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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행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나의 꿈과 다짐
영국행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나의 꿈과 다짐
  • 박찬우
  • 승인 2018.07.30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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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페임랩 International’ 참가한 한국과학창의재단 소속 과학커뮤니케이터 박찬우씨 기행문

* 고등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고교입시 정보지 <대나무-대학은 나에게 무엇인가> 34호(수시 특집)에 실린 글 입니다.  

지난 5월 광화문에서 진행된 페임랩 코리아 본선에서 박찬우 씨의 발표 모습. 사진 제공=한국과학창의재단
지난 5월 광화문에서 진행된 페임랩 코리아 본선 무대에서. 

2018년 3월 22일. 하필이면 제 생일인 이날, 저는 방에서 스마트폰 웹 서핑을 하며 무의미한 시간을 때우고 있다가 우연히 '과학으로 소통하라 : 2018 페임랩 코리아'라는 과학 행사 홍보 게시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단 3분 안에 이미지나 발표자료 없이 대중들과 과학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페임랩의 독특한 스타일은 평범한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던 제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어떤 “응어리”가 이 순간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이를 풀고 싶다는 일념으로 결국 모집 마감일 페임랩 코리아에 지원했습니다. 

저는 현재 경희대 유전공학과 학사 과정을 모두 이수한 상태입니다. 제 전공인 유전공학은, 사전적 의미로 유전자를 조작해 생물체에 이로운 산물을 얻어내는 학문입니다. 우리가 많이 들어 봤을 만한 유전공학 기술로는 맞춤형 아기, GMO 그리고 유전자 가위 (CRIPR-CAS9)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분이 방금 예시로 든 유전공학 기술에 어떤 감정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친밀감? 아니면 반발감? 아마도 후자인 반발감을 더 많이 선택하셨을 것 같습니다.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비윤리적인 학문. 그것이 바로 여러분뿐만 아니라 현재 많은 분이, 그리고 사회가 유전공학을 바라보는 보편적 인식일 테니까요.

저는 이런 사회의 인식을 페임랩을 통해 진심으로 한 번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유전공학을 넘어 과학이란 학문이 사람을 위협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사람을 위하는 것이라고 대중들에게 외쳐보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페임랩 코리아 준비 기간 동안, 부모님의 사랑이 생물학적으로도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대중들이 과학으로부터 감동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 진심 어린 마음이 대중들에게 정말로 닿은 것인지, 지난 5월 2018 페임랩 코리아에서 저는 명예의 대상을 받았습니다. 대회가 끝나고 시간이 꽤 지난 지금. 아직도 저는 참가 신청을 망설이던 제 생일날을 떠올리곤 합니다. 제가 제게 가장 뜻깊은 생일 선물을 선사한 바로 그 날을 말이죠.

영국행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구름의 윗면. 사진 제공=박찬우
영국행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구름.

처음 바라본 구름의 윗면

페임랩 코리아 최종결선 진출자 10인은 한국과학기술정통부에서 정식으로 인정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 위촉돼 여러 혜택을 받습니다. 길거리에서 진행되는 과학 공연 ‘사이언스 버스킹’, 중·고등학교에 방문해 과학 강연을 진행하는 ‘다들배움’ 등, 다양한 과학 소통 활동에 참여합니다. 특히, 대상 수상자의 경우, 세계 각국의 페임랩 우승자들이 한 데 모여 다시 한번 자웅을 겨루는 ‘페임랩 인터내셔널’에 한국대표로 참가할 혜택까지 주어집니다. 대상을 받은 저 역시, 한국대표로 이 행사의 발원지인 영국의 과학도시 챌튼엄으로 날아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페임랩 인터내셔널 참가는 제게 참 많은 의의를 남겼습니다. 지금처럼 국경이 희미해지는 글로벌 시대에 조금은 우스울 수도 있지만, 저는 페임랩 인터내셔널 참가 덕분에 여권을 처음 만들어 봤습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저는 해외여행은 물론 가족여행도 잘 다니지 못했습니다. 페임랩 본선 무대 참가를 위한 영국 여행은 제 인생의 첫 해외 경험이었던 것이죠.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 끝내 구름을 아래로 바라본, 바로 그 순간을 저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대류권을 벗어나 비행기의 활로가 펼쳐진 성층권을 처음으로 바라본 제 가슴은 정말 두근거렸습니다.

그러나 제겐 하늘 위를 처음 와 봤다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얼굴로 전 세계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서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부담감이었습니다. 제 발표로 한국의 과학 소통 수준이 평가받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의 자부심이 제게 달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12시간의 비행 동안 겨우 3시간 남짓밖에 저는 잘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비행기 바퀴가 영국 땅에 닿았을 무렵, 저의 이런 부담감은 책임감으로 점점 변모했습니다. 겁을 내고 두려워하는 것보다 자신 있게 용기를 내 대회에 참가하는 게, 한국 하늘 아래서 저를 응원하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보답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던 것이죠.

잠깐 짬이 난 시간에. 왼쪽은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에서, 오른쪽은 '런던 아이'를 뒤로 두고.
잠깐 짬이 난 시간에. 왼쪽은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에서, 오른쪽은 '런던 아이'를 뒤로 두고.

벙어리의 외침

전 세계 사람들과 과학으로 소통하는 페임랩 인터내셔널. 인터내셔널 대회 준비 기간 동안 저는 치명적 약점 하나 때문에 큰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바로 영어 때문이었습니다. 평생 한 번도 외국인과 제대로 말을 섞어 본 적이 없고, 회화 학원에 다녀본 적도 없던 제게 영어로 발표와 질의응답을 준비한다는 건, 좀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고등학교 시절 암기했던 영어단어와 대학교 전공 서적에서 공부했던 몇 개의 문장만이 머릿속에서 마구 엉켜 있을 뿐이었습니다. 본선을 위한 대본 역시 주한영국문화원의 도움을 받아 겨우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준비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제가 결코 포기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이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한국의 다른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을 대표해 이 대회에 참가하는 만큼 책임감을 느끼며, 절대 아쉬움이 남지 않게 그리고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유전공학(과학)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연습을 반복 또 반복했습니다. 대회 이후 목이 아파 병원에 갔을 때 후두염이 꽤 크게 발병했을 정도로…. 그러나 그런 연습에도 불구하고, 참 하늘도 무심하시지, 저는 본선 무대 위에서 과도하게 긴장한 나머지, 결국 발표 도중 약 10초간 말을 잇지 못하는 결정적 실수를 하고 맙니다.

우여곡절의 발표가 끝난 뒤, 무대에서 내려오는 그 한 발, 한 발이 참 무겁더군요. 발표에 대한 아쉬움과 다른 과학커뮤니케이터들에게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겠죠.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청중들은 발표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저를, 정말 다른 발표자보다 더 진심 어리게 응원하고 반겨주었습니다. 어쩌면 참가자 가운데 제일 말이죠. 사실 저는 질의응답 시간에 조금 다른 소리를 했습니다. 영어를 잘 못 하기 때문에 답변을 수준 있게 할 자신이 없다고 심사위원께 과감히 말씀드린 후, 저는 1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가슴 속에 있던 큰 응어리를 전부 토해냈습니다. 말 그대로 벙어리가 세상을 향해 크게 한 번 소리쳐본 것이죠. 

대회 기간 동안 가장 가까웠던, 페임랩 인터내셔널 준우승자 독일대표 친구와.
대회 기간 동안 가장 가까웠던, 페임랩 인터내셔널 준우승자 독일대표 친구와.

그러나 다행히도 비행기 바퀴가 영국 땅에 닿았을 무렵, 저의 이런 부담감은 책임감으로 점점 변모했습니다. 겁을 내고 두려워하는 것보다 자신 있게 용기를 내 대회에 참가하는 게, 한국 하늘 아래서 저를 응원하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보답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던 것이죠.

페임랩 인터내셔널 참가자들과 함께.
페임랩 인터내셔널 참가자들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커뮤니케이터라는 새로운 사회적 역할이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과학을 아직 어려운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경향과 과학소통의 필요성을 실생활에서 잘 느끼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이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고 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액체질소를 이용한 ‘용가리 과자’ 때문에 한 아이가 위에 구멍이 생기는 천공 현상을 겪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만약 판매자가 -196°C에서 끓는점을 갖는 질소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했다면, 과연 이런 불상사가 일어났을까요? 제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위험한 사고를 피하기 위함뿐만 아니라, 비과학적 원리로 대중을 우롱하는 유사과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올바른 과학 윤리가 형성되기 위해 등등…. 우리가 과학을 이해해야만 하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는 현재 전 세계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의 소명입니다. 제 가슴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응어리도 사실 이러한 소명 중 하나였습니다. 인류를 위한 과학, 그리고 이를 응원하는 사회. 바로 이런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게 제 꿈이었던 거죠. 페임랩 인터내셔널은, 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발전시키고 노력해야 하는 점들이 무엇인지, 많은 점을 깨우쳐준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과학을 하나의 문화로 인식하는 자세. 그것이 현재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의 가장 기본이 돼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명의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 저는 우리나라의 과학 소통이 지금보다 더 크게 활성화되기를 몹시 희망합니다. 현재 과학 소통을 활발히 진행하는 커뮤니케이터들이 전국 곳곳에 있기는 하지만, 과학의 가치가 점점 더 증가하는 이 세계적 흐름에 맞춰 더 많은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이 등장해야 한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커뮤니케이터가 한 직업으로 분류돼 훨씬 각광받을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조심스레 예상해봅니다. 현재까지 페임랩 인터내셔널에서 한국대표가 우승한 사례는 없습니다. 과학을 왜 해야 하는지. 과학을 통해 무엇을 이뤄 낼 수 있는지. 지금 여러분이 먼저 생각해본다면, 2019년 그리고 2020년 페임랩 인터내셔널 트로피의 주인공이 바로 여러분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박찬우 한국과학창의재단 소속 과학커뮤니케이터(경희대 유전공학과)

** 이 글을 수록할 수 있게 도와주신 <교수신문>, 한국과학창의재단, 주한영국문화원 측에 모두 감사의 말씀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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