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동안 5편
2년 동안 5편
  • 이기홍 논설위원
  • 승인 2018.07.0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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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방학이지만 방학 같지가 않다. 나 같이 은퇴가 머지않은 ‘정년 보장’ 교수도 연구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급료가 줄어든다는 압박에, 실제로 진행하는 것은 별로 없음에도, 어깨가 무겁지만, 갓 부임한 신임교수의 사정은 딱하다 못해 화가 치밀 지경이다. 

2년 동안 5편, 얼마 전 전해들은 서울의 유수한 대학이 신임교수에게 요구하는 실적이다. 더 심한 대학도 있다. 일부 학문분과에서는 도달 가능할 수 있겠지만, 내가 속한 인문사회계 기초학문분과에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기준이다. 신임 교수는 강의에서도 초보자로 학기 중에는 수업 준비에도 시간이 부족한 만큼, 방학에 연구에 집중하여 실적을 올려야 한다. 부임한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연구 여건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사치일 것이다.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 수요와 공급이 매우 비대칭적인 전문연구자 노동시장에서, 젊은 연구자들은 10년 이상 교육을 받고 훈련을 쌓았음에도 약자일 수밖에 없다.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면 그 어떤 불리한 조건의 계약이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철두철미 ‘을’, 아니 ‘병’이나 ‘정’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연구자가 고용 관련 법규에 무지할 뿐 아니라, 설사 법규를 안다고 하더라도 계약의 부적절함을 문제 삼는 것은 곧 밥그릇을 차버리는 일이다. 그러니 대학들은 경쟁적으로 신임교수에게 계약과 재계약의 조건으로 더 많은 실적을 부과하고 있고, 지난 10여 년 동안 그 조건은 해를 거듭하며 가혹해졌다. 그럼에도 ‘대학의 자유’니 ‘학문적 전문성’이니 하는 허울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에, 그런 조건의 타당성이나 공정성은 공공적 심사의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다. 

서울의 또 다른 유수대학에서는 아예 신임 교수 개인별로 3년 동안 논문 몇 편, 연구비 수주 얼마 이렇게 계약을 맺는다. 일견 이런 계약방식은 합리적인 듯 보인다. 학문연구는 ‘전문성’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하고 있고 그러므로 연구실적의 평가에서 연구자 자신보다 더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평가자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성과 목표도 연구자 자신이 가장 적절하게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나 신임 교수가 자신의 학문의 특성에 적합한 성과목표를 정해 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별 계약을 맺고 임용된 신임 교수는 ‘정년 보장을 받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겠노라’고 내게 다짐했다. 그 자체로 합리적인 요소를 갖는 제도들도 한국 사회에 오면 기묘한 갑질의 도구로 변모하는 일이 허다한데, 이점에서는 대학의 제도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계약서에 ‘성과 목표’로 더 많은 실적과 더 많은 연구비 수주를 써넣는 연구자를 교수로 뽑을 수도 있을 것이다.

화를 돋우는 것은 이렇게 신임 교수들에게 나날이 가혹해지는 (재)계약조건을 부과하는 주체가 다름 아닌 총장과 보직교수들이라는 사실이다. 신임 교수들이 평안하게 대학에 적응해 교육과 연구에 복무하고 학문공동체를 번성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들의 임무의 하나일 터인데, 그들은 그 임무를 정반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들의 원하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이러저러한 대학순위평가 서열표에, 자신이 ‘경영하는’ 대학이 한 칸이라도 위쪽에 자리 잡았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대학들 사이에 서열이 확고하게 고착돼 있는 한국 사회에서 순위표에서 위치 상승이 실질적으로 어떤 유익함이 있는지 나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럼에도 총장과 보직교수들은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교수들을 그 순위 경쟁의 도구로 내몰려고 하고, 철밥통으로 불리는 정년보장 교수들에게 쓸 수 있는 마땅한 압박 수단이 없는 탓에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는 신임 교수들을 먹잇감으로 삼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꼭 그런 것도 아니지만) 대학 밖에서는 신자유주의의 실패와 적폐를 넘어서려는 움직임이 있음에도 한국의 대학의 경영자들은 요지부동이다. 

게다가 신임 교수들을 실적의 감옥에 가두어 놓고 관리하는 분들이, ‘요즘 젊은 교수들은 자기 이익밖에 모른다’는 둥, ‘학교 일을 부탁하려 해도 하나같이 거절한다’는 둥, ‘공공적 지식인으로서 역할을 망각하고 소시민이 됐다’는 둥 험담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공공적 책무에 소홀하지 않은, 이기적이지 않은 젊은 교수들을 보고 싶다면, 총장과 보직교수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를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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