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자서전으로서 서문들
지적 자서전으로서 서문들
  •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8.0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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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미래에 대한 모든 호기심이 사라졌을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자서전을 쓸 나이가 되었다고 하겠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에블린 워(Evelyn Waugh, 1903~1966)의 말이다. 나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세상에는 저자의 생애를 다룬 일반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물론이고, 학자들의 지적 자서전이 참으로 많다. 이제는 아득한 대학원 학생 시절에 나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콜링우드(R.G. Collingwood, 1889~1943)의 지적 자서전 『An Autobiography』를 읽으면서 깊이 감동했었다. 그리하여 언젠가 나도 학자로 성공해 그와 같은 지적 자서전을 쓰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었다.

그러나 그 후 나의 지적 삶은 대부분이 학자적 연구보다는 교육하는 교수의 역할에 더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콜링우드 수준의 지적 자서전을 집필하기엔 나의 지적 자본이 그의 방대한 지적 자본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포기했다. 그 대신에 지난 40여년간의 학자-교수 생활을 하면서 집필한 나의 저서들의 서문들을 모았다. 그 결과가 지난 6월 출간한 『지적 자서전으로서 내 저서의 서문들』(박영사)이다. 

내 저서들의 서문들은 적어도 그동안 나의 지적 定向을 분명히 한 글들이다. 즉 나의 지적 세계를 그대로 표현했던 글들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 그 누구도, 동료 교수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나의 가족들과 제자들마저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무척 아쉬웠던 순간들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복장으로 다시 세상에 등장시키려는 시도를 해 본 것이다. “모든 예술가는 자신의 자서전을 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원용해 말한다면, 모든 학자의 저서는 그의 지적 자서전이라 하겠다. 그리고 서문은 그 지적 자서전의 방향성을 드러낸다. 

지난 40여년의 긴 세월 동안 순전히 학문적으로 국제정치학에 전념하면서 전쟁과 군사전략, 평화, 국제관계이론, 한국외교정책, UN, 그리고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 등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는 관심 주제들에 대해 꾸준히 글을 써 왔다. 내 이름으로 출간한 책들의 서문들을 한데 모은다면 그야말로 ‘지적 자서전 그 자체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처음 이 계획을 구상했을 때, 우선 그동안 썼던 서문들의 분량이 별도의 한 권의 책이 될 정도가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또한 잘못하면 학계에서 웃음거리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떨쳐내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고려대에서 꼭 33년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정년 퇴임한 후에 어느덧 수년의 세월이 흘러 내 나이 칠순을 넘기게 됐다. 앞으로 학문적 업적을 더 낼 자신도 없고 해서 지금까지 내가 수행한 학문적 연구성과의 보고서랄까, 초라하지만 일종의 지적 자서전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책으로 묶어 출판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 이를 두고 ‘지나치게 자기 과시적’이라고 비난한다 해도 사과할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어떤 형식으로라도 나의 전 생애에 걸친 학문 생활의 결실을 가능한 한 간단하게 집약해 세상에 내놓고 싶은 것이 나의 솔직한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나의 무모한 시도가 한국 정치학계에서 많은 지적 자서전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쏟아져 나올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면 한국 정치학계의 지적 자극제로서 오히려 좋은 일이 될 것이다.

1982년 출간된 앨런 블룸(Allen Bloom)과 해리 자파(Harry V. Jaffa)의 『셰익스피어의 정치철학』의 번역서부터 2018년 출간된 『죽어도 사는 사람: 불명의 링컨 유산』이라는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님과의 공동 저서에 이르기까지, 정리해보니 나의 저서 목록은 30여권에 이르렀다. 이 저서들의 서문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지적 탐구로서 나의 학문적 가능성과 동시에 명백한 나의 지적 한계를 볼 수 있었다. 한국지정학연구원에서 매달 한 차례씩 수행하는 셋토네 심포지엄을 통해 여전히 지적 교류를 이어가고 있는 제자들은 물론이고 한때나마 자기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나와 함께했던 수많은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이 나의 지적 한계를 뛰어넘어 청출어람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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