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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서의 기본소득
인권으로서의 기본소득
  • 박혜영 서평위원/인하대·영문학
  • 승인 2018.06.2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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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일개 변호사에서 세상의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로 간디의 인생을 바꿔놓은 책이 있다. 바로 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느린걸음, 김석희 옮김)이다. 19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사회개혁 사상가였던 러스킨은 칼 마르크스보다도 먼저 자본주의 경제의 폐악을 직시하고 이 악마의 경제학을 철폐하라고 외쳤다. 원래는 당대의 문호이자 잡지의 주간이었던 윌리엄 새커리가 예술평론이나 문학적인 글을 고대하고 러스킨에게 원고를 청탁했는데, 뜻밖에도 자본주의 경제학을 비판하는 새로운 사회과학적 개념이 담긴 경제론을 보낸 것이다. 총 4편의 글은 당시의 주류 경제학으로부터 즉시 거센 비난과 멸시를 받았고 연재는 곧 중단됐다. 자본주의 경제학을 파괴의 경제학이자 죽음의 경제학이라 비판하며 사회의 끄트머리에 놓인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보수가 지불돼야 한다고 주장한 이 책은 성경의 「마태복음」 제20장에서 그런 인도주의적 경제학의 비유를 빌려왔다.  

그 구절은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느 포도밭 주인과 같다”로 시작된다. 이 주인은 장터로 나가 하루에 1 데나리우스를 주기로 합의하고 몇 명의 일꾼을 자신의 포도밭으로 보냈다. 정오쯤에도 장터로 나간 주인은 빈둥거리던 다른 일꾼에게도 같은 품삯을 주기로 하고 모두 포도밭으로 보냈다. 오후 늦게 다시 장터로 나간 주인은 일이 없어 빈둥거리던 마지막 남은 사람들도 같은 품삯을 주기로 하고 모두 포도밭으로 보냈다. 이윽고 저녁이 되자 주인은 일꾼들을 모두 불러 품삯을 나눠주는데, 오후 늦게부터 일한 일꾼이건 맨 먼저 도착하여 아침 일찍부터 일한 일꾼이건 같은 품삯을 주었다. 당연히 맨 먼저 온 일꾼들이 불평을 하자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다. 너는 나와 1 데나리우스를 받기로 합의하지 않았느냐.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너에게 준 것과 똑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다. 이와 같이 하늘나라에서는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러스킨 경제사상의 정수를 의미하는 이 우화는 경제에 관한 전혀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모든 일꾼에게 동일하게 지불되는 보수로서의 1 데나리우스가 다분히 윤리적인 측면을 지닌다는 점이다. 주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장터로 나가 일이 없어 빈둥거리는 일꾼들을 불러 모아 동일한 보수를 주는데, 이것은 1 데나리우스가 생존의 기본임금임을 의미한다. 일이 없어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에게 1 데나리우스는 생존할 수 있는 기본권인 것이다. 러스킨은 경제의 본질은 무엇보다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고 돌보는 데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일을 많이 한 사람이건, 일을 적게 한 사람이건 누구나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품삯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늘나라의 주인이 모든 일꾼들에게 준 1데나리우스 개념이 바로 기본소득 개념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노동의 총량과 그 질에 관계없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위해 필요한 최저의 생존비용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이 점에서 기본소득은 경제가 아닌 인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의 경제주류들은 실업률 증가와 경기위축을 시간당 7천530원으로 올린 최저임금 때문이라고 아우성이다. 정말 그런가? 장사가 조금만 되면 임대료를 한 번에 몇 배씩 올리는 것보다 정말로 6470원에서 천 원 올린 최저임금이 주범인가? 아니면 노동법의 규제를  피하기위해 주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일자리만 제안하거나, 더 나아가 수당조차 안 주기 위해 1주에 14시간 40분으로 쪼개기 노동(<한겨레> 6월 18일자 기사 「법의 사각지대, 초단시간 노동자」)을 만들어 최저임금의 취지조차 깎아버리는 기업들이 주범인가? 기본소득은 사회의 마지막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이 없는 사람들, 이 모든 나중에 온 사람들의 삶이 절망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기본적인 인권의 일환으로 봐야한다. 영국 시인 블레이크는 “사자와 소에게 같은 법을 적용하는 것은 압제다”라고 했다. 

 

박혜영 서평위원/인하대·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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