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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 프랑수아즈 사강이 만난 사람들
자유로운 영혼, 프랑수아즈 사강이 만난 사람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7.09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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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리틀 블랙 드레스』(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보경 옮김, 열화당, 2018.07)

이 책은 스피드광, 마약 중독, 도박, 연이은 스캔들로 파란만장한 삶을 산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이 195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후반 사이 각종 잡지에 발표했던 마흔여덟 편의 글을 수록하고 있는 에세이집이다. 두 편을 제외하고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글들을 모았다. 

1부 「리틀 블랙 드레스」는 사강이 이브 생 로랑, 베티나 그리지아니, 페기 로슈 같은 패션계의 인물들과 교유한 내용을 담았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조예가 깊었던 사강은 명석하고 열정적이며 타협이라곤 모르지만, 관대하기도 한 이브 생 로랑을 발견하고, 이십 년 지기 단짝친구 베티나 그리지아니와의 추억을 돌아본다.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패션계의 인물들을 사강의 시선을 통해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신선한 경험이다. 2부 「무대 뒤의 고독」은 사강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배우들과의 만남을 그려냈다. 얼음처럼 차갑고 완벽한 외모 뒤에 숨겨진 카트린 드뇌브의 상처, 제라르 드파르디외에 대한 예언과도 같은 우려가 담긴 이 글들에서 화려한 무대 뒤 쓸쓸한 이면을 사강만의 시선으로 파헤쳤다.

3부 「극장에서」는 시나리오를 집필했던 사강이 바라본 프랑스 영화계의 현주소라 할 만한 열편의 영화평론이 실려 있다. 영화사 전체에 걸친, 거장의 대표작인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저명한 소설을 영화화한 피터 브룩의 「모데라토 칸타빌레」,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클로드 샤브롤의 「착한 여자들」 등 사강은 때론 냉철한 비평가의 시선으로, 때론 헤어날 수 없는 감동에 빠진 관객의 표정으로 이들 영화들을 새롭게 선보인다. 4부 「정말 좋은 책에 대하여」에는 한때의 사랑을 회고하는 내밀한 기록 「고별의 편지」, 사강이 곁에서 지켜본 있는 그대로의 장 폴 사르트르의 마지막 초상, 책보다 장엄한 세계를 일깨우게 된 열여섯 적 일화를 소개하는 「어린 시절에 만난 도시의 방랑자」 등 한 사람의 사강을 만나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5부 「스위스에서 쓴 편지」에는 웃음이 가진 성격, 남을 웃기는 능력에 대한 동경을 담은 「웃음에 대하여」와 사강의 대표적 특징인 남녀의 심리묘사를 주로 보여 주는 짧은 픽션 「어떤 콘서트」 등 특정한 주제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산문들이 빛을 발한다. 마지막 6부 「대화 그리고 그 밖의 이야기」에는 어릴 적 어머니가 사 준 모자에 대한 일화부터 패션에 대한 관심을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낸 「사강과 유행」, 동일한 질문을 일체의 장막을 치지 않고 자신의 면면을 드러내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질문」 등 사강의 사사로운 글들이 한데 모였다. 

奇人을 연상시키는 사강은 데뷔작 『슬픔이여 안녕(Bonjour tristesse)』에서 전통적인 이야기상과 플롯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감성을 자유롭게 펼치며 신세대 문학의 신호탄을 쐈다. 두 번째 소설 『어떤 미소(Un certain sourire)』로 진정한 작가의 길에 접어든 그는 문학적 영예를 한 몸에 받던 1957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한다. 생애를 통틀어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경험했고, 1995년 마약복용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사강. 도박으로 파산에 처하고 수면제 과용, 알코올 중독에 빠져 나날이 황폐해져 갔지만, 이번에 선보이는 에세이들에서는, 그 형식과 발화의 자유분방함이 사강이라는 측량하기 어려운 영혼의 소유자를 대변하듯 실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단순하게는 잡지 기고 글부터 편지, 인터뷰, 설문지, 흩어져 있는 메모를 한데 모은 인상을 주는 글까지, 우리는 이들 글에서 ‘자유로움’으로 대표되는 사강의 진면목을 작가의 소설이 아닌 작가의 私談으로 만나게 된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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