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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들의 질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페미니스트들의 질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교수신문
  • 승인 2018.07.0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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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김은실 엮음, 휴머니스트, 2018.06)

‘여성’과 관련한 지식은 어떻게 생산되는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상징으로서, 규범으로서 정의돼왔던 ‘여성’의 개념에 도전하고 균열을 내는 페미니스트 크리틱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그 의미가 획득되는가. 페미니스트는 어떤 방식의 언어와 글쓰기 양식을 가질 수 있으며, 그 글쓰기 양식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언어가 수행하는 담론의 권력은 어떤 맥락이 있을 때 작동하는가. 나는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세 명의 페미니스트를 ‘지금, 여기’에 초대하곤 한다. 20세기 전반기, 여성 지식인으로 자신을 정체화했던 세 명의 페미니스트. 식민지 조선의 나혜석,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프랑스의 시몬 드 보부아르다.

세 사람은 동시대에 살았지만, 역사적 공간은 달랐다. 나혜석은 일제 식민지 공간에, 울프와 보부아르는 제국주의 침략을 주도하는 제국의 수도에 살았던 페미니스트다. 각자 다른 위치에 있던 여성들이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는 방식을 살펴보는 것은, 이후 더 나은 방식으로 젠더 정치를 비판하고자 하는 페미니스트에게 생각을 여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나혜석, 울프 그리고 보부아르

1029년을 기점으로 세 페미니스트의 삶의 여정을 살펴보면, 나혜석은 1929년에 유럽과 미국 여행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온다. 1929년에 버지나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쓴다. 1929년에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를 만나 계약 결혼을 하고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일하기 시작하며, 1949년에 『제2의 성』을 출간한다.

나혜석이 자신의 삶이 신남성보다 구여성과 더 비슷하다는 인식과 자신이 ‘여자’라는 구조적 조건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유럽과 미국 여행에서 서구 여성들을 보고 돌아와 이혼하고 난 후였다. 나혜석이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고 또 답을 찾는 모든 출처는 바로 자신의 경험이었다. 나혜석은 그 경험을 거의 모두 잡지에 발표했는데, 그 길이는 몇 페이지를 넘지 못했다. 자기를 설명할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도, 여성의 삶을 설명하는 다른 참고문헌도 전혀 없었다. 나혜석은 1948년 행려병자로 사망한다. 2000년대 나혜석 전집을 읽는 한국 여성들은 나혜석의 고민과 현재 자신의 고민이 같다는 사실에 놀란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당시 영국 사회에서 남성 지식인들은 케임브리지대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사서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많은 참고문헌을 사용하며 ‘논문’을 쓰는 데 반해, 여성들은 시간의 당속성과 장소의 불연속성 속에서 참고문헌도 필요하지 않은 ‘소설’을 쓰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울프는 여성의 독립에 필요한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사유 능력과 자기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갖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가톨릭과 보수주의가 지배적이었고 반페미니스트적 사회 분위기가 매우 강했던 시점에 세상에 나왔다. 보부아르는 책에서 ‘사유하는 존재라는 인간’에 대한 데카르트 명제에 대해, 그것은 주체인 남성들의 정의 방식이고 여자는 타자로서 몸으로 규정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에서 『제2의 성』은 철학책으로 간주되지 않았고, 여성을 설명하는 역사적 데이터의 음란성만 부각돼 공격받았다.

나혜석이 여성으로서 경험에 대해 쓴 글은, 한국 사회에서 1990년대 중반이 넘어서야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여성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1920년대와 1920년대에 작가로서 상당한 aud  누렸던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정치의식이 없는 엘리트 작가로 간주됐지만, 1970년대 초 페미니즘 운동이 새롭게 일어난 이후에는 울프 문학에 대한 비평과 연구가 하나의 소규모 산업이 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보부아르 또한 당시 작가로 상당한 명성을 갖고 있었지만, 자국의 여성 해방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후 『제2의 성』이 1960년대 미국 여성운동에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다시 프랑스로 역수입돼 프랑스 여성운동을 활성화시키는데 기여한다.

당대 시공간의 규정성에 도전하다

요컨대 세 사람은 여성의 삶의 조건과 여성에 관한 지식에 대해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답을 추구하는 과정과 그 답이 맺는 사회와의 관계, 다른 여성들과의 관계 그리고 정치적 효과는 달랐다. 나혜석은 여성의 성 역할로 인해 식민지 상황에서 남성과 동등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버지니아 울프는 남성과 동등해지기 위한 경제적 조건의 필요성을, 보부아르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평등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미 여성은 남성의 타자로 역사화돼왔다는 현실을 크리틱한다.

나는 세 명의 페미니스트 중에서 누가 가장 영향력이 큰지, 누가 이론을 다루는 사람이고 누가 개인의 경험을 말하는 사람인지, 우리는 이중에서 누구의 글쓰기를 따라 해야 하는지를 말하기 위해 이들을 동시대인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페미니스트들의 물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질문이 놓여 있는 장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 질문은 여성들의 삶을 정상적이고 규범적으로 만드는 권력 체계와 어떻게 닿아 있고 페미니스트의 질문은 그것을 어떻게 흔드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특정한 사회에서 제기되는 대부분의 질문들과 그것에 대한 답의 추구는 그 사회의 규정성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나혜석이나 울프, 보부아르의 질문은 각자 자기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안전한 앎의 영역을 벗어났고, 성차(sex)나 성별(gender)이 위치하는 사회관계의 앎의 질서에 도전했다. 많은 경우, 나혜석과 울프, 보부아르는 분과 학문인 문학에서, 문학의 역사 속에 위치돼 선각자로 읽힌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적 시간보다 먼저 도착한(“시대를 앞서간”) 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규정하고 구속하는 당대의 시간과 공간의 규정성에 도전하고 당대의 성별, 질서와 체제를 크리틱한 여성들이다. 페미니스트 크리틱은 자신들의 삶을 규정하는 성별정치학, 젠더 관계가 구성되는 사회와 역사의 경계 그리고 지식-진리 체계에 대한 정치적 인식이고 비판이다.

엮은이 김은실은 이화여대 교수(여성학과)로 동대학 아시아여성학센터소장/한국여성연구원장/교양교육원장, 한국여성학회장, <당대비평>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여성의 몸, 몸의 문화정치학』을 비롯해 60여 권의 편저서, 공저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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