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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세계를 위해 평화 만드는 ‘피스메이커’ 길러내겠다”
“민족과 세계를 위해 평화 만드는 ‘피스메이커’ 길러내겠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6.25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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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70주년 맞은 안양대 유석성 총장 인터뷰

수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안양대는 캠퍼스 초입의 가파른 경사로로 유명하다. 안양대 재학생을 가리켜 ‘안양 산악인’이라 부르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 안양대의 성장세와도 비슷한 오르막길을 지나고 나면 무릉도원에 들어간 것처럼 갑자기 탁 트인 캠퍼스가 눈 앞에 펼쳐진다. 〈너를 기억해〉, 〈슈츠〉 등 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받았을 만큼 아름다운 전경이다.
1948년 대한신학교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안양대가 개교 70주년을 맞았다. 부침도 있었지만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 교육부의 대학자율역량강화지원사업(Advanced of College Education, 이하 ACE+사업)에 선정되는 등 안정기에 접어든 모습이다. 오는 8월 취임 1주년을 맞는 유석성 안양대 총장(사진)을 만났다.

인터뷰 일시: 2018년 6월 11일 오후 3시 30분 
대담: 윤상민 편집국장 cinemonde@kyosu.net 
정리: 이해나 기자 rhna@kyosu.net
사진 제공: 안양대 홍보실

△대학이 안정기에 접어든 느낌입니다. 최근 학내 분위기는 어떤가요.
“‘이것저것 다 잘 되고 있다’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웃음) 안양대는 지난해 ACE+사업에 새롭게 선정돼 지난해 16억원, 올해 20억원의 정부 재정지원을 받게 됐습니다. 지난 5월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에도 선정돼 5억여원의 지원금을 받게 됐고요. 학내 구성원 모두 고조된 상황입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모든 것에는 창업기, 수성기, 융성기, 쇠퇴기가 반복됩니다. 조선의 경우 태조가 창업한 나라를 태종이 수성하고 세종이 융성시켰죠. 제가 총장으로 취임한 지난해를 기점으로 안양대의 융성기를 열어보려 합니다.”

△그간 위기가 없지는 않았는데요.
“그랬죠. 특히 학교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을 때가 있었어요. 구성원 사이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 몸을 사리고 회피하는 분위기도 생겨났죠. 제가 지난해 안양대로 부임해 왔을 때도 그런 분위기가 남아있었고요. 그래서 제가 ‘그릇 깨는 거 두렵다고 설거지를 안 하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고 구성원들을 독려했어요. 다들 고맙게도 힘을 내줬죠. 발전기금 모금도 활발해 졌고요.
저는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신학대 총장직을 수행하는 등 이미 대학 경영 경험이 있었어요. 총장 업무에 익숙합니다. 학교는 바뀌었지만 같은 기조를 가지고 업무를 해나갔어요. 대학이 어디든 총장에게 요구되는 건 동일하거든요. 자신만의 교육 철학과 학생을 좋은 사람으로 키우고자 하는 열정이죠. 거기에 더해 시대를 볼 수 있는 통찰력과 경영 능력, 사회적 교섭력을 갖춘 CEO가 된다면 뛰어난 총장이 될 수 있죠. 오늘날 대학의 모습을 보면 내일의 한국 사회를 알 수 있어요. 오늘 교육을 제대로 해야 내일의 희망이 있다는 생각으로 총장 임무 수행에 임해야 하죠.”

△안양대가 길러내고자 노력하는 ‘아름다운 리더’란 어떤 사람입니까.
“하늘을 공경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敬天愛人의 태도를 가진 사람, 和而不同의 정신을 갖춘 평화적인 사람, 실천적 지혜를 갖춘 사람입니다. 즉 사랑, 정의, 평화를 실천하는 사람이죠. 저는 ‘사랑은 정의로써 구체화되고, 정의가 행해짐으로써 평화가 이뤄진다’고 세 개념 사이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이때 평화란 적극적 개념으로, 단순히 전쟁이나 폭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민주화되고 경제적으로 착취가 없고 사회적으로 소외가 없는 등 사회 정의가 실현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저는 우리 학생들을 ‘피스메이커’(Peacemaker)로 만들고 싶어요. 평화통일시대를 준비하며, 어디를 가든지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말이에요. ‘피스메이커’ 학생을 길러내는 것이 안양대가 나아갈 방향이죠.”

△안양대는 ‘아름다운 리더’ 양성과 함께 ‘한구석 밝히기’ 운동도 전개하고 있습니다.
“한구석 밝히기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照一隅 개념으로, 김영실 안양대 초대총장(1920~2006)이 강조한 정신입니다. 한구석이라도 환히 비출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과를 거두도록 노력하는 것을 뜻하죠. 저는 결국 사람 사이의 연대와 협동을 중시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一人百步不如百人一步(한 사람이 백걸음을 가는 것보다 백 사람이 한걸음씩 가는 것이 낫다)라는 거죠. 안양대는 기독교대학인데, 예수가 말하는 사랑의 사회적 실천 운동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신학박사지만 인문학과 동양사상에도 관심이 많으시다고요.
“맞아요. 동양사상을 20년 이상 공부했어요. 『주역』도 즐겨봅니다. 제나라의 경공이 정치란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 가라사대, ‘君君, 臣臣, 父父, 子子’. 무슨 말이냐면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정치라는 뜻이에요. 이름을 바로잡는다는 뜻에서 正名사상이라고 하는데, 대통령이 대통령답지 못해서 박근혜 정부는 실패했어요. 즉 사람은 올바른 판단력을 갖추고 살아야 해요.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인문학이죠.
인문학의 대표적인 분야는 文史哲(문학·역사·철학)이에요. 특히 동양에서는 사람을 만드는 공부를 문사철을 통해 진행했습니다. 문학은 창조적 상상력을 키워주죠. 인류 문명의 발달은 사실 상상력의 결과예요. 스마트폰은 스티브 잡스라는 걸출한 천재가 휴대폰 안에 PC를 넣어 보자고 상상한 결과 만들어진 것이죠. 이태백이 시상을 얻었던 달을 보며 ‘저곳에 가 볼 수는 없을까’하고 상상했을 때 우주선이 만들어진 것이고요.
다음으로 역사는 판단력을 길러줍니다. 『자치통감』의 사례에서 보듯이 동양에서는 역사를 鑑이라고 불러요. 거울 감, 과거를 통해 현재를 거울처럼 비춰본다는 것이죠. 세종대왕을 보며 덕치와 애민정신을 배우고, 연산군처럼 폭정을 해서는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보며 판단력을 키울 수 있죠. 여기에 합리적 사고력을 배우는 철학까지 익혀 조선시대 선비들은 과거를 치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文史哲은 전공필수인 셈이죠. 그다음 시를 짓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詩書畵, 즉 교양필수까지 갖춰서 품격 있는 사람으로 살았어요. 제가 우리 학생들에게 고전 읽기, 논리적 글쓰기, 화법과 예절 등의 과목 수강을 권장하는 이유입니다.”

△오는 8월이면 취임 1주년입니다. 그간의 업적에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 정도일까요.
“최근 안양대는 ACE+사업과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통일부의 통일·북한 강좌 사업 지정 등 여러 가지 사업에 선정됐습니다. 이중 ACE+ 사업은 제가 안양대에 오기 직전 선정됐지만요.(웃음) 이번 대학기본역량진단도 잘 되리라 봅니다. 저는 항상 대학의 본질과 미래, 교육의 가치와 목적을 염두에 두고 삽니다. 서울신학대에서 총장직을 맡았을 때도 신학대 가운데 최고·최상의 평가를 받도록 이끌었죠. 그 경험 덕분에 안양대 총장직도 경쟁이 아닌 초빙을 통해 맡게 됐고요. 총장 경험을 이미 해 봤기 때문에 안양대 총장으로 와서도 익숙한 일이라 금세 적응할 수 있었어요. 지금까지는 꽤 성공적으로 해 나가고 있는데, 앞으로는 더 열심히, 겸허히 일해야죠. 저는 언제든지 최선을 다해 노력합니다. 그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편집자 주-유 총장은 배석한 홍보실장에게 점수를 매겨보게 했고, 홍보실장은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불렀다.) 낙제 면했으면 됐네요.(웃음) 아직 점수 매기기에는 이른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남은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대학의 자율성을 쟁취하고 싶어요. 시대 상황이 여러모로 대학에 좋지 않죠. 우선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등록금은 9년째 동결됐는데 정부의 대학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재정 지출을 많이 해야 해요. 대학이 교육과정, 입학정원, 등록금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면 대학에는 자율성이 없는 거죠.
정부는 대학에 자율성을 주고 대신 대입제도 개선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한국에서는 대입제도를 개선하지는 않고서는 교육을 바로잡을 수 없어요. 대학 입학 전까지 이뤄지는 모든 교육은 결국 대입만을 위해 이뤄져요. 그렇게 대학에 와서는 취업을 위한 공부만 하게 되고요. 취업이 잘 되는 경영학·의학·법학에만 인재가 몰려요. 기형적이죠. 이것부터 바로 잡아야 기초 학문이 융성하고 인성을 갖춘 인재 교육도 이뤄질 수 있어요. 
한국의 젊은이들이 희망을 품고 공부할 수 있는 풍토를 가꿔야 해요. 도산 안창호는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고 했어요. 이렇게 중요한 대입제도를 일단 교육부의 전문가들이 대안을 마련한 다음 검증을 받아야지 처음부터 공론화위원회에 맡겨 여론을 통해 정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교육 문제는 그때그때 정권에 맞춰 바꿀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해요. 국가의 미래가 달린 문제니까요.”

△개교 100주년 즈음에는 안양대가 어떤 대학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하십니까. 
“안양대는 기독교정신에 입각해 세워진 대학입니다. 중소규모의 기독교대학 가운데서는 가장 좋은 대학이 돼 있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대학이 이공계열 응용학문 위주로 구성된 장점이 있기 때문이지요.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계속 성장해 나갈 것이라 기대합니다.”

유석성 안양대 총장은…

열린 신학자·철학 갖춘 CEO, 기독교대학의 부흥 이끌어

유석성 안양대 총장은 1950년 경기 안성에서 태어났다. 독일 튀빙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튀빙겐대에서는 세계적인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 교수의 지도로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에 관한 논문을 썼다.

신학자이지만 인문학과 동양사상 공부를 즐기며 조예가 깊다. 학생에게도 인문학 공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서울신학대 총장과 안양대 총장을 역임하며,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이수성 전 국무총리,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 명사를 초청해 꾸준히 인문학 강좌를 개최해 오고 있다. 특히 지난 2010년 서울신학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개설한 릴레이 ‘인문학강좌’는 높은 인기에 힘입어 『앞으로 어떤 세상이 올 것인가』(종문화사, 2017.07),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종문화사, 2018.04) 두 권의 책으로도 출간됐다. 유 총장이 제시한 ‘인문학강좌’의 3원칙은 다음과 같다. ‘전교생이 필수적으로 참석한다. 한국 학계의 최고 강사를 초빙한다. 널리 알려 브랜드화한다.’ 

그는 총장 재임 기간 서울신학대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는 평을 듣는다. 서울신학대에서 총장직을 연임한 후 지난해 8월 안양대로부터 총장직에 초빙받아 자리를 옮겼다. 한국기독교학회장, 전국신학대학협의회장, 한국신학대학총장협의회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사회정의론 연구』, 『본회퍼 신학사상』, 『정의와 평화윤리』, 『기독교 사회윤리와 현실』,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사형과 인간의 존엄』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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