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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one door shuts, another opens”   
“When one door shuts, another opens”   
  • 노선업 성균관대 연구교수
  • 승인 2018.07.0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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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청탁을 받고 필자가 미래 학문후속세대에게 제언할 이야기를 주제로 생각하니 선뜻 글이 써지지 않았다. 이제껏 10년 넘는 연구자 생활을 이야기할 때 숙명같이 함께 가는 내 나이, 20대에서 30대로의 지극히 사적인 불안한 부분들을 접목하며 구구절절 말하는 건 싫었고, 그렇다고 학자, 과학도로서의 연구자 정신을 어쭙잖게 논하기도 싫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이와는 별개로 후속 동행자들에게 솔직한 “그냥 내 얘기”가 하나 있긴 했다.

내 어릴 적 장래희망에 “과학자”란 전혀 기억이 없다. 중학교 시절 신문반 활동을 하며 우연히 헤르만헤세의 “데미안”과 크로닌의 “성채”를 읽고 즐거웠던 나의 일상을 일렁이는 고뇌가 시작됐음은 뚜렷이 기억난다. 지금도 조금은 부끄럽지만 너무나 사실이다. 내게 문학에서 말하는 예술적 가치는 인간의 삶을 눈부시게 파괴하는 기막힌 자유를 알려주었지만, 늘 심적으로 불안정한 세계였다.

과학이라는 실체를 배우면 배울수록 허상과 실체에 유독 민감했던 그 시절 내 모습이 떠오른다. 고귀한 예술의 방어책으로써가 과학일까, 한갓 예술에 대한 혹독한 반문이야말로 진정성 있는 과학일까. 그렇게 뜬구름 잡기 꿈만 꾸면서 여차여차 끝에 고등학교 시절 이공계를 선택해 대학을 갔는데 그 과정은 헛헛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사실상 생존 게임이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면서 “이 전공을 살려 뭐 하고 먹고 살아야 하나?” 빠릿빠릿하게 있다 보니 연구실에 들어갔고 공부를 연장했다. 이렇게 우연찮게 시작한 “인간 질병 연구”는 습득한 기존 의과학 이론들을 증거 혹은 반증으로 활용하여 실험 기술을 통해 크든 작든 창조적 발상으로 스토리텔링을 구축하는 것이 주요 핵심이었다. 그래서 석,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직접 연구하고 실험하고 발생한 결과물들로 작지만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만들고 논문 발표하였다.

뭐든 일을 해내는 성취감이 감명이 없겠냐만은 그 중심은 필자가 어릴 적부터 오랜 시간 철없다고 치부했던 고뇌에 대한 보상이랄까? 나는 다만 당장의 현실을 헤쳐나가고 있었던 것인데, “연구”라는 업은 인간의 실체를 낱낱이 배우면서도 형태나 가치를 파괴하고 창조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고, 내가 좇는 꿈과 이상에 꽤 닮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늘 감사하지만 지도교수님께 고집 엄청 부리면서 할 말 다하다가 쫓겨날 뻔도 했는데 무사히 박사 졸업하였고, 나와서는 또 다시 삐걱거리면서 연구자 생활을 이어갔다. 이런 와중에 연구재단의 학문후속세대양성사업 리서치펠로우가 선정됐고, 덕분에 석, 박사 시절부터 쭉 이어간 하고 싶었던 연구스토리를 계속 한우물파기 할 수 있도록 서면화된 경제적 대안을 제공받았다. 자의든 타의든 수많은 요구가 얽힌 복잡한 일상 속에서 내 꿈과 이상이 결코 사치가 아닐 수 있게 심적 위안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When one door shuts, another opens.” 어찌 보면 개인적으론 행운 같은 일이기도 하다. “그냥 내 얘기” 지만, 과학도가 되려고 목표하며 살지 않았으나 이 길로 들어서서, 맞닥뜨린 현실 속에 치열하게 사는 중에도 내 꿈이 원하던 우아한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만큼 “과학자” 라는 직업은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과학자로 살아가려는 매력적인 학문후속세대들을 응원한다. 타고난 재능으로 처음부터 늘 과학도임에도 연일 경쟁하며 쏟아지는 서로 다른 정보에 자신감을 잃고 최신 동향에만 쉽게 흔들리거나, 임팩트 팩터가 더 큰 연구결과를 내지 못해 예민하게 속앓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각자 모두가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 니까 자부심과 고독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준비가 됐다면 예기치 않는 행운이 또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단연 확신한다. 

노선업 성균관대 연구교수.
가톨릭대에서 면역미생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MIF와 아토피 질환, 스테로이드 저항성, 당뇨 합병증과의 관련성 등으로 다수의 논문을 썼다. 현재 성균관대 연구교수로 당뇨에서 MIF가 신경인성 통증과 기억력장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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