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後竹筍
雨後竹筍
  • 박순진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8.06.25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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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

비 온 뒤에 대나무 순이 자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도회지에 살면 대나무 순이 올라오는 모습을 볼 일은 좀처럼 드문데, 그 모습을 직접 보면 참으로 놀랍다. 밤사이 내리던 세찬 비가 그친 햇볕 좋은 아침에 대나무 순이 불쑥 올라온 장면을 보면 어린 시절 한자를 익히면서 알게 된 우후죽순이란 사자성어의 맹렬함을 떠올리게 된다. 하루 이틀 사이 훌쩍 자라는 그 모습도 대단하거니와 온 사방에서 불쑥불쑥 돋아나는 기세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무리 지어 쭉 뻗어나는 그 형세를 보면 알 수 없는 감흥이 일어나곤 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의 교수 연구동 앞에 조성된 정원 한편에 대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다. 수년 전 정원 한구석에 대나무 몇 그루를 심은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뜬금없이 대나무를 정원수로 심어두고 보는 것이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식되어온 대나무가 제대로 자리 잡고 잘 살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했더랬다. 걱정과는 달리 대나무는 오래되지 않아 굳건하게 뿌리 내리고 제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오히려 너무 무성하게 자라서 해가 갈수록 그 영역을 눈에 띄게 확장해나가고 있어 매번 전지하면서 모양 나게 가꾸려고 애쓰는 조경부서의 애로가 여간 아니겠다 싶을 정도다.

올해에도 정원의 대나무는 초여름 어느 날 예의 그 장관을 한바탕 시연했다. 가히 우후죽순이라 할 만했다. 대나무는 모든 식물의 잎이 떨어진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해 사군자의 하나로 불려왔는데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초여름의 맹렬한 기세야말로 오히려 대나무의 진면목이라 할 만하다. 약속이나 한 듯이 수많은 죽순이 일시에 여기저기 돋아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오랜 시간에 걸쳐 땅속에서 에너지를 축적했다가 한꺼번에 엄청난 양의 물질을 내뿜어 훌쩍 큰 새순을 만드는 재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를 되풀이하면서 매번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대나무의 이런 기세를 보고자 하는 것이리라. 그 기대는 한편으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 대해 갖는 것이면서 동시에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선택한 스스로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을 볼 때는 우리 대학에 잘 적응하고 좋은 교육을 받기를 희망하고 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맞이하는 학생에게는 꾸준하게 노력하여 학업에서 좋은 성취가 있기를 기대한다. 교단에 서는 스스로에 대해서도 묵묵하게 연구실을 지키면서 꾸준하게 발전하고 있는지 되묻곤 한다.

하지만 대나무의 이런 기세를 작금의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기대하기는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대학의 생존이 절실한 화두가 되고 너나 할 것 없이 축소 지향의 구조조정을 말하고 있다. 종래의 학문 분류에 의문이 제기되고 사회적 수요가 적다는 이유로 특정 학과의 존재가치가 대학에서 통째로 부인당하기도 한다. 미래를 준비하는 대학의 역할을 화두로 창의와 융합을 말하면서 교육과정이 거듭하여 되풀이 혁신되고 있다. 대학의 변화는 구성원들에게 종래의 익숙한 것으로부터 끊임없이 변화할 것을 요구한다.

작금의 우리나라 대학에 소속된 구성원이 직면한 처지는 낯선 토양에 이식되는 정원의 대나무의 상황과 매한가지다. 구조조정과 교육혁신의 이름으로 전통의 학과 체계와 교육과정이 흔들리고 있다. 교수법과 학습법이 강조되면서 끝도 없이 새로운 방식이 연이어 시도되곤 한다. 더 많은 양의 질 높은 연구실적을 요구하면서도 연구지원은 강화되기보다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되고 있다. 조교와 연구원으로 대별되는 대학원생은 물론이고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학부생들의 생활도 여간 녹록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이든 교수든 자신의 영역에서 깊이 뿌리 내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시간을 두어 긴 호흡으로 역량을 축적하여 비 온 뒤에 힘차게 거친 땅을 뚫고 나가 새순을 만들어 내는 일이 좀처럼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학마다 개설된 온라인 커뮤니티와 대나무숲에는 대학의 부조리한 관행과 현실을 고발하는 분노의 목소리만 가득하다. 초여름 문득 마주한 우후죽순의 장관을 앞에 두고 우리나라 대학의 엄혹한 현실에 진한 아쉬움을 느낀 것은 비단 필자 개인의 소회만은 아닐 것이다.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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