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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ula Rasa!’ … “인재 키우고 상상력의 토대 만드는 게 대학출판”
‘Tabula Rasa!’ … “인재 키우고 상상력의 토대 만드는 게 대학출판”
  • 교수신문
  • 승인 2018.07.0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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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의 산실, 대학출판부를 가다_ 5.계명대출판부

지난달 7일(목) 계명대 성서캠퍼스에서 눈에 띄는 행사가 열렸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가량 진행된 제3회 계명인문융합포럼이었다. 포럼 주제는 ‘4차 산업혁명시대, 선비정신이 대안’이며, 계명대가 주최하고 계명인문역량강화사업단이 주관한 것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꼭 필요한 인문학적 상상력과 소양의 중요성을 대학뿐만 아니라 기관, 단체, 업계 및 시민 등 지역의 각계각층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였다. 인문학으로 제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겠다는 발상이다. 

포럼 주제 강연에 나선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은 “앞으로는 100세 이상의 장수시대가 찾아오고, 평생직장의 개념도 사라질 것이다. 또,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간 대 인간의 경쟁이 아니라, 인간 대 인공지능이 경쟁에 돌입할 것이다” 라며, “인공지능 로봇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치 창조에 중점을 둬야하며, 인간의 생각과 문화를 다루는 인문학의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博學(먼저 넓게 읽고 듣고 쓰고 배움), 審問(의문이 나거나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반드시 질의응답을 구함), 愼思(답변을 듣고 신중하게 생각), 明辯(생각을 토대로 명확하게 판단), 篤行(판단한 것을 독실하게 실천) 등 선비의 5단계 공부 방법을 통해 창의성과 융합능력을 키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처럼 출판부에 함께 자리한 출판부 구성원들. 왼쪽부터 박재희, 안영준, 김인순(출판팀장), 최상근(출판실무 담당). 
모처럼 출판부에 함께 자리한 출판부 구성원들. 왼쪽부터 박재희, 안영준, 김인순(출판팀장), 최상근(출판실무 담당). 

계명대의 ‘인문학으로 4차 산업혁명 선도하기’ 전략은 이 대학 출판부의 발걸음을 들여다보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69년 출범, 현재까지 약 850여 종을 발간한 계명대출판부(출판부장 서경석(스페인어중남미학)은 연간 7만 5천여 부(40여 종의 신간과 40여 종의 추쇄)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2014년에는 출판부 패밀리브랜드 ‘빛을여는책방’을 등록하고 출간을 시작했다. 2013년 독립회계에서 교비회계로 전환, 대학 본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이들의 핵심 출판 분야는 인문학과 한국학으로, 특히 한국학연구총서, 계명교양총서, 계명인성교육총서, 목요철학총서, 예술학총서, 낙중학총서, 고문헌총서 등 ‘총서’ 발간에서 주요한 성과를 축적하고 있다. 서경석 출판부장을 비롯해 김인순 출판팀장(출판행정 총괄), 최상근(기획 및 출판실무 전담), 박재희(서무행정·회계 및 저작권업무 담당), 안영준(교정교열 및 편집업무 담당)이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출판경력 8년차인 최상근 씨는 붙박이로 출판실무를 전담하고 있다. 

여느 대학출판부도 그렇지만, 계명대출판부는 대학본부 측과 좀 더 밀접하다. 방대한 ‘총서’ 시리즈는 본부 측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출판사업이다. 최상근 출판실무 담당자는 “신일희 총장님의 출판부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 때문이라 생각한다. 출판은 대학에 있어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부서다. 대학은 학문의 재생산을 끊임없이 이어가야 하는 곳이기에 그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는 출판부가 제 구실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요 연구소들의 연구성과를 제대로 출판에 담아내는 작업이 중요하다. 대학본부 측이 이런 점을 인식해 전폭 지원한다는 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학연구총서 등 ‘총서’에 강하다특히 계명대출판부가 자신 있게 내세우는 ‘한국학연구총서’는 1970년 설립된 계명대 한국학연구원과 연결돼 있는데,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계명대 한국학연구원은 한국학 분야에 대한 학술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학술지인 <한국학논집>(연 4회), 국제학술지인 <Acta Koreana>(연 2회)를 출판하고 있다. 한국학연구원과 출판부는 기획학술대회의 우수한 연구 성과물을 총서로 개발했고, 1973년 제1권(『국어 원형 보문법 연구』, 남기심 지음)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47권의 총서를 출판했으며, 현재 총서 48번인 『조선 말의 낙중학, 한주 이진상의 삶과 사상』을 준비하고 있다.

계명대출판부의 ‘한국학연구총서’는 작게는 계명대의 지적 유산이지만, 확대하면 한국 지성사회와 대학 전체의 성과라고 의미를 매길 수 있다. ‘한국학연구총서’는 “한국학 연구를 새롭게 정립하고 나아가 인류의 정신문화에 기여를 목적으로 출간된 것”으로,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는 한국학 연구에 대한 학술성과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론화하고 실천방안을 모색함으로써, 학문적 성과를 공유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는 평가가 따르고 있다.  

교양과목을 전담하는 ‘Tabula Rasa(우리가 얼굴을 가질 때까지) College’와 출판부 간의 협업도 대내외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신입생 교양교재를 꾸준히 개발하고 이를 적극 활용해 수업의 질적 향상에 힘쓰고 있는 상호 피드백 시스템이 눈길을 끈다. 이외에도 학생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학기에는 타불라 라사 글쓰기 대회를 열고, 2학기에는 교양도서 독후감 경시대회를 전액 후원해 대학 안에 책 읽는 문화를 조성하는 한편 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 고취에도 직접 앞장서고 있다. 또한 출판부를 통해 출간한 직전연도 신간도서를 대상으로 ‘계명대학교 출판문화상’을 제정?운영해 저자들의 연구의욕을 고취하고, 교수들의 학술적 성과를 널리 선양하여 저술활동을 장려하는 것도 놓칠 수 없다. 올해 5월 제13회 ‘계명대학교 출판문화상’ 시상식이 열렸으니, 계명대의 두터운 출판문화가 하루아침에 축적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계명대출판부의 차별성은 무엇일까. 최상근 출판실무 담당자는 ‘대학 교육환경의 변화에 대한 능동적인 대처와 학습자의 학습환경 변화에 발맞춘 교양교재의 지속적인 개발’을 강조한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최근 대두되고 있는 인성교육의 일환으로 ‘대학생을 위한 글로벌 시티즌십’ 교재를 개발해 활용하고 있으며, 글쓰기 능력 향상 및 인문학 소양함양을 위해 계명교양총서를 꾸준히 개발해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그 밖에도 학내 다른 부서와의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기획총서를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으며, 특히 4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학연구총서’를 꾸준히 출간하고 있는 것이 강점이다”고 강조했다.

연간 40여 종의 신간을 내놓는 출판부다보니 출간목록 갱신과 함께 저자관리법도 있을 법하지만, 뾰족한 ‘노하우’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엿보인다. 매년 저자들을 대상으로 ‘출판만족도 설문조사’를 실시해 출판부 스스로가 잘하고 있는지, 개선점은 없는지 늘 점검하고 있다. ‘자기점검’이 새로운 기획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란 설명이다. 출판신청은 연 4회(3, 6, 9, 12월) 신청접수를 받아 출판위원회 심의를 거쳐 선정하고 있으며, 교내 교수라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고(명예교수, 시간강사까지 포함), 학내 교수진이 아니더라도 전공별 권위자라면 누구든 신청이 가능하다. 

최상근 출판실무 담당자는 “지난겨울, 『정체성 정치에서 아고니즘 정치로』(조주현 지음)에 저자와 함께 미친 듯이 매진했다”고 귀띔했다. “이 책은 전문학술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들과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문의가 이어졌고 현재 판매도 잘 이뤄지고 있다. 저자가 자신의 30여 년간의 여성학 분야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것인데, 매우 전문적인 학술서로서 독자들의 반응이 사뭇 궁금했다. 우수한 학술서 출간은 대학출판부의 사명이라는 생각 아래 최선을 다해 멋진 책으로 만들어냈는데, 출판 이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한 그 시기, 제작한 한 권의 책이 더 있다. 바로 계명대 인문역량강화사업단 한국학우수총서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출간된 『미술의 눈으로 한국을 보다』(신채기 지음)이다. 이 책은 미술 속에 나타난 한국적 정체성이 어떤 내용으로 표출됐는지, 또 시대별로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본 전문 학술저서다. “책을 기획하고 편집회의를 수차례 거치면서 도판에서부터 내용구성, 편집과 디자인까지 저자와의 교감이 그 어느 때보다 긴밀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만큼 공을 많이 쏟은 책이었는데 이번 2018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는 영광까지 얻게 됐다”고 최상근 출판실무 담당자는 말한다.

반면, 2015년에 출간한 『하이데거 철학 삐딱하게 읽기』(이재성 지음)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이 책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대한 기존의 ‘존재론적’ 해석에 머물지 않고 ‘정치철학적’ 해석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고자 한 것으로 하이데거의 철학을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한 노작이다. 최상근 출판실무 담당자는 “저자와 출판부가 투입한 노력에 비해 많은 독자들에게 선택되지 못해 많이 아쉬웠고 앞으로 대학 출판부가 독자와의 만남을 지속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 생각하는 계기가 된 책”이라고 말한다. 

계명대출판부에는 지난해 10월 좋은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 최상근 출판실무 담당자가 제31회 책의 날 기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한 것이다. 다른 대학출판부 관계자들도 함께 그의 수상을 기뻐했다. 경력 8년차의 중견인 그의 수상은 ‘계명대출판부’의 수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실 계명대출판부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약 3년 동안에 출판부의 모든 시스템과 관리 프로세스가 완전히 뒤바뀌는 대변혁이 있었다. 최상근 출판실무 담당자는 이 시기를 “직원에서부터 거래처 관리, 재고 및 판매관리, 기획출판과정 및 시스템 그리고 도서 편집 및 디자인까지 모든 부분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시기”라고 말한다. 당시 교내 타 부서 행정팀에서 각각 근무하고 있던 최상근 씨와 박재희 씨가 ‘출판에 관해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인사발령을 받아 출판팀에 오게 됐다. “하나부터 열까지 배워가며 새로운 모습의 출판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주요 대학 출판부를 빠짐없이 찾아가 벤치마킹했고 한국대학출판협회 관계자, 출판기획자, 인쇄업체, 서점 및 유통사 등 출판 전 분야의 종사자들을 만나 낮은 자세로 배우고 또 배웠다. 지금의 우리 출판부가 있기까지 그분들의 가르침이 가장 큰 스승이었다.” 

50년의 세월을 넘어 다시 100년을 향해

“저자와 함께 웃고 저자와 함께 책을 놓고 깊이 토론하는 시간이 가장 소중하고 보람차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출판부 사무실이 학교 모든 구성원들이 사랑하는 책 이야기가 넘치는 사랑방이 되는 것이 내 작은 소망이다”라고 말하는 최상근 출판실무 담당자는 “출판은 결코 사양산업이 아니다. 더군다나 대학출판부는 그 길이 참으로 무궁무진하다”고 확신한다.  “대학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이곳에 속한 연구자와의 끊임없는 교감을 통해 새로운 출판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 대학출판부의 가능성은 여기에 있다. 교수이자 연구자인 그들의 머릿속에만 머물러 있는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출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역할을 대학출판부는 성실히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독자와 공감할 수 없는 저자만의 텍스트, 안이한 편집은 출판을 사양산업으로 이끄는 길잡이가 될 뿐이다.”

계명대는 2019년인 내년 창립 120주년을 맞는다. 출판부도 설립 50주년에 발을 딛게 된다. 다들 미래 전략을 모색하고 장기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계명대출판부는 어떤 구상을 갖고 있을까.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대학출판부는 대학의 설립정신과 정체성을 바로 알아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얼굴을 가질 때까지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Tabula Rasa(우리가 얼굴을 가질 때까지)’ 이 한마디에 계명대의 모든 교육이념과 가치가 녹아 있다. 대학출판부도 마찬가지다. 학술서와 교재 그리고 일반교양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을 출판하는 것만으로는 책무를 다한 것이 아니기에 끊임없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출판은 이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는 일이고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해 줄 상상력의 토대를 만드는 거푸집을 짜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까지의 50년의 세월을 넘어 100년, 200년의 여정을 여전히 지금도 걸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미래전략이고 변치 않는 출판 본연의 모습이다.”

출판취재팀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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