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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창하는 우주가 가진 피할 수 없는 고민
팽창하는 우주가 가진 피할 수 없는 고민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6.18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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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동서 문명과 근대’_ 김항배 한양대 교수(물리학과)의 「천체/이론물리학과 현대 우주관 」

네이버문화재단 ‘열린연단_ 문화의 안과 밖’의 다섯 번째 강연 시리즈 ‘동서 문명과 근대’가 매 토요일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번 강연은 동서양 근대성의 한계와 가능성을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취지에서 기획됐으며 올해 50회 강연이 예정돼 있다. 김항배 한양대 교수(물리학과)의 「천체/이론물리학과 현대 우주관 」 강연 중 주요대목을 발췌·요약해 소개한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빅뱅 우주와 같이 팽창하는 우주가 가진 피할 수 없는 고민은 시작이 있다는 것이다. 빅뱅 우주는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의 발견으로 빅뱅 우주가 힘을 얻던 1960년대 말에 빅뱅 우주는 아주 특별한 상태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점이 제기됐다. 우선 빅뱅 우주의 시작은 특이점에 근접한다. 어떤 이유로 특이점을 피해서 유한한 온도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빅뱅 우주는 팽창하면서 볼 수 있는 우주가 커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편평 문제’와
‘지평선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와 같이 편평하고 균일등방인 우주가 되기 위해서는 빅뱅 우주가 시작될 때 당시에는 인과관계가 없는 넓은 범위에 걸쳐 균일등방이고, 훨씬 더 편평하게 맞춰져 있어야 한다. 또한 같은 이유로 빅뱅 우주가 시작된 이후에는 구조 형성의 씨앗이 되는 작은 요동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이 또한 초기 조건으로 주어져야 한다. 이것은 가능한 수많은 상태 중에서 가능성의 확률이 아주 낮은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빅뱅 우주 자체의 물질 동역학으로는 이런 특별한 상태를 만들 수가 없다면 어떻게 빅뱅 우주가 이렇게 잘 꿰맞추어진 상태로 시작할 수 있었을까?

1980년대 초에 뜨거운 빅뱅 우주의 시작 상태 중 몇 가지 요소는 급팽창을 도입하면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급팽창은 음의 압력을 가진 진공 에너지 같은 물질이 우주를 지배해서 매우 빠르게 가속 팽창하는 상태를 말한다. 급팽창은 지평선 안의 아주 작은 영역을 지평선보다 훨씬 더 크게 팽창시켜서 편평하고 균일등방인 우주를 만든다. 곧이어 급팽창이 작은 거리 척도의 양자 요동을 크게 팽창시켜서 큰 거리 척도의 밀도 요동으로 바꿈으로써 구조 형성의 씨앗 요동을 만든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으며, 급팽창은 빅뱅 우주의 시작 상태를 설명하는 표준 시나리오로 자리를 잡았다. 급팽창이 끝난 후에는 급팽창을 일으켰던 큰 진공 에너지가 붕괴해 표준모형의 소립자들로 전환되고, 이들이 강한 상호작용을 통해 빠르게 열평형에 도달해서 복사 지배 시대가 시작됨으로써 물질의 기원도 설명할 수 있다. 급팽창은 빅뱅 우주의 문제점들을 거의 대부분 해결하지만, 급팽창의 시작 자체는 역시 문제점으로 남는다. 

김항배 교수.
김항배 교수.

'급팽창'이 해결하는 것과 해결하지 못하는 것

급팽창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 좀 더 실질적인 문제는 급팽창이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다. 급팽창은 밀도 요동과 더불어 우주 중력파 배경도 남긴다. 우주 중력파 배경을 직접 검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들이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의 편광 비등방성에 흔적을 남기므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 BICEP2팀이 편광 비등방성 흔적을 검출했다는 주장을했다가 이를 철회했다.

급팽창이 물질의 기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않는다. 이는 급팽창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재의 물질 이론이 바리온,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양을 정량적으로 잘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리온은 물질과 반물질의 비대칭이 문제이다. 물질 이론은 대개 바리온과 그 반물질인 반바리온에 대해 매우 대칭적인데, 우리 우주에는 바리온은 많지만 반바리온은 거의 없다. 입자물리 표준모형은 물질과 반물질에 대한 작은 비대칭성을 가지고 있고, 물질-반물질 비대칭성을 설명하는 요소들을 다 갖추고는 있으나 정량적으로 너무 작게 예측을 해서 사실상 관측된 바리온 비대칭성의 크기를 설명하지 못한다. 암흑 물질은 표준모형의 입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를 설명하려면 물질 이론의 확장이 필요하다. 초대칭성을 포함하여 확장한 초대칭 표준모형이 유력하게 부상했으나, 거대 입자 가속기(large hadron collider, LHC)실험에서 초대칭 입자들이 검출되지 않았고, 암흑 물질 입자의 직접 검출 실험에서도 WIMP(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 유형의 입자가 검출되지 않고 있어서, 현재 다른 가능성들을 모색하고 있다. 암흑 에너지는 진공 에너지가 유력한 후보이지만, 물질 이론에서 예측하는 값이 관측된 값에 비해서 너무나 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물질의 기원 문제에 있어서 물질 이론을 확장하거나 수정해 설명해보려는 노력이 꾸준히 있어왔다.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는 시공간 이론(일반 상대성)을 수정해서 같은 효과를 얻으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근대 과학 이전에 우주의 기원은 신화와 종교의 영역이었다. 과학이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도 그럴듯한 제안을 내어놓을 수 있을까?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포함해 수많은 과학자들은 우주는 영원불변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영원불변한 우주는 우주가 어떻게 시작됐는가라는 질문을 피해 갈 수 있다. 우주의 기원은 신화와 종교의 영역에 남겨져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팽창하는 우주라면 기원의 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기원 문제를 피하기 위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순환 우주가 제안되기도 했다). 게다가 빅뱅 우주의 기원은 일반 상대성의 관점에서는 에너지 밀도와 곡률이 무한대가 되는 특이점에 근접하고 있어서 현재의 물리학으로 다룰 수 없는 영역에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우주의 기원 문제는 양자 시공간 이론이 등장한 뒤로 미뤄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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