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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풍경 : '나폴레옹의 학자들'(로베르 솔레 지음/이상빈 옮김, 아테네 펴냄)
책 속의 풍경 : '나폴레옹의 학자들'(로베르 솔레 지음/이상빈 옮김, 아테네 펴냄)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6.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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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욕망 위에 진행된 지적 어드벤처-이집트 원정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은 지식과 권력이 제국주의적으로 연합하는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그것은 마치 이집트라는 원시생물에게 마취액을 떨어뜨려 고정시킨 후 오만가지 해부와 관찰의 행위를 다 실시하는 의과실습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를 통해 근대의 경험적 지식이 풍부하게 완성될 수 있었다는 건 아이러니다.

1798년 5월 19일, 프랑스의 작은 도시 툴롱 항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5만명의 인파로 북적였다. 오리앙(orient) 선대는 지각한 사람들을 불러모으느라 5분마다 하늘을 향해 펑펑 대포를 쏘아올리고 있었다. 들끓는 사람들 속에는 1백67명의 학자들이 속해 있었다. 엔지니어, 천문학자, 건축가, 화학자, 동양학자가 포함된 학자군단의 평균 연령은 25세 정도였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의 출발장면이다. 프랑스는 오래 전부터 이집트를 탐내고 있었다. 이미 1642년 독일 철학자인 라이프니츠는 외교관 시절 루이 14세에게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성스러운 땅, 홍해와 지중해 사이의 중첩된 제방, 동양의 곡간, 그리고 유럽과 인도의 보물 창고"인 이집트를 점령하라고 넌지시 제안한 바 있다.

그로부터 1백50년이 지난 1798년 이집트 출격이 전격적으로 결정된 데엔 두가지 정치적인 계산이 있었다. 하나는 이가 갈리는 앙숙, 영국의 인도진출(종단정책) 교두보를 선점, 차단하겠다는 속셈(횡단정책)이었다. 다른 하나는 나폴레옹이라는 눈에 거슬리는 장군을 멀리 보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총재정부는 나폴레옹이 사막의 먼지바람 속에서 어떻게 돼버리길 바랬을 것이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프랑스는 이집트 상륙 3년만에 영국에 의해 처참히 토벌됐으며, 나폴레옹은 영국의 함대가 도착하기 얼마 전 본국으로 들어가 제1총통의 자리에 오르며 권력을 굳히게 된다. 프랑스에게 남은 건 이집트를 점령했던 2년여의 기간 동안 그곳에 심어놓은 프랑스의 교육 및 법제도, 각종 문화와 학술활동을 통해 구축한 이집트에 대한 지식의 체계였다.

이집트 출신으로 르몽드 학술기자를 지내고 있는 저자 로베르 솔레는 '나폴레옹의 학자들'(아테네 刊)이라는 책에서 이집트 원정에 따라간 학자들의 현지 학술활동과 에피소드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로베르 솔레의 두가지 전제는 학자들이 사전에 식민활동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 그리고 여행과 모험에 대한 목마름이 학자들을 지배했다는 것이다. 학자들에게 이집트 땅은 백과전서파의 작업을 이어받은 근대적 체계화의 충동을 제3세계라는 무질서 속에서 실현할 수 있는 훌륭한 텍스트였다. 22세의 엔지니어였던 프로스페르 졸루아는 아버지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제가 왜 그런 열기에 빠져들었는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여행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금보다 더 모험스럽게 여행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 학자들은 수도 카이로에 거점을 정하고 상 이집트를 탐색한 후 하 이집트로 지적 어드벤처를 감행한다. 반란군들과의 전투, 페스트의 습격, 사막의 악천후와의 싸움 같은 고난과 역경은 이집트 고대문화의 정밀한 유산이 갖는 매력에 비하면 참을 만한 것이었다. 30여명의 학자가 사망했으나 이들이 남긴 유산은 엄청났다. 프랑스 본토에 이집트학 열풍을 불러 일으켰고 '이집트지'라는 계몽주의의 교과서도 만들어졌다. 수에즈운하가 착공됐으며 그 유명한 '로제타스톤'의 발견으로 이집트 상형문자도 해독됐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이집트인들을 노예로 부리고 저항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베어버리는 살육의 도가니를 동반했다. 지식과 권력의 매혹적이면서도 전율을 느끼게 하는 흔적을 따라가 보자.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수학적으로 측량되고 기록된 이집트
 "우리는 건축가 디노카레스가 설계한 알렉산드리아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인간의 지식의 유산을 집결시킨 도서관을, 시민은 활기넘치고 산업은 고도로 발달한 상업도시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을 채우고 있는 것은 오직 폐허, 야만, 굴종, 가난뿐이었다"라고 막 이집트에 도착한 20세의 건축가 샤를 노리는 말했다. 삭막한 먼지를 맞으며 외롭게 서있는 폼페 기둥의 높이를 연을 이용해 측량하는 모습.

출판사·인쇄소를 배에 실어 옮기다
나폴레옹의 오른팔이었던 수학자 몽주는 로마에 있는 바티칸 출판사와 인쇄소 중 하나를 통째로 털어서 배에 실어 이집트로 옮겼다. 그 덕분에 학술활동의 과정이 기록, 공개될 수 있었다. 사진은 '이집트 통신' 제 58호로 여기에선 이집트에서의 프랑스인의 일상적 활동을 주로 다뤘다.

시니컬한 이집트 지식인들
프랑스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반응은 워낙 시큰둥해 학자들을 낙담시켰다. 광물학자 돌로미외는 실망한 나머지 "자신의 습관과는 동떨어진 모든 것에 대한 그들의 절대적인 무관심은 너무나 놀랍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집트 지식인들은 차라리 시니컬했다. 족장 엘 바크리는 화학과 정전기 원리를 설명하는 베트톨레에게 "그러면 과학의 힘을 빌려 모로코와 이집트에 자신이 동시에 나타나는 게 가능하냐"라는 황당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도구의 부족 때문에 발휘된 상상력
이집트에 상륙할 당시 과학 기자재를 실었던 배가 침몰돼 많은 측량기구들을 잃어버렸던 학자들은 많은 부분을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 때문에 이집트에서의 학술활동은 과학적 엄밀함과 창조적 직관이 결합된 이상적인 형태로 진행될 수 있었다.

이집트 구석구석을 그린 비방 드농
피라미드 앞에서 폭군의 광기에 대해 투덜거리며 스케치했던 화가 비방 드농은 그러나 카이로의 덴데라 신전 앞에서 이전의 모든 비난을 잊어버린 채 감동에 사로잡히고 만다. 건축, 회화, 조각에서부터 문의 벽구멍, 가장 미세한 장식, 그 모두가 경이로움이었다. 그는 "그렇게 숭고한 물건들에 대해 나의 그림실력이 불충분하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이집트 전역을 묘사한 드농의 그림책은 나중에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학자 개개인의 독창적 관점들 놀라워
광물국 엔지니어 로지에르는 하나의 문명이 물질적 환경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려 애쓰면서 종족학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광물학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집트는 전적으로 강에 의존한 문명의 전형적인 사례로 그림에 물건들과 석상들, 부적들은 광물을 조각한 산물이다.

순서에 따라 기록된 유산들
이집트 고고학의 세계속으로 침입해 들어가면서 학자들의 근심거리는 오직 각 유적들을 문화적이고도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측량하고, 계량화하며, 원위치시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멤논 거상에 남긴 고대 여행객들의 글씨는 로마 시대 이후 나일강의 수면이 얼마나 높아졌는가를 측정하기 위함이었다. 유적은 과학적인 동시에 총체적으로 파악됐고, 먼저 지리학적으로 위치시킨 뒤 도면으로 나타내고, 절단과 원근법을 사용해 표시했다.

인종적 편견에 찬 풍속연구
이집트의 부르주아는 배우자와 함께 자지 않고 큰 살롱의 한가운데서 혼자 잠을 잔다는 사실도 연구됐다. 깨우기 위해 소리치는 것도 금지됐다. 여자 노예가 손으로 주인의 발바닥을 쓰다듬으면 주인은 천천히 깨어났다. 프랑스는 이를 두고 "이집트 국민들이 나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의 영위하는 삶이 여성적이라는 것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우월감을 드러냈다.

계몽의 완성판, '이집트지'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만든 '백과전서'가 예술, 과학 그리고 직업에 대한 일반사전에 지나지 않았다면 '이집트지'는, 객관적 거리를 갖고 경험적으로 한 나라를 연구한 계몽주의 시대의 가장 기념비적인 저술로 손꼽힌다. 이집트를 다녀온 보나파르트의 학자들은 이후 출세의 가도를 달렸다. 자연사박물관에 유물을 기증한 조프루아 생틸레르는 학술원의 가장 권위있는 트리오에게 칭송을 받았으며, 훨씬 젊은 다른 과학자들도 '무척추 동물들에 대한 논고' 등 기념비적인 저서를 출간해 대학자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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