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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論 없는 신문, 원칙 없는 정부
正論 없는 신문, 원칙 없는 정부
  • 김재훈 대구대 경제학
  • 승인 2003.06.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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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한국사회는 이제 다양한 삶과 다양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복잡한 시민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모든 현상을 적과 흑, 동과 서의 이분법-단순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이 있을 때마다 적과 동지로 사람을 나누려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문제가 어떤 성격을 갖는지 정확히, 구체적으로 우선 파악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 모두가 감정대로 언행을 일삼고 있다. 그 앞장에 소수 거대언론이 서 있고, 현 정부는 갈짓자 걸음을 걷고 있다.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편싸움만 붙이고 심층분석 없는 언론


현재 문제가 되는 NEIS에 관해 거대언론들은 교육관련 주체들을 전교조와 비전교조, 교육부의 장관(및 청와대)과 관료들을 나누어 편싸움을 고조시키고 있다. 전교조의 입장이기 때문에 장관의 말이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온 양 추측기사까지 써가며 싸움을 붙이고 있다. 전국단위 정보체계의 장단점, 학교 단위 정보체계의 장단점 등에 관한 심층분석은 찾아볼 수가 없다.

 

정부의 노동대책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화물트럭의 운행실태, 그 산업의 현황, 그 산업 종사자의 생활실태에 관한 심층분석은 변죽만 울린 것이었다. 그러고는 중국경제의 추격이 있으니 노동자들이 참아야 한다는 논조를 주조로 삼았다. 한국경제가 지금 중국에 눈높이를 맞추어서 될 일인지, 선진국적 노사관계와 사회복지체계의 방향에 대한 심층적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IMF관리 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황폐화된 대가로 경제위기를 극복한 이후, 더 이상 그들의 삶을 그대로 두어서는 우리 사회 모두가 황폐화되며 첨단지식경제로 가야할 한국사회의 성장잠재력마저 우려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언론의 이러한 보도태도의 원인에 관해, 이미 영리기관이 되어버린 거대언론의 생존논리가 소위 正論보다는 구매력, 즉 돈을 좇는 현실, 그 속에 생활 직업인이 되고 언론인 이후 거물정치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차단당한 언론인의 불만, 과거 식민지 혹은 군사파시즘에 대해 대드는 것만으로 칭송을 받던 소위 기자근성의 관행이 있음을 사람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제 민주화되고 고도로 전문화된 사회에서 사회 다른 모든 부분들과 함께,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만큼 부단한 자기계발에 혼신의 노력을 쏟지는 않고, 단순명쾌한 彼我 구별과 자극적 언사만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 직후 동아일보 등 주요언론은 느닷없이 해외이민에 관해 전례없이 심층적 안내를 연재물로 제공하고, 투자이민이 가장 확실한 이민방법임을 친절히 소개한 바 있다. 사람과 자금의 해외유출을 부추기고, 북핵과 소위 정책의 불확실성을 들어 경제불안을 부채질하는 망국적 행태를 보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경제불안, 정책불안의 이름으로 다시 인물교체를 주장하고, 정부를 흔들어 국가를 위기로 몰고 있다. 그 말에 따라 인물을 교체하면 또 다시 잦은 교체를 비난할 것이다. 진정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적과 동지의 구별이 아니라 분출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진지하고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이제는 언론인도 자기계발에 우선 힘써야 할 때이다.


갈짓자 걸음 걷는 정부 


현 정부로서도 그 언론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인수위 시절이후 많은 관계자들은 개혁방향에 관해 화려하게 쏟아 내어 보수언론의 공격에 멍석을 깔아주었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 개혁이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하는 것임을 잊었다.

 

그리고는 미국과 관계, 북한과 관계, 노동자정책, 교육정책 등 많은 부분에서 상황에 따라, 보수언론의 공격에 따라 말을 바꿔왔다. 우왕좌왕, 갈팡질팡. 결국 국민들은 이제 실망과 짜증을 내고 있다. ‘원칙’을 많이 거론하지만 상황이 변하면 달라지는 것은 결코 ‘원칙’이 될 수 없다. ‘원칙’이란 處變不變이어야 한다. 앞으로 정부는 원칙적 입장(혹은 접근), 단계적 입장, 상황적 입장을 나누어 제시해야 할 것 같다. 소탈함과 민주적 국정운영이 深慮遠謀, 周到綿密을 버리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합리적이고 명확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이다.

 

이 점은 거대언론에도 역시 해당된다. 인권위의 결정을 받아들이라 요구하다가 결정이 나면 또 인권위 위원들을 거론하며 인신공격을 하고, 화물연대 사태 때 정부개입이 없다고 비난하다가 개입 후에는 또 정부가 일일이 개입한다고 공격했다. 모두가 신중함과 세련됨, 일관성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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