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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대학평가의 모순
한국형 대학평가의 모순
  • 김영석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8.07.16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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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김영석 편집기획위원/경상대·일반사회교육과

대학기본역량진단 결과가 발표되면서 전국의 대학가는 홍역을 앓고 있다. 예비자율개선대학에 선정되지 못한 대학들은 2단계 진단 준비를 해야 하고, 자율개선대학에 최종 선정되지 못할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진단평가 방식이 전문대와 지방대에 불리하고 수도권이나 광역시에 소재한 대학에만 유리하다는 볼멘 주장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학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결과들을 살펴보면 평가가 대학교육의 질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고 대학을 평가해서 줄 세우는 관행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대학평가는 불필요한 일일까? 매년 언론사들을 중심으로 발표되는 각종 상업성 평가야 그렇다 치더라도 국민의 혈세가 투여되는 정부의 재정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 어떤 형태이든 평가는 필요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평가 그 자체가 아니라 평가가 대학의 질, 즉 연구나 교육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국에서 대학평가가 신뢰받지 못한 근본 원인은 대학의 양적 팽창과 질적 성숙 간에 심각한 괴리가 존재하고, 그 사이에서 제대로 된 평가가 자리 잡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대학 평가의 본질적 목적은 대학교육의 수요자에게 대학교육의 질을 보증하는 데 있다. 학부모나 학생 입장에서는 믿고 다녀도 되는 대학인지, 고용주 입장에서는 제대로 교육을 했는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 대학 평가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설립의 기본 요건도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채 대학의 양산을 방관해 온 한국 고등교육의 어두운 과거에 비춰볼 때 기존의 평가들은 대학 설립 요건의 사후적 관리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대학의 질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대학기관평가인증도 대부분 대학이 인증을 받는 비싼 통과의례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2000년대 이후 각종 재정지원사업을 하면서 비로소 대학들에 비교적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내걸기 시작했지만, 평가지표의 ‘비본질성’ 때문에 내실있는 교육 및 연구의 질 개선보다는 지표 자체에 대학들이 매달리는 현상이 빚어지게 됐다.

학령인구감소에 따른 구조개혁 평가가 시행되면서부터 대학의 설립요건이 대학평가의 핵심 영역으로 새삼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설립되지 말았어야 할 대학을 사후에 구조개혁하겠다는 목적의 평가는 출발부터 논란을 예고한 정책이었다. 정부가 평가를 통해 대학에 구조개혁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부터가 논란의 대상이 됐다.

2018 대학기본역량진단은 이러한 측면에서 대학평가에 주목할 만한 변화를 시도했다. 평가를 구조개혁보다는 재정지원과 연계하겠다는 무게중심의 이동과 재정지원 방식에 있어서 대학의 자율을 확대한 포괄적 재정지원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구조개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대학의 기본역량을 진단하겠다는 용어의 선택이 이러한 정책 전환의 고민을 압축한 것이라고 이해된다. 여전히 평가를 통한 구조개혁의 미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지만 결국 정부가 주도하는 평가는 구조개혁보다는 재정지원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이렇듯 미래에도 재정지원을 위한 평가가 지속할 수밖에 없다면 정부와 대학의 근본 고민은 평가의 내용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설립요건, 즉 전임교원충원율이나 교사면적과 같은 지표들만으로는 대학의 질을 직접 평가하기에 부족하다. 학생충원율이나 취업률과 같은 성과지표들은 온전히 대학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에서 항상 논란의 대상이다. 이른바 선진국의 사례들을 살펴볼 때, 대학평가의 핵심 내용은 교육의 과정과 졸업의 질이라 할 수 있는데 현재 한국의 대상들을 대상으로 이 지표를 감히 사용할 수 있는지가 문제이다.

그러나 한국의 고등교육이 양적인 성장에 걸맞은 질적인 성숙을 국제적으로 보증받기 위해서는 교육의 과정과 졸업의 질에 대한 평가가 대학평가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다만 이러한 방향전환이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는 없기에 우선 대학을 괴롭히는 비본질적 지표들을 걷어내고 평가를 단순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타당한 지표들로 내실 있는 대학평가를 시간을 두고 구성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운용해 가야 한다.

 

김영석 편집기획위원/경상대·일반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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