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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한국학 부문에서 내공 다져 지역으로 … “디지털 시대의 핵심 콘텐츠는 출판”
인문·한국학 부문에서 내공 다져 지역으로 … “디지털 시대의 핵심 콘텐츠는 출판”
  • 출판취재팀
  • 승인 2018.06.1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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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 산실, 대학출판부를 가다_ 4. 영남대학교출판부

『일본의 실상과 허상』·『토인비와 現代』(1982), 『蘇東坡文學의 背景』(1983), 『美術에세이 敦煌바람』(1986), 『행동의 신비: 행동의 생물학적 원형』(1987)…. 이 책들의 공통점은 ‘천마문고’ 시리즈라는 데 있다. 알려졌듯 ‘천마’는 영남대의 상징. 이를 활용해 영남대출판부가 1982년 내놓은 게 바로 ‘천마문고’다. 천마문고 시리즈는 호응이 좋았지만 권별 편차와 예산 문제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국문학의 현실주의와 반현실주의』(1987)를 끝으로 기획이 중단되고 말았다. 200여 쪽 분량의 문고본 시리즈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은 1970년대였다. 30여 개 출판사의 문고본 시리즈들이 경합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1980년대 단행본에 밀려 이 문고본들은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몰락했다. 바로 그런 시절에 ‘천마문고’가 아카데미 교양서의 최전선을 담당했던 탓인지 지금도 이 천마문고 시리즈를 기억하는 교수들이 많다. 

1973년 1월 문을 연 이래 현재까지 620여종 98만부를 출간한 영남대출판부는 지난 3월 대학 직제개편에 따라 ‘영남대 언론출판문화원’으로 이름을 바꿔달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식구는 임성우 원장(유럽어문화학부), 1989년 출판부에 입사해 30년간 편집 및 기획 제작을 맡아온 이종백 실장, 일반 출판사 편집자 출신으로 신문방송사 간사와 출판 업무를 함께 하고 있는 신무철을 비롯, 이충열(출고 및 서고관리), 한소영(회계·행정), 경력 3년차의 김혜은(북디자인·편집) 등이다. 

출판부의 예산은 특별회계 기관으로 분류된 탓에 인건비를 제외하고는 교비 예산지원 없이 출판부의 도서 및 문화상품 판매 수입으로 운영하고 있는 게 특징. 이종백 실장은 “대학 부속기관이기에 행정적인 업무는 학교 규정이나 지침을 따르지만 출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율성이 보장되는 반 독립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직제개편으로 신문방송사와 통합한 것은 출판의 고유 역할을 유지하면서 ‘미디어로서의 기능’을 유기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다. 출판부 직원의 경우 로테이션이 가능하지만, 이종백 실장만큼은 ‘전문직’으로 인정돼 30년 동안 출판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주력 출판 분야는 인문학, 한국학 관련 총서와 시리즈 쪽이다. 민족문화연구총서, 민족문화자료총서, 인문과학연구총서, 중국연구총서, 인문학육성총서, 한국 중국 일본 연력대전 시리즈를 비롯해 『한국문화사상사대계』, 『퇴계시 풀이 전집』, 『우리나라 선비들의 중국시 이야기』, 『주희시 역주』(10권 5책) 등과 같은 인문학·한국학 관련 도서들이 출간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쉬운 대목도 있다. 영남대민족문화연구소가 편한 『한국문화사상사대계』가 후속 기획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이다. 4권에서 멈춘 이 기획에 대해 이종백 실장은 “『한국문화사상사대계』는 상당한 예산이 소요되기에 후속작업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이 책이 2003년에 완간됐는데 20년 뒤인 2023년에 그동안의 축적된 학문성과들을 담은 후속편발간을 목표로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문화사상사대계』를 놓고 이종백 실장이 예산이 상당하다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4권의 내용과 집필진만 봐도 이 기획이 예사롭지 않음을 쉬 알 수 있다. 법학, 문화인류학, 예술 부문에 걸쳐 사상사의 흐름을 일별한 이 기획에는 심희기, 박인수, 이상욱, 정태욱(이상 법학), 이청규, 장철수, 박성용(이상 문화인류학), 권영필, 민주식, 유준영, 유흥준, 한흥섭, 송방송, 채희완(이상 예술)  등 쟁쟁한 학자들이 참여했다. 국문학, 한문학, 국사학, 한국철학, 서지학, 과학, 농학, 경제학 분야에 걸쳐 ‘한국문화사상’의 흐름을 짚어낸다는 야심찬 기획은 현재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시급히 ‘복원·지속’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이다. 

왼쪽 첫 번째가 이종백 실장, 그 옆으로 한소영(회계), 이충열(출고 및 서고담당), 신무철(간사), 김혜은(편집 디자인), 임성우 원장. 사진 제공=영남대언론출판문화원
왼쪽 첫 번째가 이종백 실장, 그 옆으로 한소영(회계), 이충열(출고 및 서고담당), 신무철(간사), 김혜은(편집 디자인), 임성우 원장. 사진 제공=영남대언론출판문화원

‘지역’을 출판 키워드로

『한국문화사상대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영남대는 ‘영남문화’의 거점에 자리하고 있다. 이런 지리적, 지역적 특성을 십분 발휘한 출판전략이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대구 중구청은 일찍이 ‘대구 중구 골목 투어’를 개발해 대구의 근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문화 유적과 명소들을 문화관광 자원화 했는데, 그 결과물이 대구 중구 골목 스토리텔링 BOOK 제1집 『근대路의 여행 골목』이다. 영남대출판부는 이를  『대구 중구 근대골목 투어』(2014, 영문판), 『대구 중구 근대골목 투어(胡同)』(2017, 중국어판)으로 내놓았으며, 곧 일본어판도 출간할 예정이다. 최근에 상재한  『대구의 전통음악과 근대음악』(손태룡 지음, 2018)도 그 연장선에 놓인다.  

이종백 실장은 “지역문화가 한국문화의 중심축이라는 생각에서 대구·경북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대학출판부는 책을 통해 지역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출판부가 지역출판의 중심 역할을 해왔으며 지역학 관련도서들도 꾸준히 출판했다. 좀 더 체계적이고 응집된 지역학 관련 콘텐츠들을 책으로 묶어내기 위해 ‘지역문화총서’ 발간을 기획했고 올해 첫 책으로 『대구의 전통음악과 근대음악』(손태룡 지음)을 내놨다. 올해 2종 정도 추가로 나올 예정이며, 향후 100종 정도를 목표로 관련 전문가들로 기획위원을 구성할 계획이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영남대언론출판문화원이 꼽은 아쉬운 책은 무엇일까. 이 실장은 주저하지 않고 『동아시아의 사형』(도미야 이타루 엮음, 손승회 옮김, 2014)을 꼽았다. 사형이라는 궁극의 형벌을 통해서 동아시아 세계의 법의식에 대해 종합적으로 해명하고 있는 이 책은 일본, 중국, 스웨덴, 영국, 네덜란드의 역사학, 법학, 사회학, 종교학, 인류학, 철학, 민족학, 어학 등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참여해 한국, 중국, 일본의 사형을 넘어 인도와 네팔 그리고 서양의 사형까지 광범위하게 다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번역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제작기간도 오래 걸렸다.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내용이 아니어서 ‘대중성’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있었다. 게다가 관련 분야의 연구자도 적다보니 좋은 반응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사형문제의 근원과 사형의 현재적 의미를 역사적 자료와 실증적 근거를 바탕으로 탐색하고 있기에 이 책이 지닌 학술적 가치는 쉬 무시할 수 없다. 

영남대언론출판문화원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하나 있다. 지방대로서는 최초로 독립브랜드를 상재했다는 것. 2006년 선 보인 ‘열린시선’ 시리즈다. 원래 ‘知&智’로 출발했지만, 상표권 문제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당시 이희욱 출판부장(경영학)은 “교내뿐만 아니라 교외 저자로도 문호를 확대해 새로운 브랜드에 맞는 기획도서를 발굴하고 온라인서점 및 대형서점과 직거래를 추진하는 등 마케팅전략도 강화해나겠다”고 말하면서, 그 일환으로 공모를 통해 선정된 ‘知&智’를 교양도서 독립브랜드로 상표 등록했다. 첫 책은 최재목 교수(동양철학)의 인문학 에세이집 『늪』이다. 지금까지 ‘열린시선’으로 출판한 책은 모두 30여 종. 이들 가운데 절반 정도의 도서들이 재쇄에 들어가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교양도서 단행본 시장에 어느 정도 안착했다는 평이다. 

저자-독자와 만나 피드백 듣는 ‘북카페 별책’의 미덕

영남대언론출판문화원 역시 각자도생의 처지다. 좋은 책을 만들어서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2007년에 지역에서 처음으로 중앙도서관에 출판부 ‘북라운지’를 만들었고, 2013년 학내사정으로 폐쇄했던 것을 2017년 ‘북카페’로 다시 열었다. 이들이 ‘북카페’를 개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밤하늘의 별과 같은 책을 펴내겠다’는 의지를 담아 출판문화원 건물 내에 ‘북카페 별책’이라는 작은 공간을 연 것이다. 출판문화원과 저자, 독자가 서로 만나 접점을 두텁게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특기할 점은, 2017년 오픈 기념으로 ‘韓日 대학출판부 합동도서전’을 열었고, 윌리엄 모리스의 작품과 사상을 알 수 있는 포스터 자료들도 전시하고 있다는 점. 지난 5일 열린 ‘제2회 천마 북살롱’에서는 젊은이들의 고민, 현실문제들을 풀어낸 영화 「수성못」을 상영하고 유지영 감독을 초빙해 특강이 이어졌다. 이후 윤종욱 교수(유럽언어문화학부)와 관객들이 참여해 영화와 인문학에 대한 열띤 토론도 진행됐다. 

그렇다면 출판위기담론 속에서 대학출판부가 주춤하고 있는 지금, 영남대언론출판문화원은 어떤 방향을 모색하고 있을까. 이종백 실장은 이렇게 말한다. “출판이 위기라는 얘기는 제가 출판부에 입사한 1989년 당시부터 나왔던 말이다. 늘 듣던 얘기라 크게 신경은 쓰지 않는다. 향후 양질의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많아질 수밖에 없기에 원천 콘텐츠를 제공하는 매체인 출판의 존재감과 발전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본다. 또한 출판을 산업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것도 불편하다. 출판이 산업이라는 측면에서 이익추구와 성장에 매몰돼 시장에만 맡겨진다면 좋은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을까? 출판이 사회의 지적토양, 문화적 토대이기에 국가의 적극적인 정책적인 지원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그는 대학출판부가 좀 더 분명한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대학이 논문 위주의 연구자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저술을 활성화시켜 깊이 있는 학문적 성취들을 이룩하고, 이를 대학출판부를 통해 책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출판 전문 인력의 충원과 대학출판부에 대한 대학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영남대언론출판문화원은 그간 40여 년 동안 출판해온 620여 종의 도서들을 바탕으로 좀 더 전문화되고 강점을 가질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 출판할 계획이다. 대학 안팎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내 깊이를 통해 넓이를 추구하는 출판을 구상하고 있다는 영남대언론출판문화원의 다음 행로가 궁금하다. 

출판취재팀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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