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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의 과학성에 대한 의심
정신의학의 과학성에 대한 의심
  • 최성호 경희대·철학과
  • 승인 2018.07.02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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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폴리스 13_ 사모님을 위한 심리철학: 악용되는 정신질환

환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신의학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정신의학자들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DSM의 역사는

정신의학이 성숙한 과학이라고 부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한진 일가의 갑질이 국민적 공분이 일으키고 있는 요즘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 씨가 자신은 처벌이 필요한 죄인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고 주장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이명희는 구속영장심사를 앞두고 자신이 분노조절장애 환자라는 정신과 진단서를 법원에 제출했는데, 일각에서는 이명희가 그 진단서 덕분에 구속을 면했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명희가 분노조절장애 환자라는 진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게 들린다. 특히 이명희가 직원들 앞에서는 막말과 폭행을 일삼았지만 높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항상 격조 높은 모습 보여 왔다는 전 수행기사의 증언이 알려지면서 그런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리는 듯하다. 

2014년 김수창 당시 제주지검장은 제주의 한 여고 앞에서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며 음란 행위를 하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검찰 최고위 인사의 음란 행위라는 자극적 뉴스는 사건 초기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어떻게 종결됐는지 보면 허탈하기 짝이 없다. 검찰은 김수창을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하여 검찰이 내놓은 이유가 가관인데, 김수창이 성선호성장애라는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더 기막힌 일은 그 후에 벌어졌다. 김수창이 검찰로부터 기소유예 판정을 받은 것이 2014년 11월 말인데, 그로부터 약 10개월 후 김수창은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변호사 등록을 신청한다. 어이없게도 그 때 첨부된 서류 중 하나가 김수창의 성선호성장애가 완치됐다는 정신과 의사의 확인서이다. 그 확인서 덕분에 김수창은 변호사 등록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현재는 서울에서 개업해 남부럽지 않은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명희나 김수창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는 정신의학이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에게 도깨비 방망이 다름 아니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앞으로 ‘뇌물수수조절장애’, ‘인사청탁선호성장’”와 같은 병명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을 듯하다. 사실 사법부의 법망을 빠져나가기에 이렇게 훌륭한 도깨비 방망이도 없을 듯싶다. 정신질환의 진단과 치료를 담당하는 정신의학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과학의 권위를 갖기 때문이다. 과학의 권위를 갖기에 법정에서 정신과 의사들의 진단서나 소견서는 무시 못 할 영향력을 갖는다. 전관변호사를 쓸 때보다 효과도 확실하고 또 여론으로부터 도덕적 비난을 받을 필요도 없다. 정신과 전문의가 과학의 이름으로 진단서나 소견서를 작성하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이명희나 김수창에 대한 정신과 진단에 의심의 눈길를 거두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대놓고 비판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정신의학의 과학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발간하는 <DSM>(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은 정신의학의 바이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DSM>은 임상 정신의학자들에게 정신질환의 분류, 정신질환에 대한 진단 기준, 정신질환에 대한 약물 반응 등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백과사전으로 여겨지고 있다. 1952년 DSM-I이 발간된 이래로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는데, 가장 최신 버전은 2013년도에 발간된 DSM-V이다. 그런데 이 DSM의 역사가 흥미롭다. 현대 정신의학이 처한 난맥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DSM의 역사는 로버트 스피처(Robert Spitzer) 콜럼비아대 교수(정신의학과)의 주도하에 1980년 발표된 DSM-III 이전과 이후로 크게 나뉜다. 1980년 이전의 DSM, 그러니까 DSM-I과 DSM-II는 기본적으로 20세기 초부터 정신의학계를 지배하던 프로이드 정신 분석학 류의 역동정신의학적(psycho-dynamic) 관점을 채택했다. 그 관점에서 정신질환의 진단과 치료는 인간의 심리에 내재하는 다양한 욕망이나 감정 사이의 연관관계,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작용, 유년기의 경험 그리고 그에 대한 기억, 성적 충동과 그에 대한 억압 등에 관한 심층적, 이론적 분석을 통해서 이뤄졌다. 그렇다 보니 역동정신의학적 관점에서는 소위 신뢰성의 문제(the problem of reliability)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정신질환에 대한 진단이 표준화되거나 규격화된 기준에 의해 이뤄지기보단 환자들 개개인의 개인사, 성장배경, 인간관계, 사회경제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정신 분석 이론을 통해 이뤄지다 보니 분석가의 이론적 관점과 해석에 따라서 동일한 환자가 완전히 다른 진단을 받기 일쑤였던 것이다. 같은 환자를 두고 의사들마다 다른 진단을 내놓았고 그것은 질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의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DSM-II에 대하여 이런 신뢰성의 문제를 가장 강력하게 제기한 이가 바로 로버트 스피처 교수인데, 그는 이후 DSM-III를 제작하기 위하여 미국정신의학회가 설치한 TF의 위원장을 맡으면서 DSM의 혁명적 변화를 지휘했다.

정신질환 진단의 신뢰성 개선 방법

DSM-III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스피처 교수는 정신질환에 대한 진단의 신뢰성을 개선하는 것에 가장 큰 방점을 두었다. 동일한 환자에 대해 의사들이 저마다 서로 제각각인 진단을 내리는 상황은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정신과 의사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조작적(operational) 개념과 방법을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진단 기준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했다. 그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바로 증상(symptom) 중심의 진단 기준이다. DSM-III에 따르면 정신과 의사는 현재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증상만을 관찰하고 그에 근거하여 환자가 특정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지 여부를 판정한다. 우울증의 경우 의사들은 요즘 우울한 기분이 얼마나 자주 드는지, 요즘 얼마나 자주 우는지, 집중력 감퇴를 경험하는지 등과 같은 증상에 대한 질문을 환자에게 묻고, 그에 대하여 충분히 많은 긍정적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 우울증 진단이 내려진다. 

DSM-III는 정신질환의 진단에서 고질적으로 나타나던 신뢰성의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그럼에도 정신질환의 신뢰성은 여전히 신체질환의 신뢰성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다). 정신과 의사들은 더 이상 환자들의 유년기에 대한 기억이나 성장배경을 경청할 필요도, 그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이나 인간관계를 꼼꼼히 체크할 필요도 없게 됐다. 정신과적 진단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현재 환자가 겪고 있는 증상뿐이고, 그런 증상에 관해서는 정신과 의사들 사이에 의견 불일치가 크지 않았다. 진단의 신뢰성이 향상됐다는 말이다. 이처럼 스피처는 DSM-III를 만들면서 정신질환에 대한 진단의 기준을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증상 위주로 재정립했고, 이런 기조는 가장 최근의 버전인 DSM-V로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스피처의 의도대로 DSM-III 이후의 진단 기준에서 신뢰성의 문제는 획기적으로 개선됐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진단의 정확성 혹은 타당성이 현격히 떨어진다는 문제(the problem of validity)가 새롭게 정신의학자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우울증 환자가 아닌 사람을 우울증 환자로 잘못 진단하거나 우울증 환자를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고 잘못 진단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말이다. 신뢰성을 높이기 위하여 정신과 의사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조작적 기준에만 집착하다 보니 진단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게임중독자와 임요한 같은 프로게이머를 비교해 보자. 분명 한 사람은 정신병 환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데, 단순 증상만으로 그 둘을 구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둘 모두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컴퓨터 게임으로 보내고, 둘 모두 게임을 하고픈 충동을 거부하지 못하며, 둘 모두 게임을 하지 않을 때 불안감을 느낀다. 그 둘을 구분하기 위해선 그들의 심리에 대한 좀 더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요소들을 진단의 기준에 포함시켜야 하지만 이는 진단의 신뢰성을 일정 부분 포기할 때에나 가능하다. 

과분한 인식적 권위가 부여된 정신과 의사들

우리는 아직 마음과 두뇌의 작용에 대하여 너무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 그에 대한 본격적 연구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정신질환 환자들의 고통에 대하여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환자들이 있기에 그들을 진단하고 치료할 정신의학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정신의학자들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DSM의 역사는 정신의학이 성숙한 과학이라고 부르기엔 턱없이 부족한, 아직은 진단에 있어서 최소한의 타당성조차 확보하지 못한 주먹구구 수준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다. 

나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과분한 인식적 권위를 정신과 의사들에게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의학 일반의 권위를 부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정신의학과 달리 신체질환을 다루는 상당수의 의학 분야들은 과학적 권위를 갖기에 부족함이 없다. 인간이 최초로 인간 자신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시작한 이래 의학의 다양한 분야들은 불균등한 발전을 성취했다. 그리고 그 의학분야 중에서 가장 발전이 더딘 분야가 바로 정신의학이라 하겠다. 

이명희나 김수창의 사례는 과학적 정확성이나 타당성을 결여한 정신의학의 현실과 우리 사회가 정신의학에 부여하는 과도한 인식적 권위 사이의 괴리가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정신의학에 그에 합당한 수준 이상의 권위를 부여하는 한 이런 악용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제2, 제3의 이명희와 김수창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서나 소견서에 대한 건강한 회의주의가 요청되는 대목이다. 

최성호 경희대·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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