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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적폐 방관자의 책임 회피
체육 적폐 방관자의 책임 회피
  • 이대택 국민대 교수
  • 승인 2018.06.11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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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대택 국민대·스포츠건강재활학과

운동선수와 국가대표는 보통의 우리와 다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육체적 기량을 가졌으니 보통 사람일 리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중에서도 한국 운동선수들의 문화는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독보적이다. 이들의 문화는 감히 타인들은 범접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들 사이에서는 굳이 말이 없이도 나이와 관계, 종목과 기량만으로 모든 것이 짜인 각본처럼 암묵적인 서열과 위계가 정립된다. 가끔씩 터져 나오는 체육계 문제들은 그들의 문화를 배경으로 발생한다. 이는 오래된 관습이자 심지어 그들만의 미덕처럼 여겨진다. 터져 나와서 그렇지, 안 터진 것은 훨씬 더 많을 것이며, 터져 나온 것은 재수가 없었다고 여겨지거나 그냥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도록 버려진다. 체육인 모두가 이를 잘 알고 있으며, 대한체육회도, 문화체육관광부도 잘 안다. 그저 쉬쉬할 뿐, 아무도 그 문화를 건드리지 않는다.

동계올림픽을 치르면서 사람들은 또다시 빙상계에 주목했다. 빙상연맹의 문제를 언급했으며 심석희 선수와 이승훈 선수의 폭행 피해와 가해를 얘기했다. 급기야 청와대 청원이 이루어지고 싫든 좋든 담당부처인 문체부는 이에 대한 감사에 들어갔다. 감사 결과 행정 미숙, 근거 없는 영향력 행사, 부적절한 사례, 비정상적 운영이 문제로 지적됐다. 문체부는 추가로 징계와 사건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한다. 감사 결과에 대해 주목할 점이 있다면, 결론적으로 모든 문제는 빙상연맹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번 감사 결과는 이전의 것들과 궤를 같이한다. 이번 사건이 대한체육회와 문체부와는 별개이며, 이들은 ‘책임 없음’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으로 시작된 감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래서 새롭지 않다. 빙상계가 또다시 세간의 관심을 끌었을 뿐 똑같은 얘기가 반복되고 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박근혜· 이명박 정부에서도 있었고 그 이전 정부에서도 있었다. 이쯤 되면 체육계의 문제는 참 오래된 미래라고 말할 수 있다. 체육계 문제는 정권과 시대의 문제라기보다 체육계만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 고유 문제로까지 보인다. 반복적인 문제 발생과 미해결이 결과라면 상황 해석은 명료해진다. 어쩌면 모든 문제는 어차피 해결되지 못할 것이었거나 아니면 전혀 해결의 원인과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니면 누군가 이를 그냥 방치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피감기관인 대한체육회와 문체부는 그래서 체육인들의 원성과 의심을 산다.

박근혜 정권에서 문체부는 체육계를 이용했다. 누구는 농락했다고도 말한다. 문체부는 방조와 방관을 넘어 적극 참여와 주도의 주체였다. 문체부 인사 몇몇의 교체와 쇄신으로 그 사실은 덮어지지 않는다. 최순실의 체육계 농단 백서를 작성할 수만 있다면 문체부는 아마 한동안 그 충격과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보고서의 부재가 그들에게는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 문체부는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설상가상 최근 문체부의 움직임은 더욱 과감해지고 적극성을 띤다.

문체부의 과감한 활약과 행보는 여러 곳에서 포착된다.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를 문체부가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는 물론, 한국스포츠개발원의 명칭 변경과 원장 임명 과정도 폐쇄적이었다. 몇몇 개인의 영향력으로 체육계 주요 인사들이 임명됐다는 소문은 나눠 먹기나 논공행상의 전형으로 보인다. 한때 아주 적극적으로 정권에 충실했던 그들이 이제는 체육계를 선도적으로 개조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문체부는 우리가 어떠한 체육과 스포츠를 가져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체제를 제시하고, 제공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동시에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책임과 역할을 가졌는지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빙상연맹에도 문제가 있지만 이를 방조한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에 더 큰 책임이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책임을 피하고 있으며, 시대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득과 위상을 다시 챙기고 있다. 이러다간 우리는 조만간 또다시 빙상연맹 문제를 반복해서 접하게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또다시 그 책임이 없음을 반복적으로 주장할 것이다.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이대택 국민대·스포츠건강재활학과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운동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연구위원회 리서치 펠로우로 미연방육군환경의학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인간은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는가』 『비만히스테릭』 『영양시대의 종말』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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