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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 천태만상의 신간 보도자료
책 이야기 : 천태만상의 신간 보도자료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6.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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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 없는 사실 요약과 기자 주눅들게 하는 문장력 뽐내기

마감이 턱까지 차 올라 보도자료를 펼칠 때면 출판사 사람들에게, 독자들에게 죄송스런 마음이 든다. 하지만 바늘도둑 소도둑 된다고, 2년 정도 신간안내를 쓰다보면 책은 뒷전이고 보도자료만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게 된다.

보도자료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짧고 굵게 쓰는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정말 길고 내용 없게 쓰는 경우도 많다. 도대체 내용은 언제 나오는 거지, 하고 훑어 내려가다 보면 A4 열장 분량에서 팩트는 1장이 안되는 경우가 있다.

이왕 얘기를 꺼낸 김에 보도자료 유형론의 초고를 한번 잡아보자. 먼저 고마운 유형이 있다. 도서출판 한울의 보도자료가 그렇다. 2백자 요약, 5백자 요약, 본문소개, 저자소개 등 구분을 지어 책의 내용을 훌륭하게 요약해준다. 군더더기도 없고 문장도 안정감 있어, 어떨 때는 통째로 들어서 신문에 옮길 때도 있다. 특히 짧고 가벼운 기사를 쓸 때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울의 보도자료 전통은 계속돼야 한다.

다음은 기자를 압도하는 유형으로 전통 있는 문학출판사들의 보도자료다. 물론 편집위원들이 쓰는 것이겠지만 문장의 수준이 책은 물론, 기자의 실력을 월등히 앞질러버리는 경우다. 이건 그대로 베껴쓰기도 영 께름칙하다. 그래서 단어를 바꾸고, 멀쩡한 문장을 이리 꼬고 저리 꼬는 사단이 발생한다. 문학과지성사, 창작과비평사, 문학동네의 보도자료가 그렇다. 요즘은 옛날보다 '글맛'이 덜한 편이라 한편으론 안심이 되고,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지금부터는 부정적인 경향들이다. 먼저 논문유형이 있다. 출판 종사자들 학력이 대체로 높아서 그런지, 서론, 본론, 결론을 장황하게 늘어놓을 때가 있다. 이러면 배경설명 읽다가 지치고, 숨어있는 내용 찾다가 시간 다 보낸다. 그래도 이런 유형은 흩어져있어서 그렇지 알토란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문제는 에세이 유형으로 많은 보도자료가 여기 속한다. 책에 대한 편집부의 평가, 감상, 심지어 감탄 등을 늘어놓는 경우다. 주어·술어의 도치, 목적어가 두 번, 세 번 나오는 강조문과 각종 돈호법 및 말줄임표가 연발된다. 게다가 문장실력을 맘껏 뽐내서 신문쟁이들의 야코를 눌러놓겠다는 야심도 엿보인다. 하지만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화장빨'에 속겠는가. 제발 이런 분들은 보도자료의 목적과 형식에 대해서 재고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요즘엔 편집자가 저자와 나눈 인터뷰, 책의 제작일지 같은 것을 일일이 보도자료에 적기도 한다. 그걸 처음 봤을 땐 "이야" 하는 탄성과 함께 한국 에디터십의 성장을 떠올리지만, 두어번 보다보면 굳이 필요할까 라는 회의가 든다. 편집은 숨어있을 때 더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편집이 공개되고 그게 제도화되면, 그것 자체가 일이 돼서 책에 쏟을 정성을 덜 쏟게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사실 요즘 책표지에 속아서 샀다가 후회하는 독자들이 늘고 있다. 편집에서 시각디자인적인 영역만 강화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유형도 있다. 보도자료를 보다가 뭔가 불충분해 책을 펼쳤는데 책의 머리말과 보도자료가 글자 한 토씨 틀리지 않을 경우다. 본문을 볼 시간도 없고, 그럴 땐 목차를 보며 상상력을 좀 발휘하게 된다. 아예 보도자료가 없는 것도 있다. 그럴 땐 왠지 섭섭함이 느껴지지만, 책의 앞표지나 뒷표지에 어떤 보도자료보다 훌륭한 설명이 나와 있을 경우가 많아 안도의 숨을 내쉬곤 한다.

가끔은 저자의 친필로 보도자료가 작성될 경우가 있다. 기자와 편집국장의 안부를 두루 묻고 우리나라 학계의 현실을 통탄하기도 하며, 그러면서 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자랑 반, 설명 반 한다. 그런데 지나치게 전공 책이어서 저널리즘과 맞지 않을 때가 많아 가장 괴로운 유형이기도 하다.

보도자료는 시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짧고 굵게 에센스를 담는 것이 정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시사성 강한 책들은 그 책과 관련된 국제동향, 국내동향 등 구구절절할 경우가 많은데 별로 도움되지 않는다. 또 자사 책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일이 세련된 마케팅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또 보도자료가 너무 두껍고 길면 별로 손이 안 간다. 그걸 일일이 보느니 차라리 책을 보는 게 낫기 때문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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