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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선수도 '헛발질' 하게 만드는 것
뛰어난 선수도 '헛발질' 하게 만드는 것
  • 박찬민 인하대·스포츠과학과
  • 승인 2018.06.2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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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이 끝난 지 3개월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여진은 너무 빨리 수그러든 듯하다. 아마 단일 종목 스포츠이벤트로서 가장 큰 규모인 월드컵이 그 허전함을 말끔히 씻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크고 작은 스포츠이벤트는 우리 삶과 매우 가까운 존재라 할 수 있다. 특히, 2년 또는 4년마다 번갈아 열리는 동·하계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메가 스포츠이벤트만 따져 봐도, 얼마 전 끝난 대한민국의 선거 횟수보다 훨씬 자주 개최되고 있다. 각종 국제대회와 국내대회들, 그 수를 헤아려 보면 굳이 말로 일일히 설명하지 않아도 이런 스포츠이벤트에 대한 대중의 친숙함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번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은 예전과 비교해 신선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 기술적인 부분에선, 골 라인 판독기(Goal Line Technology)의 도입과 비디오 판독(Video Review)을 통한 심판의 판결이 눈에 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중국어로 된 광고판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즉, 중국의 기업들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통해 적극적인 마케팅 투자에 나선 것이다. 특히, 월드컵을 포함해 FIFA(국제축구연맹)가 주관하는 모든 공식 이벤트에 마케팅 권한을 가지는 최상의 스폰서 레벨, FIFA Partners에 중국의 미디어와 관광업을 이끄는 부동산 재벌 완다그룹(Wanda Group)이 포함된 것은 아주 신선한 충격이다. 이 외에도 비보(Vivo, 스마트폰 기업)과 하이센스(Hisense, 전자기업)등이 월드컵스폰서로서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15년 FIFA의 부정부패와 개최국 러시아에 대한 다양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정작 중국대표팀이 참가조차 하지 않는 월드컵에 중국기업들이 대거 후원한다는 점은, 스포츠를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겠다는 중국기업들의 야망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 할 만한다. 

자, 그럼 대한민국 대표팀 얘기를 해보자. 우리나라 대표팀도 지난 18일 스웨덴과의 첫 경기를 시작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스포츠는 ‘경기 결과의 불확실성’이라는 요소 때문에 늘 흥미로운 반전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지나친 기대였을까? 첫 경기 결과는 아쉬움이 많이 묻어나는 패배였다. 경기가 끝난 후, 다양한 표현으로 첫 경기 패배에 대한 자조 섞인 선수들의 인터뷰 기사가 나왔고,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할 대로 식상해진 ‘다음 경기에는 심기일전해서 잘 하겠다’는 각오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표팀 선수들과 지도자들의 각오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대중의 한 귀퉁이의 소리는 매우 강하고 씁쓸한 어조로 ‘제명’, ‘퇴출’, ‘추방’, ‘해산’, ‘청와대 청원’ 등과 같은 다소 과격한 반감으로 그 각오에 코웃음을 치고 있다.

월드컵 대회는 참가하는 모든 선수들에게, 선수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과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월드컵은 대중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켜야만 하는 엄청난 중압감을 주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간혹 대중의 다소 과장되고 막연한 기대는 특별한 선수들을 평범하고 얌전하게 만드는 저주가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감독이나 선수가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플레이와 전술로 재능과 실력을 증명하기에는 실수나 패배에 대한 비난의 정도가 지나치게 과격하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비난으로 인해 그 감독과 선수들은 아주 얌전하고 안전한 선택(플레이)만을 하는, 일종의 방어막을 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다.

우리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실력에 대한 냉절한 비판과 함께 생각해봐야 할 것은, 소위 말해 '열두 번째 선수'라는 우리 국민(팬)들의 '실력'이다. 과연 선수들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잣대를 역으로 우리에게 적용해본다면, 우리는 우리를 비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박찬민 인하대 교수(스포츠과학과)는 국가대표 선수라고 해서 모두 '실패와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수'는 아니라고 말한다. 영상 캡쳐=대한축구협회
우리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실력에 대한 냉절한 비판과 함께 생각해봐야 할 것은, 소위 말해 '열두 번째 선수'라는 우리 국민(팬)들의 '실력'이다. 과연 우리는 16강에 들 만한 '열두 번째 선수'인가? 박찬민 인하대 교수(스포츠과학과)는 국가대표 선수라고 해서 모두 '실패와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수'는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평상시에는 국내 프로축구 경기 관람을 한 번도 하지 않으면서, 국가대표 경기에만 목을 매는 대중의 심리도 재미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사진은 광화문 광장에서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자료 출처=대한축구협회

스탠퍼드대의 캐럴 드웩(Carol Dweck) 교수가 주장하는 인간의 심리적 믿음에 근거해, 과연 우리나라 선수 가운데 어떤 선수가 ‘학습지향성’을 지닌 선수이며, 반대로 어떤 선수가 ‘성과지향성’을 지닌 선수인가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대중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실패에 따른 부끄러움으로 본인의 플레이를 얌전하고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성과지향성’ 선수를 선호할까? 아니면 이런 저런 시도와 막힘에도 불구하고 탄력을 받아 플레이를 하는 ‘학습지향성’ 선수에게 박수를 보낼까? 바로 이런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대표팀을 선발하고 구성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 썼는가에 대한 반문이기도 하다. 

협회와 지도자가 준비하는 관련 전술과 전략은 경기준비의 기본이다. 또한 이러한 전술과 전략을 잘 소화해 필드에서 녹여내야 하는 것은 오롯이 선수들의 몫이다. 즉, 선수들에 운동수행 능력에만 절대적 잣대를 맞춘 겉핥기 식 분석을 넘어, 선수의 자아탄력성과 심리적 지향성 등도 고려해야 한다. 경기는 선수들이 스스로 만들고 반응해가는 아주 다이나믹한 학습과정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평상시에는 국내 프로축구 경기 관람을 한 번도 하지 않으면서, 국가대표 경기에만 목을 매는 대중의 심리도 재미있지 않은가. 매 경기 100명도 채 안 되는 관중 앞에서 볼을 차던 선수들이 수 만 명이 운집한 대형 스타디움에서 선수들끼리 의사소통도 잘 안 되는 상황이라면, 선수들이 갖는 부담감이 어떠할지도 상상해 보자. 대한민국 대표팀 앞에서는 자연스레 냉철한 스포츠 전문가로 돌변하는 우리 대중의 과장된 기대는 대한민국 선수들의 성과지향성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요인임을 잊지 말고, 그들이 무기력한 순응을 넘어, 선수 개개인이 지닌 특별함을 남은 월드컵 경기에서 아낌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열광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은 어떨까. 

 

박찬민 인하대·스포츠과학과 
미 뉴멕시코대에서 스포츠경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 플로리대에서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보낸 후, 싱가포르 난양공대 스포츠경영학 교수로 재직했다. 스포츠 법·정책, 스포츠 이벤트 및 소비자 행동이 주요 연구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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