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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대화방식
그들의 대화방식
  • 조병준 인하대
  • 승인 2003.06.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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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교수님 안녕하세요^^ 오프라인에서 배울 때보다~ 얻을 수 있는 장점들을 살려~ 열씨미~ 한 학기동안~ 배워보겠습니다!! 우리 모두우~ 열심히 해요^^*!@”

정상적인 문장부호 대신에 각종 기호들을 마구 사용하고 있는 이 글은 OCU(Open Cyber University)에 개설한 내 강좌의 게시판에 한 수강생이 올린 것이다. 대학생의 글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어설프고 미숙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학교 강의실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학생들의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활달하고 적극적이다. 게다가 가끔 “이번 주에 교수님께서 올려주신 강의노트 넘 맘에 듬니당^^ 하하하~ 더욱 잼난 섭이 됐음 조케써욤^^*”이라는 칭찬을 보게 되면, 이들의 기괴한(?) 어법과 표현에 당혹하기보다는 기분이 먼저 좋아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이런 기분 좋은 글만 올라오는 것은 아니다. “교수님 급합니다. 저겨..이번 중간고사 날짜를 깜빡한 사람인데여.. 레포트로 구제해주시면 안돼나여??” 정중하지 못한 말투며 내용이 도무지 잘못을 저질러 놓고 용서를 비는 학생의 태도로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학생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데 있다.

OCU에서 '그리스신화의 분석'이란 강의를 시작한지가 벌써 3년! 나도 이제는 이 개성강한 N세대의 튀는 인사와 버르장머리 없는 말투에 꽤나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처음 사이버 강좌를 시작했을 때, 나는 이 온라인 강좌에 대해서 심각하게 회의를 느낀 적이 있다. 학생들과 얼굴도 마주 대하지 않은 채 지식이나 전달하는 이런 행위를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일반 대학에 재학 중이면서도 굳이 선생님과 얼굴을 대하지 않는 사이버 강좌를 선택한 이 학생들의 저의(?)가 혹시 보다 손쉽게 학점이나 취득하지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서 내 스스로가 명쾌한 입장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학교의 불어불문학 전공학생들도 상당수가 OCU강의를 수강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개별적으로 불러서 왜 OCU 강좌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물어봤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강시간의 자유로움과 타대학 교수님들이나 학생들과의 폭넓은 접촉, 그리고 사이버 대화에 익숙한 자신들의 성향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학점취득의 용이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답변이 많았다. 어차피 상대평가제인데다 다른 대학 학생들과의 경쟁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끝으로 게시판에 간혹 올라오는 불손한 표현방식에 대해서 그들의 견해를 물어봤다. 그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의 확인을 통하여 나는 온라인 강좌가 지니는 폐단이 점차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왜냐하면 어떤 집단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구성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다면 반드시 해결방안을 찾게 된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교육은 가르치는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교수자와 학습자 사이의 대화를 통해서 이뤄진다. 그래서 선생님과 학생간의 대화는 어떤 형태를 통해서든 자주 이뤄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인터넷 세대가 얼굴을 마주 대한 대화에 익숙하지 않다면, 우리가 그들의 대화방식을 택해보자. 요즈음 나는 거의 매일 저녁 사이버 공간에서 얼굴 없는 학생들과 문자로 대화를 나눈다. 그들에게 나는 기성세대의 생각과 말을 가르치고, 그들로부터 나는 N세대의 사고방식과 언어를 배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끔은 그들의 언어를 써가면서 말이다^-^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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