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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미래를 논하려면 총장 선출 민주화부터”
“대학의 미래를 논하려면 총장 선출 민주화부터”
  • 이해나
  • 승인 2018.06.11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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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련 민주적인총장선출을위한특별위원회 좌담
지난달 26일 열린 사교련 제6차 정책위원회 모습. 윗줄 가운데가 박순준 이사장이다. 사진 제공=사교련
지난달 26일 열린 사교련 제6차 정책위원회 모습. 윗줄 가운데가 박순준 이사장이다. 사진 제공=사교련

지난 3일 학교법인 성신학원이 양보경 성신여대 교수(지리학과)를 총장으로 선임하면서 성신여대에 개교 이래 첫 직선제 총장이 탄생했다. 지난해 5월 이화여대(총장 김혜숙)의 직선제 총장 선출이 기폭제가 돼 사립대에는 총장 선출 방식을 두고 논의가 한창이다.

올해 새 총장을 맞이해야 하는 사립대는 총 30여개교. 이들 대학의 구성원은 모두 직선제 총장 선출을 원하고 있을까? 아니라면 어떤 방식의 총장 선출을 바라고 있을까? 궁금증 해소를 위해 <교수신문>과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이사장 박순준, 이하 사교련)이 공동으로 ‘민주총장선출 제도화를 위한 설문조사’를 이달 중순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 1일 설문조사 문항 구체화를 위해 서울 프레스센터에 모인 사교련 산하 민주적인총장선출을위한특별위원회(이하 총장특위) 소속 교수들이 공유한 문제의식을 소개한다.

“봉건 시스템하에서 21세기형 대학은 불가능”

이날 모인 교수들은 “사회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이야기하는데, 대학의 거버넌스는 여전히 봉건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입을 모았다. 임명·상속으로 리더십 선출이 이뤄지는 봉건적 시스템 아래서 혁신을 선도하는 대학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한 교수도 있었다. 유원준 사교련 이사(경희대 사학과)는 “수많은 사학 문제의 시발점이 총장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정정당당하게 구성원의 지지를 얻은 총장이 일을 못할 리 없다”고 단언했다.

김태봉 사교련 전문대학정책위원장(대덕대 인테리어디자인과) 역시 사립대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사립학교법 제53조는 ‘각급학교의 장은 당해 학교를 설치·경영하는 학교법인 또는 사립학교경영자가 임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인이 임용하는 총장이 법인의 하수인이 되기 쉬운 건 당연지사”라는 설명이다. 그는 “직선제를 통해 선출된 총장만이 법인을 견제할 수 있다”며 직선제를 주장했다.

“지배 구조 개선이 시급하다”

총장 선출 방식에 관한 총장특위의 대세 의견은 직선제였다. 그러나 박순준 사교련 이사장은 “직선제만이 100% 정답은 아닐 것”이라며 “특위의 이름을 ‘직선제 쟁취’가 아닌 ‘민주적 총장 선출’이라고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사립대 총장 선출 과정에서 박 이사장이 지적하는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지배 구조 개선이다. 박 이사장은 “사립대에 계속 국비가 투입되고 있지만 법인은 항상 재정난이라는 이야기만 한다”며 “어딘가로 새고 있거나, 알차게 쓰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의 대학 지원금이 OECD 평균에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지배 구조부터 건강하게 만들어야 손실을 없앨 수 있다”고 덧붙였다.

총장특위 소속 교수들은 “현 사립대의 지배 구조에서 파생되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소영진 대구대 교수회 의장은 “한 대학의 경우, ‘국문과의 역할은 한국 문학을 외국에 소개하는 것’이라는 총장의 철학에 따라 학과 교수를 전원 외국인으로 교체한 일이 있었다”며 “권력을 가진 총장이나 이사장에 의해 학내 공론화나 합의 없이 즉흥적으로 학사 행정이 이뤄진 사례”라고 언급했다. 김태봉 위원장은 “사학 비리 가운데 가장 흔한 사례인 교비 횡령도 이사회가 총장을 좌지우지하는 데서 벌어지는 문제”라며 “이사회는 원칙적으로 교비 회계에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에 총장을 시켜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들의 보신주의 타파해야

유원준 이사는 “대학 외부에서 사립대의 문제를 언급하면 사람들은 대개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그렇게 불합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며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창성 사교련 사무차장 역시 “교수들이 먹고사는 일에만 함몰돼 사립대의 구조적 문제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 것”이라며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거들었다. 박순준 이사장은 “직선제를 쟁취했거나 총장 선출을 이미 완료한 사립대의 소속 교수라도 ‘이제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라며 넘기지 말고 설문조사에 참여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2024년이면 경성제대 개교 100주년이 된다. 이날 모인 총장특위 교수들은 “100년 이후 대학의 미래를 논하기 위해서는 전근대적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달 중순 진행될 <교수신문>과 사교련의 설문조사 참여를 통해 교수 사회에서 대학은 무엇이고, 총장의 역할은 무엇인지 점검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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