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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구자 꿈나무들은 외국으로 떠나는가?
왜 연구자 꿈나무들은 외국으로 떠나는가?
  • 문광호 기자
  • 승인 2018.07.09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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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연구·교육환경 개선 위한 토론회 개최
지난달 28일 민교협 사무실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열띤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전준하 카이스트 대학원생, 유현미 서울대 대학원생, 강태경 대학원생노조 부위원장, 최윤 고려대 과학기술연구소 교수, 한만수 동국대 교수)
지난달 28일 민교협 사무실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열띤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전준하 카이스트 대학원생, 유현미 서울대 대학원생, 강태경 대학원생노조 부위원장, 최윤 고려대 과학기술연구소 교수, 한만수 동국대 교수)

“차라리 유학을 가는 게 연구하기에 편하다.”

대학원생-교수 토론회에서 강태경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위원장 구슬아, 이하 대학원생노조) 부위원장은 대학원생들의 현황을 전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대학원 발전 방안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대학원의 연구·교육 환경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참가자들은 대학원이 배움과 가르침이 있는 지식생산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원 내 다양한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28일 <교수신문>과 대학원생노조는 지난 4월부터 10회 연재했던 ‘대학원생들의 一聲’을 마무리하며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왜 연구자 꿈나무들은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나?’를 주제로 대학원의 연구·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논의가 이뤄졌다. 구슬아 위원장은 “대학원생들의 문제는 곧 한국 대학원의 미래의 문제와도 같고 그러므로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서로가 서 있는 지평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이해하는 것이 앞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적 첫걸음이 되면 한다”며 이번 토론회 개최 이유를 밝혔다.

프로젝트형 지원에 연구환경 과부하

토론은 주제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내놓는 것으로 시작됐다. 토론자들은 한국 대학원이 좋은 연구환경을 마련했다면 외국으로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윤 고려대 과학기술연구소 교수(과학기술학)은 “대학원 다닐 때 이공계 동기들은 ‘생계형 유학’이라는 표현을 썼다”며 “용돈 수준에 불과한 한국 대학원의 지원 금액과 달리 외국 대학원은 최저 생계비를 연구비로 지원해준다”고 말했다.

외국에 비해 한국 대학원의 환경이 열악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만수 동국대 교수(국문과)는 한국연구재단의 프로젝트형 지원 체계를 지적했다. 한 교수는 “연구재단에 제출할 서류도 엄청나고 현재 연구를 하면서도 다음 연구를 준비해야 하는 등 할 일이 너무 많다”며 “그렇다고 프로젝트에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제자들의 연구 활동을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한 문제가 생긴다”고 토로했다. 최 교수도 “한국 대학의 연구 활동 자체가 연구재단 프로젝트에 의존해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며 “대학원생들은 교수들과의 사적관계도 중요하고 성과에 대한 압박도 심해진다”고 지적했다.

연구 실적과 행정에 대한 과중한 부담은 대학원생들에게 전가되기도 한다. 유현미 서울대 대학원생은 “업무가 공평하게 배분되는 것이 아니다. 교수들은 힘들어도 업무를 떠넘길 기회가 있고 그 부담은 아래로 간다”고 비판했다. 

교수들이 사업가가 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전준하 카이스트 대학원생은 “이제는 교수의 학문적인 능력보다 (연구비) 관리 능력 등이 더 중요해진 상황이다”면서 “대학원 총학생회에서 매년 연구 실태조사를 하는데 교수가 공부를 안 한다는 학생들의 답변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강태경 대학원생노조 부위원장도 “근 20년 동안 대학은 기업화됐고 지식 생산도 국가나 기업에서 필요한 지식을 뽑아내는 시스템이 되고 있다”며 대학이 학문적 자율성이 상실되는 현실을 문제 삼았다.

이어진 대안토론에서는 학문적 자발성과 주체성을 실현하기 위해 결성된 인문학 협동조합, 학문의 공공적 성격을 강조한 국가교수제도, 파벌 문제와 대학본부와의 갈등을 막기 위한 연합 대학원 등이 제시됐다. 전준하 대학원생은 “인권 침해 등 교수 사회의 문제가 드러나는 상황에서 자율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교수에게서만 나온다면 일반 시민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대학원생도 논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한 교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학문 공동체에서 필요할 때만 대학원생을 대화에 포함시키고 중요한 의사결정에서는 배제하는 이중적 태도가 결과적으로 자율성 침해하는 결과 가져왔다”고 말했다.

허울뿐인 지도교수 제도...열악한 대학원 교육환경

대학원의 교육환경에 대한 토론에서는 교육에 대한 교수와 대학원생 간의 입장 차가 보다 뚜렷하게 드러났다. 대학원생들은 지도교수 체제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강태경 부위원장은 “지금은 연구성과 지표 중심으로 대학원이 운영되는데 그것이 교육 성과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다”며 “대학원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일 많이 배운 것은 포닥 선배나 동료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강 부위원장은 교수의 절대적인 수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현재 전임교원의 수는 9만명, 대학원생의 수는 33만명(특수대학원 포함)이다.

도제식 지도교수 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유현미 대학원생은 “지식은 학문공동체에서 나오는 것이지 교수 개인에게 속한 것 아니다”며 “대학원 박사과정은 교수에게 지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하거나 선후배와 하는 것이라는 문화도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도 “랩(실험실) 위주로 운영되는 지도교수 제도가 최선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교수들에게도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각종 교수 평가에서 논문점수에 비해 교육, 지도 점수는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논문 하나에 120점을 받을 수 있는데 석사과정생을 지도하면 점수를 5점 준다”며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연구 분야의 다양성이 점점 커지는 것도 지도에 어려움을 더한다. 활자 문학을 연구해온 한 교수는 웹문학을 연구하겠다는 제자의 요구에 당황한 경험을 설명했다.

지도교수 제도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대안은 공동지도제도였다. 공동지도는 대학원 3학기까지는 ‘1대학원생 1지도교수’를 유지하다가 논문 평가 단계가 되면 해당 전공의 전체교수들이 공동으로 지도하는 시스템이다. 다른 교수들에게 제자의 논문을 보인다는 점에서 지도교수의 책임감도 커지고 다양한 상호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 교수는 “다만 논문지도에 품이 많이 든다는 점은 문제다”라며 “석사과정생 2명의 논문 지도하는 것이 논문 1편 쓰는 것보다 힘들다”고 말했다.

각자 입장 고려한 정확한 현실 진단 필요

토론에 참여하지 않은 교수들도 대학원생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는 데 동의했다. 박순진 대구대 교수(경찰행정학과)는 “대학원생들은 학문 세계에 발을 들이고자 하는데 현실은 전업으로 가르칠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며 “당장의 연구 여건과 생계 유지 등을 개선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과)도 대학원의 상황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진단한다. 이 교수는 “대학원생의 현실은 각양각색이다. 각자의 경험만으로 그것이 마치 전부인양 진단해서는 안 된다”며 “대학은 지성인들의 사회인만큼 교수·학생·대학 3자가 마음을 터놓고 서로의 입장을 고려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총평했다.

토론자들은 이번 토론회와 같은 대학원생과 교수의 소통이 앞으로도 계속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제기됐다. 전준하 대학원생은 “대학이 변화해야한다는 담론은 커졌는데 교수들의 응답이 별로 없다”며 교수들의 참여를 촉구했다. 대학원의 연구·교육기관으로서의 발전을 위해 교수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글·사진 문광호 기자 moonlit@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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