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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8호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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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신문
  • 승인 2018.07.0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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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말말

인간 사유의 자극제로서의 꿀벌

꿀벌 군집이 처한 위기는 인간 조건의 두 가지 원형을 떠올려준다. 즉 인간의 유한성 그리고 무모함이다. 인간의 유한성이란 거대한 우주 안에 함몰된 필사의 존재로서 인간이 가진 취약성을 의미하고, 인간의 무모함은 이론과 실제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습성을 가리킨다. 양봉가가 하는 일은 철학자가 하는 일과 똑같이 이러한 두 가지 인간 조건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이에 아리스토텔레스와 로마의 농학자들은 벌집에서 중도와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이들의 조언은 오늘날의 양봉가가 하는 고민과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고대인들은 벌집 안의 공간 관리에 상당한 중요성을 부여했다. 가령 벌집을 약간만 과밀 상태로 만들면 꿀벌들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초봄에 다시 도약하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밀 상태로 지내는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봉군은 분봉을 감행한다. 바면 꿀벌 군집의 수가 적으면 제대로 된 채밀 작업이 이뤄지지 못하므로 이들의 규모를 더욱 키워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다고 너무 많은 수의 군집을 만들어버리면 이 또한 분봉을 유발한다. 기상 여건이 열악할 때에는 자연 앞에 마주한 인간의 무능함과 유한성이 확인되는데, 제아무리 군집 수를 유지하려 노력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양봉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양봉가는 자발적으로 자연에 순응한다. 정도를 넘어서면 인간은 자신의 전지적 능력에 대한 프로메테우스의 환상에 빠져들 것이고, 결국 자멸을 면치 못한다. 자연의 구속과 중용의 유지라는 두 개의 난관 사이에 놓인 인간은 나름의 방법을 모색하지만 그렇다고 난제들을 완벽하게 해결하지도, 이를 완전히 조화시키지도 못한다. 하지만 꿀벌은 우리에게 강함과 약함, 겸손함과 강력함 사이에서 실질적인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철학자도 자신은 그저 고민의 결과를 자연에 투사하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망각하면서 마음을 달래주는 이 묘한 물질인 꿀에서 양분을 얻고자 한다. 사실 꿀이라는 물질은 진득거리는 점성이 있지 않던가? 이렇게 진득거리는 꿀을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주고 지식과 질서, 사상, 취향 등을 서로 돈독하게 이어준다. 또한 꿀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지식, 지혜, 재치가 모두 ‘Sapere’(알다)라는 하나의 라틴어 어원을 갖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일깨워준다. 아마도 바로 그 점 때문에 꿀을 만들어내는 꿀벌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듯이 미래에도 영원히 인간의 사유에 굉장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프랑스아 타부아요 소르본대 교수와 피에르앙리 타부아요 전문양봉가 형제, 『꿀벌과 철학자』(배영란 옮김, 미래의 창, 2018.06) 중에서

 

새로 나온 책

국가·경계·질서 | 가브리엘 포페스쿠 지음 | 이영민, 이용균 외 옮김 | 푸른길 | 268쪽

경계 문제를 핵심적 탐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학문 연구는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경계라는 문제적 주제에 주목하는 협동적이고 다학문적인 노력으로 인해 경계 짓기의 과정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지식도 심도 깊게 축적돼 가고 있지만, 현대사회의 경계 변화와 관련된 특성과 그 방향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는 여전히 미흡한 가운데, 21세기 초 전개되는 경계문제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이해하기 위한 저서가 출간됐다. 이 책에서 경계는 국가를 구성하는 그저 단순한 구성요소를 넘어서, 오히려 수많은 사회적 과정 및 제도와 관련해 발전하고 있는 독특한 공간적 범주로 간주된다. 이 작업을 위해 저자는 인문지리학, 국제관계학, 사회학, 인류학, 역사학, 정치경제학, 안보학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학문적 통찰에 기대고, 공간적 관점에서 경계 만들기와 관련된 개념, 과정, 담론, 맥락 등을 탐구함으로써, 이론적 관점과 경험적 설명을 결합해 현대 글로벌 시대 지구촌의 각종 문제와 사건이 경계 문제와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지 논의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신좌파 | 다니엘 차베스, 세사르 로드리게스 가라비토, 패트릭 배럿 엮음 | 김은중 외 옮김 | 그린비 | 576쪽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대부분 국가는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 직면했다. 이런 정치지형의 변화에는 1950년대 과테말라의 하코보 아르벤스, 1970년대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1990년대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권 이후 쿠바를 제외한 어떤 나라도 스스로를 좌파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이 확인된다. 하지만 이후 정치권력을 장악한 세력들은 소수를 제외하고 스스로를 좌파, 중도좌파로 규정했고, 이는 라틴아메리타 대륙 전체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실제 진행되고 있는 대항헤게모니적 정치과정과 이에 대한 사회과학적 지식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간극을 확인하는 데서 출발했으며, ‘분홍빛 조류’라고 불리는 2004년에서 2008년까지의 (중도)좌파 정권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회운동이 대륙전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을 시도한 연구 결과물로 신좌파 출현의 기원, 특징, 딜레마와 미래 방향성에 대한 이론적 검토와 사례 연구를 제시한다. 

번역으로서의 동아시아 | 후나야마 도루 지음 | 이향철 옮김 | 푸른역사 | 388쪽

성경의 번역보다 방대한 규모로 장기간에 걸쳐 이뤄진 한역 불전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간다라어 등 인도어로 쓰인 원전을 고대중국의 문자나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즉, 한역 불전은 인도인과 중국인이 구축한 거대한 두 문명의 접촉과 융합의 소산인 셈이다. 이 책은 한역 불전의 특징에 흥미를 가진 일반 독자는 물론 불교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개설서 형식으로 펴냈다. 저자의 연구 논문을 전면적으로 고쳐 쓰고 해설을 덧붙인데다, 독자가 한역 불전 관련 저작을 접할 때 제일 먼저 부딪히는 문제인 경전 및 역경승의 이름 등 고유명사에 익숙해지는 것인데, 저자는 2장에서 후한에서 시작해 육조수당을 거쳐 북송에 이르는 약 900년간 활약한 주요 한역자의 이름과 번역된 경전, 논서의 특징을 번역 지역, 번역 내용의 변천, 융성기와 정체기의 기복과 아울러 입체적으로 개관해 한역 불전 이해의 바탕을 제공한다.  

자본 없는 자본주의 | 노너선 해서클, 스티언 웨스틀레이크 지음 | 조미현 옮김 | 김민주 감수 | 에코리브르 | 384쪽

이 책은 지난 40년 간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관찰된 투자 유형의 변화에 관한 것으로 투자, 기업, 정부라는 세 주체가 성장 둔화와 장기 불황, 불평등, 재정 및 공공 정책의 결정에 어떻게 상호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 실제 기업 사례와 거시경제적 데이터를 조합해 분석한다. 저자들이 도달한 여섯 개의 논점은, 유형에서 무형투자로서의 장기적 전환이 계속 진행중이라는 점, 그 전환의 대부분은 기업과 국가 회계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무형 투자가 구축하는 무형의 지식 기반 자산들은 유형 자산과는 다른 특성(확장 가능, 매몰 비용 발생 가능)을 갖는 다는 점, 이런 특성이 장기불황, 불평등, 인프라의 요구 등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 그로 인한 전환이 경영과 금융 투자에 영향을 미쳐 무형자산을 사용하는 기업은 더욱 권위적이 된 다는 점, 마지막으로 이 전환으로 인해 공공 정책의 의제가 변화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저자들은 현기증 날 정도로 다양한 정책의 선택에 직면한 국가들에게 무형 투자의 장기적 증가에 따른 전략을 추천한다.

프랑스혁명사 | 알베르 소불 지음 | 최갑수 옮김 | 교양인 | 812쪽

혁명사 연구에서 이 책은 두 가지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는데, 첫째로 이 책은 프랑스혁명에 대한 ‘자코뱅 해석’의 전통을 대표하는 최후의 종합적인 개설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올라르, 마티에, 르페브르 등이 집필한 개설서류와 같은 수준의 현대 고전에 속하며, 더 거슬러 올라가 19세기의 미슐레나 토크빌의 저작들과도 비견할 수 있다. 둘째로 저자는 선배들의 학문적 성과를 종합하고 그 기반 위에서 자신의 학문적 기여를 덧붙이고 있는데, 그 결과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을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거시적 전망 속에서 부르주아지라는 새로운 사회세력이 농촌의 농민층과 도시의 민중층의 지원과 견제를 받으면서 어떻게 혁명을 통해 근대 사회와 근대 국가를 빚어냈는지를 웅대한 규모로 비할 데 없이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1984년에 초역된 책에서 오역을 바로 잡고, 저자가 손을 댄 부분과 저자 사망 한 해 전에 발표된 논문 두 편을 수록한 개정판이다. 

피싱 |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 568쪽

물고기는 한때 죽음을 상징하는 이교도적 성격을 가졌으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및 고난을 의미하는 식사 메뉴가 됐다. 2천년 동안 금요일 육식을 금한 가톨릭교 덕분에 바닷물고기(청어, 대구)의 수요가 한없이 증가하면서 노르웨이, 발트 제국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역에 걸쳐 염장한 청어와 대구의 교역이 싹텄고, 15세기에는 북해 어부들이 아이슬란드 남부까지 나가서 대구를 잡았다. 18세기까지 중세 수준에 머물렀던 대구잡이 기술이 19세기 들어 저인망 어선, 증기기관선의 출현으로 어업위기가 초래됐고, 이는 해양과 기후 분야에서 문명에 존립의 위협을 드리우는 환경 재앙으로까지 번져갔다. 이 책은 고고학과 역사부터 고기잡이 전략, 고기잡이용 덫, 연체류 채집 같은 신비한 세계까지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다소 비학문적 분야를 두루두루 바탕으로 삼았다. 저자는 이런 자료를 재료로 삼아 복잡하게 뒤얽힌 낚시 역사에 얽힌 역사의 퍼즐 조각을 짜맞추려고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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