 한 여느 영화나 극들처럼 강렬하며 낯선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연인 찬승에게 갖는 상곤의 애정이 매우 솔직한 심리묘사로 다루어져 극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나간다. 마치 일기를 써 내려가듯 담담한 말투로, 어느덧 삶 속에 묻혀버려 우리 속에 자연스런 색채로 다가오는 것과 같이.

기억 속의 그의 사랑은 극복하지 못한 상처에서 비롯된 욕망들과 함께 끊임없는 집착으로 이어진다.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이상적인 대상, 찬승에게 집요하게 매달리는 상곤은 '성공하지 못한' 사랑을 꾸려간다. "그 男子의 기록과 기억…죽여서라도 갖고 싶다"는 그의 독백처럼 금기시 된 것이기에 더욱 욕망하게 되는 사랑이다.

급기야 사랑에의 강렬한 집착은 연인의 육체를 영원히 소유하고자 토용으로 형상화하기까지에 이르러, 더욱 생동감 있는 표현력을 드러낸다. 상곤의 기차여행과 함께 그의 기억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관객들은 인간의 욕망과 한계, 실패로 얼룩진 인생들과 대면하게 되며 거기서 또한 자기자신의 과거까지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최준호 한예종 교수는 한 작가의 집요한 열정의 산물인 이 극을 두고 "그의 작품 어느 하나에서도 강한 개성과 열정, 집요한 준비가 부족한 것을 본적이 없다. 연극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현재화 작업, 의미를 생생하게 살려주는 강렬한 이미지, 객석에서 느낄 수 있는 충만하면서도 과도하지 않은 에너지와 같은 것을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다"라고 평한다.

"떠나간 것은 잡히지 않는다. 남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한태숙은 너무 서두르지 않고 소박하게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볼 것을 제안한다. 마치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처럼 담담하게. 자신이 살아온 만큼, 자기 인생의 깊이만큼 기억과 상처를 되찾아 가면서, 자신의 존재를 찾아나갈 것을 말하고 있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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