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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 만연하는 ‘인격폭력’의 根源을 성찰하게 만드는 미시사회학 대표저서
한국사회에 만연하는 ‘인격폭력’의 根源을 성찰하게 만드는 미시사회학 대표저서
  • 심보선 경희사이버대·문화예술경영학과
  • 승인 2018.07.16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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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수용소』(어빙 고프먼 지음, 심보선 옮김, 문학과지성사)

석사 시절, 어빙 고프먼에 대해 나는 문외한이었다. 내가 고프먼에 대해 아는 바라고는 현대 서구 미시사회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 ‘총체적 시설(total institution)’과 ‘낙인(Stigma)’이라는 개념을 통해 예외시되고 문제시되는 개인들의 자아가 어떻게 파괴되고 재구성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 등이 전부였다.

박사과정에 진학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고프먼의 대표저서 『자아연출의 사회학(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을 접했기 때문이다. 그의 문체는 간명하고 건조했지만 집요한 논리 전개를 통해 문제를 파고 들어 현상의 안팎, 앞뒤를 꼼꼼히 훑었다. 고프먼은 에밀 뒤르케임에서 탈콧 파슨즈로 이어지는 사회학의 정통에 충실하면서도 과감한 이론적 혁신을 도모했다. 이를테면 ‘앞무대(front stage)’와 ‘무대뒤(back stage)’ 개념이 그러했다. 그는 앞무대와 무대뒤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과 그것들을 선택하고 활용하는 행위자들의 전략들을 소개하면서 사회학의 핵심적 주제인 ‘자아’와 ‘역할’ 등의 주제에 천착했다. 주제는 고전적이었지만 접근법은 파격적이었다. 자아의 역할 수행을 연출(presentation)과 공연(performance)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고프먼의 연극적(dramaturgical) 방법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천재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고프먼의 미시사회학은 사실 1950년대 이후 미국사회학계 내부의 다이내믹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탈콧 파슨즈의 유럽적인 거대 추상이론의 영향력 하에서 미국의 실용주의적인 사회학은 잠시 주춤하는 듯 했다. 하지만 구조기능주의에 대한 반발은 좀 더 변증법적으로 진행됐다. 고프먼을 비롯한 허버트 블루머와 해롤드 가핑클 등의 젊은 사회학자들은 정통사회학에 한 발을 딛고 다른 발을 좀 더 멀리 내디뎠다. 그들은 특히 20세기 초중반에 활약한 조지 허버트 미드와 알프레드 슈츠의 작업들을 다시금 발굴했다. 이들 작업의 특징이라면, 사회학, 심리학, 철학 중 하나의 학제에 갇히지 않은 채, 유연하고 실용주의적인 노선으로 학문적 경계를 넘나들며 일상생활에서 작동하는 개인의 마음과 감정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일군의 젊은 사회학자들은 고전과 현대를 종합하고 사회학과 비사회학을 절충하여 미시사회학의 계보를 다져나갔다. 어빙 고프먼의 작업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는 집단적인 노력의 일부였던 것이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미시적 상호작용에 대한 한국 사회학계의 관심은 다소 개별적이었고 파편적이었다. 대세는 통계적 방법론을 적용한 연구였고 질적 연구 또한 집단적 행태를 비평적으로 해석하는 식이 다수였다. 일상생활이나 혹은 특정 상황에서 개인들 간에 이루어지는 구체적 상호작용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분석하는 노동집약적인 미시사회학 작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프먼의 저서들과 개념들은 ‘전설과도 같은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제한적으로 활용됐다. 고프먼이 한국에 소개되고 그나마 근근이 자리를 차지해온 가장 주요한 이유는 ‘고프먼을 애정하는’ 몇몇 헌신적인 사회과학자들의 연구 및 번역 작업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자신 고프먼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그의 이론에 기대어 연구를 하고 결국 그의 대표저서 중 하나인 『수용소(Asylums)』를 번역하게 된 것은 나보다 선행하는 한국의 소수 고프먼주의자들 덕분이었다.

사회학자라면 당연히 현대사회에 깃든 폭력성에 관심을 갖는다. 어쩌면 지난 10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말 중 하나는 ‘국가폭력’일 것이다. 그런데 국가폭력은 흔하게는 정권이 시민을 대상으로 자행하는 폭력으로 여겨진다. 사회과학계에서는 국가폭력을 좀 더 거시적으로 확장해 ‘신자유주의 체제’의 구조적 폭력 정도로 여긴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 상황은 정권 및 구조적 차원의 폭력뿐만 아니라 일상과 일터에서 이루어지는 폭력, 비물리적이고 언어적인 폭력에 대한 관심을 요청한다. 소수자들을 향한 혐오, 위계에 따른 폭력, 갑이 을을 대상으로 행하는 인격파괴 등의 현상은 상호작용에서 오가는 말, 몸짓, 표정 등의 커뮤니케이션 코드들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것도 지극히 체계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격파괴적 상호작용

고프먼은 소위 ‘정상인들’간의 호혜적 상호작용과 ‘정상인’과 ‘비정상인’ 사이의 인격파괴적 상호작용을 모두 다룬다. 그런데 고프먼에 따르면 전자가 왜곡된 것이 후자가 아니다. 후자는 오히려 전자의 코드들을 뒤바꾸고 삭제하고 과장함으로써 완성되는 새로운 코드 체계이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상대방의 체면이 구겨졌을 때,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의 ‘자아’는 신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정신병원에서 사람의 자아는 입원 때부터 모욕당하고 공격당한다. 정신병원은 사람을 훈육하고 통제해 ‘사람이 아닌 존재’로 만든다. 그래야만 정신병원은 하나의 시설로서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프먼은 『수용소』에서 ‘총체적 기관’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람이 집단으로 편성되고 관리될 때, 그 기관이 표방하는 이상적 목표는 현실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환자는 치료돼야 하지만 시설은 유지돼야 한다. 그리고 그 시설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수요는 지극히 사회적인 것이다. ‘비정상인들’을 격리하고 관리하는 총체적 기관이 없다면 ‘정상인들’간의 호혜적 상호작용은 늘 위협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프먼은 한 사람이 타인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의 품성이나 성격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사회적 필요와 수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구체적 환경의 산물이다. 우리는 고프먼의 통찰력을 빌려와 감히 주장할 수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의 인격 폭력이 그토록 편재하는 것은 바로 그 인격 폭력이 한국 사회의 조직과 집단을 유지하는 주요한 자원 중 일부이기 때문이라고.        

고프먼은 기능주의적 결론을 내리고 논의를 완결시키지 않는다. 내가『수용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문장 하나가 있다. “Self is built against environment.”라는 문장이다. 그는  against라는 전치사를 썼다. against는 ‘그것에 저항하면서’, 혹은 ‘그것에 대하여’라고 해석할 수 있다. 고프먼은 여기서 사회적 지위(status)와 자아(self)를 건축적 비유를 통해 구별한다. 사회 환경을 단단한 건물로 가정하자면, 사회적 지위는 단단한 건물에 의해(by) 주어지지만, 자아는 그 단단한 환경에 저항하면서(against) 발생한다는 것이다. 고프먼에 따르면 자아는 그 단단한 환경 내부의 틈(cracks)에서, 그 틈을 벌리며 생성한다. 

고프먼을 우회하여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던질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을 권리와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기술과 전략을 사용하는가? 우리에게는 어떤 틈들이 있는가? 그 틈들은 사라지는가, 아니면 새로운 틈들이 생겨나는가? 그 틈을 더 벌리기 위해서 개인이나 집단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또한 고프먼은 강조한다. 우리가 대항(against)하는 사회가 어떤 것인지에 따라 우리의 싸움과 정체성도 영향을 받는다. 틈의 형태와 크기는 건물의 재질과 성격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고프먼은 억압적 구조도 그것에 대한 저항도 신비화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사회는 일상과 일터에서 만연하는 인격폭력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만큼 그것에 반발하고 저항하는 움직임들도 꿈틀대고 있다. 고프먼의 미시사회학은은 둘 모두를 성찰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심보선 경희사이버대·문화예술경영학과
컬럼비아대에서 예술사회학으로 박사를 했다. 대표 논문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의 상호작용 의례: 자전거 커뮤니티 사례를 중심으로」, 저서로는 『그을린 예술』, 역서로는 『수용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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