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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즐거움
공부의 즐거움
  • 김태웅 경기대 박사후연구원
  • 승인 2018.08.13 10: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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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결심한 것이 하나 있다. 지금 하는 공부가 재미없어지는 날이 오면 언제든 공부를 그만두겠다는 것이다. 나는 원래 ‘한문학’을 하고 싶어 성균관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하는 공부는 ‘한문학’이 아닌 ‘歌集’연구다. 석사 1학기 때 김천택이 편찬한 『청구영언』 수업을 들으면서 온 몸에 전율을 느꼈고, 좀 더 심도 깊은 연구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가집연구’를 주제 삼아 공부를 시작했고, 석사논문도 『大東風雅』라는 가집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박사논문 역시 7~8년간 꾸준히 연구했던 18세기 후반~19세기 초중반 가집의 특성을 주제로 했고, 2013년 8월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에도 가집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국문학자 중 ‘시조’ 전공자는 매우 많다. 하지만 시조를 모아놓은 ‘가집’ 연구자는 시조 전공자에 비하면 그 수가 매우 적다. 그 이유는 소위 ‘드는 품에 비해 성과(논문) 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일찍이 가집 연구에 매력을 느껴 공부를 시작한 나로서는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품이 많이 들어도 가집을 하나하나 입력하는 것 자체가 삶의 큰 기쁨이었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낮고, 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은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공부를 계속 할지를 놓고 고민이 많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실적 문제와는 별개로 매우 큰 만족을 주는 ‘공부의 즐거움’ 때문에 나처럼 공부를 포기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박사학위도 받고 결혼도 하고 더 이상 혼자만의 삶이 아니고 보니, 나 역시 경제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가급적 품이 덜 들고 성과 내기 쉬운 연구를 하고 보니 공부에 대한 만족감이 줄어들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품이 많이 들고 성과는 매우 적은 가집 공부를 오늘도 하고 있다. 강사 신분으로 매 학기 계약을 앞두고 있는 불안정한 ‘보따리 장수’ 신세이기에 경제적인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한국연구재단에서 학문후속세대들을 위해 ‘시간강사지원사업’과 ‘박사후국내연수’ 등을 통해 연구를 지원해 주고 있고, 필자 역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위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연구비를 지원받고 있어 경제적인 부분에서 큰 도움을 받고 있다.  

기고문 요청을 받고 나는 어떤 내용으로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내가 지금 하는 연구가 비록 드는 품에 비해 성과가 없는 공부이지만 만족도는 매우 높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가끔 ‘왜 가집 같은 것을 연구하냐’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질문을 받곤 한다. 한국사회는 전임교수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사회이기에, 가집 같은 특수 분야는 애초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누구든 처음부터 전임교수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공부는 누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다. 연구자 스스로 자기만족이 있어야 계속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부’인 것이다. 특히 인문학과 같이 ‘먹고 살기 힘든’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만족도’라도 높아야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 주변에서 남들이 무슨 말을 떠들어 대더라도, 공부가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 가집은 ‘인생’이다. 가집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을 때에도 내 곁에 있었고, 10년간 계속 옆에 두고 봤더니 조금은 알게 된 녀석. 딱히 어떤 것에도 재미를 못 느끼던 내게 ‘공부의 즐거움’을 알려준 가집을, 나는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에도 계속 곁에 두며 연구를 이어나갈 것이다. 

 

김태웅 경기대 박사후연구원
성균관대에서 18세기 후반~19세기 초중반 가집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생이 고전시가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고전문학을 통한 음식문화 콘텐츠’를 주제로 해 연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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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대가리 2018-08-25 17:14:20
힘을 얻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