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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末 전도된 굿즈 마케팅 
本末 전도된 굿즈 마케팅 
  •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 승인 2018.07.02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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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캘린더, 에코백, 쿨러백, 스마트폰 케이스, 북커버, 머그컵, 북큐션, 북엔드, 책베개, 파우치, 텀블러, 연필, 독서대, 책갈피, 독서 쿠션…. 이 물건들의 공통점은 책과 관련된 굿즈(goods)라는 점이다. 굿즈는 특정 콘텐츠나 캐릭터, 인기 스타 등을 지지하는 팬들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파생 제품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해리포터』 책을 읽은 독자나 영화를 본 관람객이라면 ‘해리포터’의 이미지나 소설 문구를 활용한 제품을 구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 마디로 팬덤 문화를 활용한 판매 마케팅 수단이다. 근래 우리나라 단행본 출판계에서는 책의 표지나 제목, 일러스트를 이용한 각종 굿즈가 넘쳐나면서 과열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굿즈의 형태에는 일반적으로 인터넷서점에서 출판사와의 마케팅 협업을 통해 특정 도서 또는 그 도서를 포함해 5만원 이상 구매자에게 제공하는 증정용 굿즈가 있는가 하면, 책 판매와 연계시키지 않고 독립적으로 매매하는 판매용 굿즈로 대별된다. 국내 출판시장에서 굿즈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도입해 확산시킨 주역인 알라딘은 인터넷서점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의 중고서점 매장에서 굿즈 코너를 운영하는데, 그 매출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에는 책 관련 상품 정도로 취급되던 굿즈가 출판 마케팅의 대세로 자리 잡은 계기는 2014년 11월부터 강화된 도서정가제의 영향이 꼽힌다. 가격 할인과 마일리지 적립을 포함해 15%까지만 할인이 가능한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따라 이전보다 할인율이 줄어들면서, 이를 대체할 새로운 마케팅 수단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또한 발행 종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책의 판매량이 감소하면서 ‘발견성’(독자의 눈에 뜨일 가능성) 리스크가 점차 커지면서 독자의 눈길을 잡아끌 수단이 필요해진 측면도 있다. 실제로 국내 출판에서 굿즈는 시장에서 일정한 활력소 역할을 한 것처럼 평가되고 있다. 책과 연관된 요소를 굿즈의 기획에 반영함으로써, 신간이 발행됐을 때 예비 구매자들이 책에 주목하도록 하는 효과가 크다는 의견도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굿즈를 얻기 위해 책을 사는 사례도 있다. 마치 탐나는 잡지 부록이나 경품을 얻기 위해 해당 잡지를 구입하던 현상과 유사하다. ‘책을 샀더니 굿즈도 주더라’라 아니라, 굿즈 때문에 책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양상이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조사해 보았더니, 책을 구매한 사람 중 12%는 ‘굿즈가 마음에 들어서’를 구매 이유로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굿즈가 마케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출판사 에디터나 마케터들은 신간의 굿즈를 어떻게 만들까 하는 것이 어려운 고민 중 하나가 됐다. 이 정도가 되면 출판사인지 굿즈사인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오프라인 서점은 배제하고 특정 인터넷서점 위주로 제한적인 굿즈 마케팅이 시행되는 것도 문제다. 

물론 모든 서점과 출판사가 굿즈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서점은 규모가 큰 대형 인터넷서점에서, 출판사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있는 대중서 발행 출판사를 중심으로 굿즈 마케팅에 열중한다. 책이 잘  안 팔려서 관련 상품이라도 판매하는 것을 이상하게 볼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대형 오프라인 서점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앞뒤 가리지 않고 매출 보전만 앞세우는 전략은 갈수록 출판의 미래를 협애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대형 서점들은 도서 매출의 하락을 문구나 팬시용품에서 보전하려고 서가 매대는 대폭 줄이고, 책이 아닌 일반 상품 매대는 늘려 왔다. 진열하는 책이 줄어든 만큼, 많은 책을 진열했던 대형 서점의 이점은 많이 사라졌다. 팬시용품점과 카페 기능을 강화한들 전문 용품점이나 전문 카페를 당해낼 수도 없다. 서점으로서의 역할과 입지를 스스로 좁히는 자충수다.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출판사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전문적인 콘텐츠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하고 마케팅을 진화시킴으로써 발전이 가능하다. 출판사가 콘텐츠 매출이 아닌 비콘텐츠 매출로, 콘텐츠의 매력에 대한 창의적 소구가 아닌 경품 마케팅 방식에 의존하는 것은 할인 상법과 다름없는 퇴행일 뿐이다. 싸거나 할인한다고 해서 책이 팔리던 시대는 끝났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독자에게 가치가 있는 책이라면 여전히 팔린다. 문제가 되는 것은 기획력과 창발적 마케팅의 한계다. 경품이나 굿즈가 아니면 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시장의 誤讀은 콘텐츠 비즈니스의 본령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일본에서는 안 팔리는 사전을 팔기 위해 어학사전 케이스나 표지에 인기 프로 야구 팀의 마크나 인기 캐릭터를 이용하는 팬덤 전략을 쓰기도 한다(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기획회의> 2018.6.5., 「이유 있는 베스트셀러 열전」 참조). 열성적인 팬들은 당장 필요하지 않은 사전을 구입한다. 책을 팔기 위해 굿즈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굿즈처럼 판매하는 기발한 방법이다. 굿즈 경쟁이 아닌 굿 아이디어 경쟁이 필요하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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