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1 00:30 (일)
진단 : 조지 오웰, 국내에서 어떤 대접받았나
진단 : 조지 오웰, 국내에서 어떤 대접받았나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6.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적 '비판의 무기'로…제대로 읽히지 못했다

오웰의 '동물농장'과 '1984년'은 한국사회에서 롱 롱 스테디셀러였다. 오웰의 이름엔 어느덧 이 땅의 정치적, 역사적 정서가 가득 묻어 거기에선 올드팝의 향기가 풍겨올 정도다. 전체주의 체제, 주로 공산사회를 비판한 정치풍자 작가로 알려진 오웰이 올해 탄생 1백주년을 맞아 또 다른 각도로 조명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빅 브라더'인 제국주의 미국체제에 대한 경고자로서 말이다. 과연 오웰은 그럴 만큼 정치적으로 신념이 확실한 작가였고, 미래에 대한 통찰을 유지하고 있는 작가일까. 우리의 경우 오웰의 진면목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던가. 한국사회에 남긴 오웰의 흔적과 앞으로의 전망을 짚어본다.

 

한국에서 조지 오웰은 환영받지 못했다. 위정자들에게 이용당했고, 진보주의자들에겐 퉁맞았으며, 영문학자들에게는 외면당했다. 세계문학전집의 말뚝 저자인 오웰의 한국적 위상은 생각과는 달리 아주 낮다. 반체제적인 삶을 살았고, 독특한 장르의 작품을 쓴 그가 이 사실을 알면 무덤이 들썩이지 않을까.

모더니즘의 계보 바깥에 위치한 작가

오웰 탄생 1백주년을 맞아 영미권에선 재평가 작업이 분주하다. 이라크전 이후 미국이 세계를 냉각시키면서, 전체주의 및 디스토피아에 대한 공포가 더해가는지라, 일찍이 전체주의를 경고한 오웰이 새삼 주목을 끄는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한국에서도 최근 오웰의 평전, '자유, 자연, 반권력의 정신'(박홍규 지음, 이학사 刊)이 출간되고, 그의 대표작들이 몇몇 전문가들에 의해 재번역 되는 등 오웰을 제대로 보려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 그렇지만 본격적이라는 느낌은 없다. 영문학계에서 철저히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오웰이 평단의 눈길을 받지 못한 이유는 우리의 학문적 풍토 및 역사적 경험과 관계 있다. 그가 "의식의 흐름, 내적 독백 등 20세기 초반 모더니즘 작가들이 갖고 있었던 미학적이고 인식론적인 패러다임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권택영 경희대 교수의 설명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사실 오웰의 소설은 형식으로 본다면 평범한 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오웰은 미국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에서 거의 배제돼, 미국 유학생이 많은 한국에 연착륙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20여년 가까이 군부독재 시절을 지내온 한국 지식인들에게 오웰의 정치성이 부담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학계가 뉴크리티시즘 등 보수적인 아카데미즘에 빠진 것도 하나의 이유다. 하지만 한기욱 인제대 교수는 "좌우대립의 갈등, 어느 것도 선택할 게 없는 지식인의 처한 상황 때문에 모르긴 해도 오웰에 공감한 문인 지식인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문학평론가 김병익, 소설가 김원일 등 자유주의적인 '문지 그룹'이 오웰의 작품을 주목했다는 것도 이런 심증을 더해준다.

마지막으로 1980년대 한국의 젊은 지식인 풍토에서 바라보면, 소비에트 체제를 가차없이 비판하고 지적 타락을 고발한 오웰 같은 이는 별로 반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공산주의가 썩었다는 걸 누가 모르는가. 그렇지만 혁명이 불가능했던 땅에서 혁명을 일궈내고, 사회주의를 이루려고 실험했던 것을 좀 기다려보지도 않고 그 싹을 조롱했다는 점을 섭섭히 여겼다는 것이다. 이는 영국의 신좌파를 이끈 비평가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생각이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어느 쪽이 옳은 태도였을까. 눈 앞의 역사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 같다.

도정일 경희대 교수는 양심적이고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오웰의 삶과 작품이 전면 재평가 받아야 된다는 입장이다. "1940년대 친소비에트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영국의 스티븐 스펜더, 사르트르 등은 스탈린 시대가 얼마나 사람들을 희생시켰는가를 뻔히 알면서도 말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오웰은 진작부터 스탈린 식의 사회주의는 기만이고 실패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페인내전 때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한다. "영문학계에 제대로 된 작가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라는 도 교수의 지적은 다소 충격적이다.   

미군정 해외정보국에서 국내 첫 '반입'

국내에 오웰이 소개된 건 1948년이다. 미군정 해외정보국이 '반공투쟁'의 일환으로 작품의 저작권료까지 지불하면서 국내에 들여온 것이다. '1984'년도 그 이후 곧바로 번역됐고, 아동용, 청소년용으로, 몇 개 출판사의 전집으로 번역되면서 널리 읽혔다. '식민지의 사계', '카탈로니아 찬가',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등도 우리말로 소개된 바 있다. 몇몇 번역서들이 출간된 게 1984년도라는 사실은 이것을 주도한 세력이 기본적으로 상업적이었다는 걸 말해준다. 오웰의 몇몇 단편집과 평론들은 곧 절판됐다. '동물농장'과 '1984년'의 작품세계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는 용도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용도라는 것은 '월간 조선' 지난호 검색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곳에서 조지 오웰로 검색을 하면 무려 1백여건의 기사가 뜬다. 냉전기의 도식에 딱 들어맞는 공산주의 비판자로서의 오웰을 인용하는 것들이어서 아연함을 안겨줄 뿐이다. 오웰의 입장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가리지 않고 개인을 억압하는 체제 양자를 다 비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명백한 이데올로기적 활용 속에서 오웰에겐 엄청난 세월의 때가 묻어버렸다.

미래에 대한 정치적 담론의 발신지로 주목돼

영문학자들은 오웰의 작품이 "인간문제에서 개인과 집단, 집단무의식적 폭력을 그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최근 출간된 프란시스 뮬런의 '문화/메타문화'(임병권 옮김, 한나래 刊)를 보면, 뮬런은 "오웰의 글쓰기는 언제나 정치적 가치를 강조하지만, 그 과정은 형식주의적이고 사회학적이다. 그것은 또 다른 도덕적 노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려 깊고 자의식적인 탐구 양식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오웰을 너무 정치에 대한 도덕론자의 측면에서만 다루는 것도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점에서 적절한 시사가 돼 준다.

학계에서는 디스토피아 소설 연구자들 가운데 오웰을 새롭게 주목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기욱 교수는 "미래에 대한 담론이 대부분 탈정치적인 경향이 있었는데, 오웰에 대한 관심은 정치성이 삭제된 미래사회에 대한 예견에서 하나의 길을 보여줄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무튼 이 먼 나라까지 흘러와 제대로 읽혀지지도 않은 채 오욕만 뒤집어 쓴 오웰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라도, 영문학계의 오웰론이 시급히 나와야 할 시점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1933) -->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씌어진 오웰의 처녀작. 상류계급과의 심한 차별감을 맛본 학창시절과 그로 인해 경찰관이 돼 식민지에서 직업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1927년 유럽으로 돌아와 체험한 파리 빈민가와 런던의 부랑자 생활을 리얼하게 묘사한 자전적 소설. 이때부터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제국은 없다(Burmese Days)』(1934) --> 직역하면 '버마의 나날들'로, 인도제국주의 경찰 경험을 토대로, 제국주의의 허구와 진실을 날카롭게 풍자, 고발한 오웰의 두 번째 작품. 1920년대 중반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버마의 역사적 상황이 담겨 있고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찰했다.

『카탈로니아 찬가(Hamage to Catalonia)』(1938) -->  스페인 내전의 체험을 담은 장편소설. 1936년 겨울부터 1937년까지 통일노동자당의 민병대로 참전해 프랑코의 파시스트 군과 맞서 싸웠던 오웰은, 하지만 스탈린을 등에 업은 공산당이 연대를 깨고 도리어 무정부주의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는 것에 모멸을 느끼고 그 혼돈의 도가니에서 탈출해 억울함을 항소하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