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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이야기: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생각하는 이야기: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 장은주 교수
  • 승인 2003.06.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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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보따리 장사'로 헤매는 '삼류인생'을 위해

장은주 / 영산대·철학

나는 영화를 크게 즐기는 편도 아니지만, 영화에 대한 취향도 조금은 촌스럽다. 나는 영화란 모름지기 쉽고 재미있고 편안해야한다는 비교적 확고한 영화관을 갖고 있다. 예컨대 나는 '프랑스 영화' 예찬론자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철학적'이라고 사람들이 평가하곤 하는 그런 지루하고 꼬인 '프랑스 영화' 때문에 오히려 '철학'이 대중들에게 왜곡되어 받아들여질까 봐 걱정할 만큼 '프랑스 영화'의 가치를 무시하는 편이다. 나는 차라리 '토탈리콜'이나 '매트릭스' 같은 헐리우드 영화들이 훨씬 더 철학적이라고 볼 만큼 헐리우드 영화의 확고한 팬이다. 적어도 가끔씩 들르는 비디오 가게에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선택하고 나서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아직 한국영화만큼은 질색이다. 요즘 나오는 좋은 한국영화들 때문에 이제 헐리우드 영화들은 더 이상 못 봐주겠다는 주위 사람들도 있지만, 그 재미있다는 한국영화들하고 나는 아직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우리 영화들에서 주로 보는 것은 '경상도 싸나이'인 나조차도 욕지기나게 만든 '친구' 류의 마초이즘이거나 아니면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그렇게 열광했다지만 나로서는 30분을 채 계속 못 본 '엽기적인 그녀' 류의 소아병 따위다.

요즘 히트한다는 한국영화들의 그런 핵심 모티브는 철저하게 나쁜 의미에서 헐리우드적이지만 나는 정작 그 영화들에서 헐리우드 영화의 어떤 매끈함 같은 것을 보지 못한다. 말하자면 요새 잘나간다는 한국영화들은 내겐 삼류 헐리우드 영화들일 뿐이다.

그런 나도 더러 괜찮은 한국영화들을 발견하곤 놀라곤 한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은 이상하게도 헐리우드하고는 거리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임순례 감독의 영화였다. 누가 헐리우드적이 아니라며 추천하기에 우연히 들른 비디오가게에서 빌려올 때만해도 나는 이 영화가 '프랑스 영화' 같은 홍상수 감독의 그 어려운 스타일이겠거니 짐작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정말 헐리우드하고는 거리가 멀었지만 재미도 있었고 진한 여운도 남았다. 나로서는 왜 이런 영화가 대중들에게 외면 받았는지 궁금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사실 나는 그 영화의 미학 자체에 대해서는 평가할 자격이 없다. 내가 무슨 영화를 알기나 해야지. 내가 그 영화를 좋게 보았던 것은 아마도 '삼류인생'을 살아가는 어느 떠돌이 밴드에 관한 그 영화의 스토리가 어쩐지 단순히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우리 인문학자들이 영락없이 이 땅의 또 다른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너무도 쉽게 그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 자신보다는 아직도 '보따리장수'로 헤매고 있는 나의 수많은 동료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떠올라서 눈물까지 날 지경이었다. 세상이 어떻든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삶을 '삼류인생'으로 만든 우리 사회의 지독함이 무척이나 아프게 다가왔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의 삼류 근대가 우리에게 알려 준 문화 논리는 정말 촌스러운 마초적 공동체주의 아니면 그것과 엽기적으로 짝을 이룬 소아병적 개인주의뿐이다. 그런데 터무니없게도 그런 근대는 정작 놓쳐서는 안 될 정말 중요한 자신의 문화적 원천 하나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자기 자신에 대해 진실한 삶, 나의 깊숙한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한 나다운 삶, 나의 본성을 따르는 나만의 삶, 그런 삶에 대한 이상은 적어도 서구의 근대에서는 중요한 한 문화적 축이었건만, 우리의 근대에서는 그런 이상은 어쩐지 제대로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질식당한 것 같다.

나는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바로 그런 이상을 좇는 사람들이 우리에게는 그저 '삼류 인생'일 뿐임을 목격했고, 나의 동료들인 또 다른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이 땅을 지배하는 문화적 폭력에 어떻게 신음하고 있는지를 영화가 마련해 준 연상을 통해서 새삼 확인한 것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시대를 놓친 채 전근대적인 향수와 동경에 젖은 사람들로 보면 안 된다. 그들은 오히려 우리의 지독한 근대를 그래도 견딜만하게 인간의 얼굴로 만들어 주었을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무시해 버렸고 낯설어만 한다. 아니, 우리는 그들의 얼굴을 볼 수조차 없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비인간'이기 때문이다. 변변한 노동계약도 없고 최소한의 가까운 미래조차 없는 존재들, 일년 중의 몇 달은 굶으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들, 그래서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자존심마저 발가벗김을 당한 비인간들, 바로 그들이 영화 속의 그리고 내 동료 '와이키키 브라더스'인 것이다.

단지 자신에게 진실한 삶을 추구했다는 이유로 어떤 동료는 결국 '상자 속의 사나이'가 되어 버렸단다. 아, 잠시만이라도 머리를 멍하게 비우기 위해 다시 헐리우드산 블록버스터 영화라도 한 편 빌려다 보아야겠다. 역시 헐리우드 영화가 최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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