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도, 대학에도 장기계획이 없다”
“대한민국에도, 대학에도 장기계획이 없다”
  • 윤상민
  • 승인 2018.08.1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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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 『과학과 문학, 한국대학복구론』(수류산방) 펴낸 김인환 고려대 명예교수
경복궁 옆에 위치한 수련산방에서 만난 김인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대학의 미래를 고민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 윤상민 기자
경복궁 옆에 위치한 수류산방에서 만난 김인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대학의 미래를 고민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 윤상민 기자

 

“대학은 정말 장기계획이 필요합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총장이 바뀌어도 계속 추진할 수 있는 장기계획이 필요한데, 대한민국에도, 대학에도 없어요. 모든 게 단기 중심이죠. 단기회로를 장기회로로 바꿀 수만 있다면….”

七旬을 넘긴 그의 목소리가 안타까움을 넘어선 탄식으로 바뀌었다. 百年大計라고들 입을 모으는 교육정책에 대해 진중하고 책임감 있는 논의는 실종된 채, 교육부, 사학, 재단, 기업, 사교육자 등 각자의 권익 관계에 휘둘려 장기적 안목 없이 학생들을 경쟁의 전장으로 몰아넣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목도한 노학자는 『과학과 문학, 한국대학복구론,』(수류산방, 2018.06)이라는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고전문학과 현대 문학, 정신분석학과 경제학, 역사와 철학, 수학과 한학 등 여러 분야 학문을 가로지르며 독자적인 사유를 현실비평에 폭넓게 펼쳐 온 김인환 고려대 명예교수 이야기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교육학자이자 철학자인 루소가 쓴 『에밀』을 인터뷰 내내 인용했다.

실물교육 없이 지식교육에 매몰

“『에밀』을 보면 0~2세까지는 동물이니 가르치지 말고 젖을 먹이라고 하고, 2~12세까지는 원시인라고 하죠. 개념을 가르치지 말고 물건 보여주는 실물교육을 하라고 합니다. 12~15세까지는 로빈슨 크루소인데, 옷, 밥, 집 그러니까 의식주죠. 이걸 어떻게 짓고 만드는지 가르치고요, 15~25세까지 시민교육을 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교육이 그때 나오는 거죠. 그런데 우리 교육은 2~12세 때부터 개념을 가르쳐요. 그리고 12~15세 때 옷도 만들어보고 집도 그늘이라도 막고 하는 걸 해봐야하는데, 실물교육이 없습니다. 교육이라는 게 한 아이의 고유성을 살리고, 아이도 공부하면서 즐거워해야 하는데 모두들 힘들게 얼굴만 찌푸리는 건 문제가 있다는 거죠.”

김 명예교수는 외국어 교육을 말하며 한 걸음 더 들어갔다. “12~15세 때 실물교육을 배우면서 외국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너무 일찍부터 외국어를 공부하면 모국어의 결이 흔들릴 수 있잖아요.” 그는 국가가 학생들의 외국어교육을 지원하는 핀란드식 시스템을 예로 들며,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외국어 교육에 목매는 현재 한국의 시스템은 투입된 재정과 시간만큼 효과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의 지적은 한국 영어교육학으로 이어졌다. “전국의 작은 대학까지도 미국인이 와서 교양영어를 가르쳐요. 좋긴 한데, 외국어 교육에서 우리는 지금 유창함을 목표로 하다 보니, 한국의 영어교육학이 자리를 잡을 수 없어요. 발음만 미국인과 비슷하지 말하기, 듣기, 읽기, 짓기가 고루 안 되는 건 뭔가 영어 교육에 문제 아닌가요? 회화 중심으로만 가는데 정말 회화가 온 국민에게 필요한 지도 의문이에요. 인공지능 번역기가 발달하는 속도도 이렇게 빠른데 말이죠.”

자연스레 이야기가 대학으로 옮겨갔다. 그는 연 4회, 중간, 기말고사 대비로 날짜를 정해 공부하는 것을 졸렬한 학습법이라고 책에서 비판했다. 다산 정약용의 전 생애를 인용하며 대학을 학문의 장소로 국한 짓지 말고 실천의 장소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 시험을 위한 공부보다는 토론을 통한 교양 수업이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교수라고 말한다. “학생들이 학교에 불만이 많죠. 시설 때문이라기보다는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걸 교수들이 존중해주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교수들이 모여서 학문체계가 바로 서려면 어떤 교과서를 선택해야 할지부터 커리큘럼은 어떻게 만들지 토론해야 해요. 교수는 연구자니까 학생들 인도한다는 생각이 적어질수록 학생들이 더 멀어져요. 교수끼리도 대화가 없고, 학생과 교수도 소통이 없고, 중요하지 않은 것만 이야기하면서 정작 우리가 직면한 교육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겁니다.”

책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인문학과 과학의 대립을 염려한다. 두 분야에 모두 기초가 있어야 서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학제간 벽이 높은 현재의 대학에서는 요원한 이야기로만 들렸다. “통합교육일수록 가르치는 내용을 최소한으로 해야죠. 학생들이 최소한의 관념을 이해하고 그걸 갖고 한 한기건 두 학기건 토론을 하면서 스스로 채워나가는 교육방식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의 정리 하나만 갖고도 역사부터 함의라던가, 내용, 보통과 특수의 문제, 특수한 삼각형이 보편적 삼각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한 한기동안 따져 봐도 충분해요. 학생이 자기 것으로 만들고 깊게 사고하면서, 보통과 특수라는 것이 수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문학, 역사의 경우에도 해당된다는 걸 깨닫게 되는, 그런 수업, 교육방법을 개발하는 데 매진해야죠.”

학과 장벽을 낮추는 통합교육

통합교육에 대해 그가 제안을 확장했다. “번역기계가 상당 수준으로 발전하고 게임산업이 확장되는데 한국의 대학 중에 이런 걸 가르치는 대학이 있나요? 이런 이야기하면 시류 따른다고, 대학 체면이 있지 왜 하냐고 비판부터 하는데, 대학은 학문의 역사도 중요시하는 동시에 지금의 질풍 같은 변화도 쫓아가야 합니다. 단, 한 과로는 안 되니 언어학, 국어학, 전자공학, 생명공학 등 여러 과가 모여야죠. 한국처럼 학과 장벽이 높은 나라가 드물어요. 학과는 섬이 아니라는 걸 교수들이 서로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김 명예교수는 자본의 논리를 따르는 지식은 자본주의에 대해 질문할 줄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총장들이 나서서 재정지원사업에 열을 올리고, 교수들은 장기 연구보다는 사업비 수주에 분주하다. 이미 대학이 자본에 잠식된 상황에서 그는 미래의 대학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현재 탈기업화는 불가능하죠. 그럼 재정을 확보해 특화해서 살아남는 길을 대학들이 모색해봐야 합니다. 첫째로는 지금처럼 모든 대학이 똑같은 역할을 하는 데서 벗어나야 하고요, 둘째로는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는 장기계획을 대학, 국가 차원에서 마련해야 합니다. 대학교육에 대한 근본을 진지하게 고민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사르트르는 말했다. 혁명이 일어날지 말지는 점쟁이한테 맡기고 우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하자고. 반드시 올 미래는 있다. 그 미래를 대비하라는 노학자의 조언이 가볍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글·사진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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