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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9호 새로 나온 책
929호 새로 나온 책
  • 교수신문
  • 승인 2018.07.0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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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말말

단기주의의 위기

종교 기관과 더불어 대학은 전통의 매개자이자 심오한 지식의 수호자다. 대학은 수익이나 즉각적인 적용을 떠나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혁신의 중심이어야 한다. 대학이 장기적인 자원을 갖고 장기적인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상대적인 무관심 때문이다.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시드니대(1850)의 부총장이 지적했듯이, 대학은 “장기적인 연구와 기반 시설에 집중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는 유일한 주자다. (…)  기업은 대개 수년간의 투자를 통해 수익을 추구한다. 만약 대학이 그와 비슷한 방식을 취한다면 20년, 30년, 혹은 50년의 시간 범위에 대한 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기관은 지구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수익과 상관없이 긴 기간에 대한 연구의 수행을 지원하는 대학의 독특한 능력이 장기적인 사고 자체와 마찬가지로 위험에 처해 있는 듯하다. 대학의 역사 전반에 걸쳐 전통을 계승하고, 전통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책무는 인문학이 맡아왔다. 현재 인문학에는 언어와 문학, 미술과 음악, 그리고 철학과 역사에 대한 공부가 포함돼 있지만, 본래는 논리학이나 수사학과 같은, 하지만 법학이나 의학 그리고 신학은 제외된, 모든 비전문 분야를 망라했다. 인문학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도구적이 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었다. 중세 대학이 근대 연구 중심 대학으로 변모하면서, 그리고 사립대학이 공적 통제와 공적 자금에 종속되면서, 인문학의 목적은 점차 시험받았고 의문시됐다. 적어도 지난 세기 동안 인문학을 가르치고 공부하는 곳이라면 인문학의 ‘적실성’과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을 치러야 했다. 인문학을 옹호하는 측의 중심된 주장은 인문학이 수백 년 동안 아니 수천 년 동안 가치에 대한 질문을 후대에 넘겨줬을 뿐만 아니라 가치 그 자체에 대해서도 질문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단기주의에 대항할 수단은 당연히 인문학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조굴디 메소디스트대 교수, 데이비드 아미티지 하버드대 교수의 『역사학 선언』(안두환 옮김, 한울아카데미, 2017.06) 중에서

 

새로 나온 책

■교통의 지리 | 허우긍 지음 | 푸른길 | 452쪽

철도가 놓이면 국가의 틀이 바뀌고, 도시철도역이 들어서면 시가지가 놀랍게 달라진다. 또한 교통 시설과 흐름은 지역의 사정에 조응하기에, 공항과 운항노선에서는 공중의 세상이, 사람과 화물의 이동에서는 땅의 세상이 꾸려져 나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교통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이 책은 4부로 구성돼 있는데, 제1부 ‘교통과 지역’에서는 우리의 시야를 국가, 대륙, 세계로 넓혀 거시적으로 교통의 지리를 살펴보고, 제2부 ‘교통과 도시’에서는 초점을 도시에 맞춰 교통과 도시의 관계, 그리고 도시 사람들의 통행 특성을 다뤄 교통과 공간의 관계를 들여다 본다. 제3부 ‘네트워크와 흐름’에서는 교통의 지리를 살피는 데 필요한 수리적 모형과 분석법을, 제4부 ‘미래의 교통’에서는 교통의 지속가능성 문제와 정보통신기술이 교통에 갖는 함의를 고민한다. 교통지리학의 지난 역사와 최근 동향까지 정리돼 있어 그간 우리가 교통에 대해 가져왔던 생각과 태도를 되돌아보게 한다. 

■동물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 마고 드멜로 지음 | 천명선, 조중헌 옮김 | 공존 | 616쪽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연구하는 인간동물학의 가장 적절한 입문서이자 기본 텍스트라 할 수 있느 s이 책은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과 동물이 맺는 관계 및 인간 사회 속에서 동물이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를 풍부한 사례와 날카로운 관점으로 정리했다. 저자들은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가기 전, 먼저 우리에게 익숙한 범주와 개념에 대해서도 환기시키는데, 인간도 동물의 한 종임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인간과 동물’이라는 표현은, ‘인간인 동물과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고 바로잡는 게 옳지만, 인간과 동물 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인식틀 자체가 사회·정칯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강조하며, 모두가 인간‘동물’의 일원일 독자에게 이 책을 읽는 경험이 단순한 정보 습득을 넘어 자기 성찰의 과정이 될 수 있도록 성실히 인도한다.

 

■디코딩 라틴아메리카 | 김은중, 장재준, 우석균 등 14명 지음 | 지식의날개 | 408쪽

1994년 멕시코-미국-캐나다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해 무장봉기를 일으킨 멕시코 치아파스주의 사파티스타 원주민들은 복면을 썼다. 하지만 복면은 원주민의 얼굴을 감춘 것이 아니라 500년 동안 억압받은 원주민의 현실을 드러냈다. 은폐된 멕시코의 얼굴과 근대성이 감춰놓은 식민성의 얼굴들. 이 책은 현실을 드러남(現)과 숨음(實)이라는 이중적 구조로 보는 시각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사회적·문화적 현실을 다르게 바라보려는 시도다. 메소아메리카부터 잉카의 번영과 멸망, 멕시코혁명과 라틴아메리카의 인종정책,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미국 라티노의 역사, 커피,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실험, 근대 문명과 수막 카우사이까지 저자들은 20개의 코드를 통시적·공시적으로 풀어내 라틴아메리카를 넓고 깊게 읽어내려했으며, 코드화된 현실을 해독하며 이뤄진 재코드화한 현실을 통해 라틴아메리카가 처한 현실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자 했다.

 

 

■북한 체제의 기원 | 김재웅 지음 | 역사비평사 | 584쪽

이 책은 체제 발전의 질적 전환과 관련해 현대 북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원형이 형성된 시기인 1948년~1949년경의 질서에 주목하고 있다. 전시 미군이 노획한 북한 자료의 분석을 통해 인민들의 생활상과 사고방식에 접근할 수 있었던 이 책은 그들의 의식 속에 반영된 심층적 정보들을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전전시기에 이뤄진 계급질서의 재편이 기층 민간 수준에 이르는 근본적 변화였음을 밝히고자 한다. 저자는 북한의 급진적 계급정책과 국가주의 사조가 현실 문제의 해법으로서 등장했다기보다, 이념의 논리에 따른 방향 설정에서 비롯됐다는 논점을 제기하며, 전전시기의 급진적 개혁이 어떠한 맥락과 논리에 따라 추진력을 얻고, 그 결과 북한 사회구조의 골격을 어떠한 형태로 짜나갔는가를 밝힘으로써 현대 북한체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기원을 추론해내고 있다.

 

 

■쇼펜하우어 전기 | 뤼디거 자프란스키 지음 | 정상원 옮김 | 꿈결 | 744쪽

이 책은 신과 세계를 뜨거운 가슴으로 사유했던 시절과 무엇인가가 존재하며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없다는 데 놀라워했던 시절, 즉 철학의 시절을 향한 한 철학자의 사랑 고백이다. 저자는 칸트에서 피히테와 셀링, 낭만주의 철하을 거쳐 헤겔과 포이어바흐, 청년마르크스로 이어지는 이른바 철학의 격동시대를 돌아보며, 철학이 다시금 휘황찬란한 꽃을 피웠던 때로 돌아가 사라진 세계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독일의 저명한 사상사 평전 작가는 전작 『니체-그의 사상의 전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삶과 사상을 아우르는 탁월한 필치로 이 책을 완성했다. 쇼펜하우어 철학이 어떤 사상적 배경에서 성장했고, 어떤 사상과 격돌하는지 또 어떤 사상과 예술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개관하는 독일 사상사 입문서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한다. 1987년 출간된 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여전히 널리 읽히는 쇼펜하우어의 대표적인 전기로 통한다. 

 

■프롤레타리아문학과 그 시대 | 구리하라 유키오 지음 | 한일문학연구회 옮김 | 507쪽

이 책은 1920~1930년대 일본의 프롤레타리아문학운동 전체를 조망하는 책으로 주된 독자층은 1968~1969년의 전학공투회의 운동을 거친 학생들과 그 주변에서 유사한 문제를 고민한 이들이다. ‘대학해체’를 주장한 이들은 자신들의 근거를 뒷받침해온 대학이 갖는 권력성을 부정했는데, 이 점은 바로 저자가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이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임을 강조하는 것과 연결된다. 초판이 간행 된 1971년, 저자가 50년 전의 과거를 동시대적으로 바라본 것을 다시 50년이 지나 한국어로 번역했지만, 이 책이 여전히 생생하게 다가올 수 있는 이유는 저자가 당대의 담론 장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만들어낸 방법(후쿠모토주의, 천황공포, 전향, 정치와 예술, 대중화)이 2018년 한국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죽은 신의 인문학 | 이상철 지음 | 돌베개 | 380쪽

기독교는 타인에 대한 사랑을 중시하는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개신교는 한국 현대사를 통틀어 ‘타자’를 적대하고 혐오하는 이데올로기의 처소로 기능했다. 저자는 한국 교회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여성 혐오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으며, 남성과 여성 신도의 성 역할에 대한 고착, 여성에 대한 목사 안수 거부, 교회 당회의 남녀 성비 차이, 남성 우월의식 등이 보수와 진보의 지향성을 떠나 한국 교회 전체에 퍼져 있는 DNA라고 진단한다. 저자는 동성애 혐오 기제를 작동시키는 한국 개신교의 위기의식과 교회 스스로 갱신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근본적으로 지적하면서, 교회가 스스로의 허물과 죄악을 은폐하기 위해 동성애라는 오래됐지만 신선한 ‘적’을 다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짜는 예수의 행위 차제를 불가능의 가능성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하며, 이것이 윤리가 왜 무조건적인 환대에 기초한 것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준 데리다식 헤체주의라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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